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깊숙이 개입되어있고 되돌릴 수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 곳 지구를 생각하면서,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의 그 마음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고 소개하는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을 읽었다.
작가의 식물에 대한 앎이 제법 신선하게 느껴졌다.
식물은 이동성과 역동성, 영향력 등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분포되어있는 우세종이라는 것은 기본이다.
재밌고 탄탄한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식물의 기본정인 정보부터 시작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찾고 읽었을지 가늠이 된다.
무엇보다 원예학을 전공한 아빠 찬스를 잘 활용한 부분도 끊김없이 흡입력 강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크게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식물은 뭐든 될 수 있다'라는 전제에서 시작된 지구 곳곳에서 실존하는 기이한 식물들은 그 자체로 탁월할 수 밖에.
책 「지구 끝의 온실」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더스트, 모스바나, 프림빌리지, 도피처, 분해제, 랑가노의 마녀들, 내성종 인간과 저항종 식물,
돔 시티, 온실, 사이보그, 기계와 유기체, 초토화, 재건....≫
남은 사람들과 떠난 사람들, 애증의 마음과 그리움, 삶의 본질적인 의미, 영원한 도피처 등 생각들이 많아진다.
인류에 필요한 연구들이 정작 인간의 탐욕으로 눈멀어 만들어진 재앙(더스트)이 될 때 삶이란? 선택을 못 할 수도 있다.
세워지고 심겨진 것은 모두 폐허가 되고 공권력이 붕괴되고, 책임은 실종될 때 모두가 각자 도생하며 삶과 죽음으로 나눠진다.
"침입자들의 등장 이후로 나는 프림 빌리지가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를 더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작은 균열이 이 마을에 만들어낸 불안감의 안개였다.
..... 나는 이런 균열들이 결국 이 마을에 낫지 않는 흉터를 남길까봐, 그리고 이곳을 마침내 파괴해버릴까봐 두려웠다." (203쪽)
조금의 희망이 보일 때 사람들은 서로를 아끼며 한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틈(균열)의 전조가 보이면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여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낸다.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닌 처해진 상황과 환경으로 인해 갈등은 고조되고 분열하며 흩어진다.
절망과 죽음을 피해 온 기적과 같은 곳 프림 빌리지도 영원한 도피처가 아니었다. 근원을 알 수없어서 더 불안정한 곳일 뿐.
거창하게 행복을 찾는게 아닌데,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곳이면 되는데...
똑같은 일상이지만 그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안정감을 주며, 감사한 삶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미래에 펼쳐질 가상현실을 상상력으로 버무린 공상과학물은 재밌다.
지금 내 삶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러나 다 읽고 책을 덮은 후 기분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가볍게 또는 무시할 수 없는 이상한 징후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발 딛고 살아가는 지구가 정상적이지 않고 병들어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기후 위기와 멸종에 관한 부분은 우리 삶에 아주 가까이 와 있다.
자연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 인위적으로 바꾸고 만드는 인간의 이기심이 한 몫 했다.
책 「지구 끝의 온실」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들은 복합적인 것 같다.
지구에 닥친 재앙과 살아 남은 자들의 재건, 그 과정 속에서 불신과 불안, 약이 되고 독이 되는 명암이 엇갈리는 식물의 재발견,
흩어짐과 약속 그리고 다시 생명의 움틈, 회복 등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간 시간 속에서 빗바랜 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된다.
살아내느라 힘들었던 시간들은 잊혀지지 않는 아픔으로,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한 페이지처럼 각인된다.
나름 식물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는게 아는 것은 아니었다;;;; 식물의 생태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
기후위기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될 것 같은데 어떻게 무엇을 실천하며 살아가야될지 고민도 해봐야겠다.
읽기는 재밌게 읽었는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써야할지 꽉 막히는 시간도 늘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걸까? 책 읽고 쓰는게 많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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