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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유시민 작가 추천 #아버지와 딸의 애틋함 #아버지 죽음과 3일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생각나는 이야기 #블랙코미디 그리고 뭉클함과 먹먹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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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11.07 「아버지의 해방일지」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긍게 사램이제~~
2022. 11. 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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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모의 딸로 태어나고, 같이 살아가는 동안 부모와 자녀는 얼마나 살갛고 가까울까?

함께 한 시간만큼 부모와 자식간에 모르는 것이 전혀 없는 삶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커 가고 어른이 되면서 나는 내 부모님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

이 지점에서 혼란과 당황스러움이 몰려온다. 뭔가 잘못되어가는 느낌이랄까.

부모와 많이 부대꼈던 어렸을 적 시간부터 커 가면서 유대감은 점점 옅어져간다.

부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데 아이는 멀어져간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자연스레 이해되는 것.

그 막연한 거리감은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면서 오롯이 다가왔다. 

어릴 적 서로가 함께 행복했던 시간을 가둬두고, 각자의 시간 속으로 흩어져간다. 

부모님은 사는게 바빴고, 아이들은 빨리 커 갔다. 함께 했던 시간과 추억들도 희미하다.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덤덤하게, 뭉클하게, 먹먹함으로, 웃으면서, 따듯함으로 등등 복합적인 감정으로 읽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첫 문장, 첫 단락인데 휑~ 아린 바람이 들어오는 듯 하다.

사회주의자, 혁명가, 낙인, 연좌제 등등 여러모로 유머라고는 담 쌓고 살아온 아버지 삶에 대한 딸의 평가다. 

그런 아버지가 죽었고, 아버지를 둘러싼 함께 한 인연들이 3일장을 치르는 동안 오며가며 한다. 

아버지 장례식에 오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얽힌 실타래 풀리듯 하나둘씩 나온다. 

한 줄기에 감자가 줄줄이 계속 나오듯....

아버지의 속내와 사정을 통 몰랐던 딸은 아버지의 장례를 통해 진정 아버지를 알아간다. 

그 이야기들이 생뚱맞고 엉뚱하면서도 먹먹함으로 뭉클함으로 다가옴은

아버지의 녹록치않았던 삶을 알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회의 소시민으로 살아온 시간보다 빨갱이/사회주의자로 낙인찍힌 삶의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 낙인은 아버지 자신 뿐 아니라 주변의 일가 친적이나 관계있는 사람들을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시키고 배제한다. 

특히, 가난한 빨갱이의 딸은 선택할 수 없는거다. 태어나보니 빨갱이의 딸이었을 뿐.... 먹먹했다...

 

"빨갱이나 그 자식들은 알아서 보통 사람들이 친밀하다고 허용하는 거리를 넘어서 있어야 했다.

그래야 누군가 빨갱이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당하지 않을 테니까."

 

외동딸이라 많이 아껴주고 무등 태워줬던 무뚝뚝했지만 다정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하나씩 되살아난다

소심하고 매사 의욕적이지 않고, 현실주의자이면서 무능과 답답함을 겸비한 것 같았던 아버지는 

의외로 사람을 따듯하게 감싸는데는 빨랐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긍게 사램이제~~'

사람을 이익에 따라 판단하지않고, 이리저리 재단하지않는 아버지였다. 

그냥 그대로 믿으니.... 안일하게 뒷통수를 맞는게 일상이다. 성정이 모질지를 못하다.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사회주의자 혁명가로서 아버지는 이 모진 자본주의 세상에서 나름 잘 살아낸 듯.... 

그래서 딸은 아버지의 삶이 이제는 애틋하게 느껴진다.

 

"빨갱이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저 노인 하나뿐이겠는가.

그게 아버지가 살아온 세월이었다.

경우 바르고 똑똑한 아버지가 21세기인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함부로 침 뱉어도 되는 빨갱이일 뿐인 것이다."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다시는 눈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죽음으로 질기고 질긴 그 이념과 가치, 신념으로부터 해방되었을까?

억압되었던 마음이 해방되었을까?

이념으로부터 소외되고 단절되었던 마음이 사람으로 인해 회복되었을까?

밀어내지않고 품었던 사람들이 아버지 옆에 있었다.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3일 동안 타인으로부터 내 아버지의 기막힌 사정을 듣는 시간이다. 

'오죽하면 글겄냐?'는 타인이 아닌 아버지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너의 마음을 읽고 이해함으로 내 마음도 살포시 얹는 과정이다.

그 이해로부터 얼었던 마음이 봄날의 햇살에 추위가 한 풀 꺾이듯 풀린다.

얽힌 실타래도 마찬가지겠지... 

부모님이 살아온 삶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 삶 전체가 어쩌면 오죽하면 글겄냐? 싶다.....

 

울다 웃었다가 먹먹했다 다시 웃으며 본 책「아버지의 해방일지」 진심 오랫만이다. 

다소 씁쓸한 블랙코미디 그러나, 희망을 줄 것 같은.... 그러면서 넌지시 건네는 말 한마디,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말이 참 좋았다.

일의 상황에 따라 감정 휘둘리지않고 그저 사정이 있겠지.

내 감정도 지키고, 타인에 대한 불편한 마음도 누그러뜨린다. 

아버지와의 친밀감이란 감정은 결국은 회복되지 못했지만, 화해했다. 

아버지의 진심을 알았던 늦은 날들....

 

더 늦기 전에 아빠와 얘기도 많이 나누고 얼굴도 자주 보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이발소 쉬는 날 화요일 아침마다 매일 전화 해서 명지에 자전거 타고 운동 왔다고 딸래미한테 보고한다.

아마 내일도 막내딸래미에게 전화할 것이다. '무슨 일 없제?' 라고 말씀하시겠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아빠~~~ 잘 지내고 있지 나는'...

'시간 내어 대저에 한 번 건너갈게.'  짧은 안부 통화를 마친다. 

감사하다. 아직 아픈데 없이 건강하시고, 딸래미 곁에 있어주셔서. 

내 어렸을 적의 살갑고 다정한 말들은 오고가지 않지만, 여전히 아빠가 그 자리에 있어서 고맙다.

 

"나는 그 이전의 날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아버지가 나를 태우고 미친 듯이 페달을 밟던 어느 가을날이, 

지각인 줄 알고 엉엉 울며 뛰어 들어간 교실에는 가을 오후의 햇살만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낮잠에서 깨어난 나는 다음 날 아침이라고 원껏 곯린 아버지는 잔뜩 뿔이 난 내 손에

햇살처럼 고운 홍옥 한 알을 건네주었다. 이가 시리도록 새콤한 홍옥을 베어 물며 돌아오던 신작로에는

키 큰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산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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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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