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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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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너가 좋으면 나도 좋아~ 함께 웃자' ^^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살다보니 낯을 붉히는 일도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감정이 화로 인해 소모되지 않도록 마음을 많이 배려하게 된다.

오늘 하루치 성경 말씀 묵상을 통해 잠잠히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매일 성경>을 통해 읽고 싶은 책을 발견했다.

책, 모든 사람을 향해 열린 손「하나님의 공동선」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선을 행하며 살아내는 것이 사랑의 실천인데, 쉽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순종하며 살아내는게 어렵다.

그렇더라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가장 중요한 계명이다.

책에서의 공동선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관계가 전제로 깔려있다.

하나님의 손길로 빚은 모든 피조물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이 공동선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의 시선은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 선택의 기준이 아니라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좋아하고, 한 쪽 시선으로만 치우친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

공동선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성경에서 만나는 '공동선'의 사례는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책을 읽다보니 생각이 난다. 

마태복음 20장 '포도원의 품꾼들'에서 주인이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해 포도원에 들여보냈다.

제 삼시와 육시, 구시, 십일시에도 주인은 품꾼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내 일 하도록 했다.

그리고, 일을 마친 후 먼저 온 자 부터 나중에 온 자까지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누가 봐도 공평하지 않다. 먼저 와서 일 한 자는 더 받아야 되는게 상식인데...

원망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처음부터 주인은 약속했다. 

시간의 구별도 어떤 조건도 없이 '하루 한 데나리온씩'

낙오되는 사람이 없도록 일 할 기회를 균등하게 주었다. 같이 주는게 주인의 뜻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제일 먼저 왔지만, 어느 때엔 내가 가장 늦을 수 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이해된다. '공동선'의 개념은 어쩌면 배려와 닿아있지 않을까!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가 없어졌는데, 양 아흔 아홉 마리는 편할까? 목동은 편할까?

집 나간 탕자 비유처럼 한 자식이 곁에 없는데 아비의 마음은 편할까?

코로나19 시대에 국민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굳이 소득분위로 나눠서 분배를 해야될까?

독서이벤트를 끝마치고 상품과 간식을 주는데 굳이 등수를 나눠야할까?

양 한 마리가 없어져서 누리지 못하는 모두의 행복을 회복하려면 그 한 마리를 찾아야 한다. 

소수가 행복해지는게 아닌 모두가 함께 즐기고 기뻐할 수 있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구별과 선택이 아닌 같이 살아가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이것이 '모든 사람을 향해 열린 손, [하나님의 공동선] 이다. 

 

사람들 간에 각자 자신의 선악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도록,

각자 지닌 한 가지를 상대에게 선물로 내어 줌으로써 공동체 모든 구성원이 모두의 은사를 풍성히 누릴 수 있도록

디자인 하신 곳이 에덴동산입니다. (57쪽)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소중히 여기며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그분의 창조 질서 원리입니다.

철저하게 공동선을, 즉 개체의 선과 전체의 조화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선이 하나님 나라의 속성입니다. (58쪽)

하나님 나라는 모든 피조물 중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가지고 더불어 행복하게 지내는 공동선에 있습니다. (107쪽)

 

이런 공동선의 렌즈를 끼고 성경 읽기를 하면 얼마나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까!

그래서 지금 무엇을 읽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그 읽기를 통해 생각이 뿌리내리니까. 

결국 공동선은 모든 이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고,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거다.

유발 하라리의 "사회의 공동선은 (중앙 정부의 통제 방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들의 성숙한 연대와 협력을 통해)

개인에게 유익하면서도 사회 전체에 유익이 되는 방향을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의 얼굴, 즉 공동선의 삶이란 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멀리 갈 필요없이 가장 가까운 내 주변에서부터 공동선의 삶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삶.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설정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세상의 혼돈과 공허에서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의 숨결, ......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꾸 내 머릿속에 맴돈다. 

하나님이 좋으면 그걸로 되었어요.

모든 사람을 향해 내미는 하나님의 손길이니깐요^^

 

병든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돌볼 때 그가 낫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실제를 맛봅니다.

그 치유는 함께 기도해서 나은 공동의 축복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가친구들에 의해 예수님께 와서 치유되었을 때, 중풍병자 뿐 아니라 데리고 온 친구들도

기쁨과 행복을 공유했습니다. 주님이 그들 모두의 공동 행복을 위해 아픈 친구를 고쳐 주신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 때 그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동의 선을 위한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잃은 양 한 마리가 반드시 돌아와야 사는 나라이지, 우리에 아흔 아홉 마리나 있으니

괜찮아 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모두가 살기 위해 하나를 희생양으로 삼는 세상 나라와 달리

하나님 나라는 하나를 살림으로써 모두가 살게 하는 공동선의 나라입니다. (235~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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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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