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삽화가 故 장 자크 상페의 그림을 계속 보고 있다.
글보다 뾰족 펜으로, 연필로 쓱쓱 그린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는다.
그림으로 말하는 화가이다. 웃기면서 역설적이다.
고독과 애환, 짙은 슬픔의 그늘이 드리워져있다.
책「계속 버텨!」는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현실의 삶이 녹록치않음을 표현한다.
상페의 그림은 가벼운 붓터치인데, 이해하기도 힘들다.
이해보다 그림 너머 생각을 하게 된다.
장 자크 상페를 기념하는 나름의 방법이다.
≪난 내 가슴속을 깨끗하게 정화하고 싶어. 그리고 특히 머릿속도, 낡아빠진 말들일랑 개성이라고는 전혀 없이
다 똑같아진 이 조약돌들처럼 나의 뇌에서 모조리 쓸어버릴 거야. 예를 들어 '불가피한'이란 단어.
난 그단어를 내동댕이칠 거야. '~의 수준에서', 난 이것도 더는 참을 수 없어. 난 이 일상적 훈련에 맞춰
내 시간을 관리할 거야('관리하다'도 치워 버려야 해). 힘들겠지만 그래도, 바라건대, 대체로 긍정적(이 또한
지워 버릴 거야)일 테지. 추시계의 시간을 맞추듯(추시계의 시간을 맞추다니, 기막힌 표현이로군!)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자 하는 나의 책 집필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야. 이 책은 내 인생 최고의 보상이 될 거야.
말하자면 '케이크를 장식하는 체리'같은 게지. 이런, 내가 또 망언했군! 케이크도 없고 체리도 없을 테니 말이야!≫(86쪽)
상페의 혼잣말처럼 한 문장 속에는 상페의 기질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 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함과 규율(관습)에 얽매여 자유분방함을 구속하는 것,
틀에 박힌 전혀 개성없는 생각들을 경계하며 못 견뎌한다.
톡톡 튀는 생각의 유연성이 상페의 그림 속에 고스란히 투영된 것 같다.
≪모두가 되는 대로 아무 말이나 떠들어 대면서 나를 곁눈질하고 내가 하는 말을 엿듣고 이어서 곧 그 말을 왜곡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마도 나를 바라보지도 않으며 십중팔구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을 누군가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는 건 얼마나 큰 휴식인지요.≫(49쪽)
상페의 그림에 성당 그림이 많은 편이다.
세상 삶에서 버티고 버텨 결국 성당에 닿아 이리저리 재단하지 않는 말 없는 신에게 하소연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요즘 사람들의 삶의 고단함이리라.
그 하소연은 고단한 삶에 조금이나마 숨 쉴 수 있는 통로가 된다.
특유의 익살스런 장면도 있지만, 나름 진지한 장면은 글로 표현한 똘똘함도 보인다.
은유와 반어, 역설의 비유법이 빛 발하는 장 자크 상페의 그림은 예리하다.
≪난 가끔 엄청난 계약을 따내기도 했죠. 심지어 아주 근사한 여인들을 정복하기도 했다니까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무엇도 오후 3시경 단잠을 잘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주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죠.≫(68쪽)
거창한 삶을 기대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한 후 주어지는 꿀맛같은 오후의 단잠... 이것 하나면 OK~~
너무 평범한건데 이런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삶의 비루함과 팍팍함은 "계속 버텨!"라고 채찍질 한다.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은 전혀 감정의 동요없이 살아낼 뿐이다.
속내를 숨기고 가면을 쓴 채 홀로 힘겨움을 감내하는 듯.....
웃고 있지만 웃는게 아닌 짙은 슬픔의 그림자가 따라다니는게 일상이 된 삶.
작가지만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는 책이나 이야기를 지어내야 하고.
쓴 책이 잘되기를 노심초사 기다리다보면 글 쓰기 타이밍을 놓쳐버린다.
이미 화가인데도 사람들에게 여러 번 강조하며 예술가라고 말해야 하는 삶.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삶을 다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은 버겁다.
책「계속 버텨!」에서 장 자크 상페의 살아온 삶이 아니었을까!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삶도 속으로 들여다보면 아픈데 곪아있을 것 같다.
≪참 괜찮은 배우이긴 한데, 그래도 어쩔 수 없는가 봐요. 대사 몇 마디 읊조리다 보면 어느새
본인의 개인적인 문제까지 털어놓고야 만다니까요. (85쪽)
돈 많은 남자를 만나서 그 남자를 그가 가진 돈이 아닌 다른 이유로 사랑하게 된다면 좋으련만. (93쪽)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원하기만 하면, 찰싹, 이루어진다니까요! (94쪽)
난 말이지, 정말로 이상적인 사회 모델을 찾아냈지만, 그 사회엔 내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그 모델을 포기하고 말았다네. (109쪽)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럴 수도 있다고 해요.
하지만 이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니 그건 부당하군요.≫(113쪽)
장 자크 상페가 적은 메모(지)에 가까운 글들은 쓸쓸함과 씁쓸함을 자아낸다.
엉켜진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는 삶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자리 그대로인 듯... 그럼에도 계속 버텨!~
오랜 세월을 버텨낸 나무가 죽은 나무가 되어 밑동(그루터기)만 남았지만, 그 안에서도 생명이 자란다.
비를 맞고 바람이 불다 햇살에 씨앗이 날아와 어느새 풀이 자라고 있다.
그루터기 안 풀섶에 나비와 벌, 새가 머물다 간다.
어렵고 힘들지만... 계속 버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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