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표지 그림이 낯설지 않았다. 눈여겨본다.
빈센트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1890] 이다.
그리고 시인 윤동주의 詩가 만났다.
너무 유명한 시인과 화가라서 그 조합만으로 엮어진 책이 궁금했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스페셜「동주와 빈센트」이다.
익숙하게 읽혀졌고 보아왔던 시와 그림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도 많았다.
함께 엿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한아름 선물 받은 기분이다.
의미가 서로 통하는 시와 그림이 나란히 구성되어 있어서 나름 편집자가 신경 썼구나!!!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윤동주의 시 중에는 암울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시들도 있지만
일상의 소소함을 표현한 시들도 많았다. 알려지지 않은 시 속에서 시인 윤동주의 인간적인 면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일상의 언어가 고스란히 마음에 들어온다.
조개껍질, 병아리, 오줌싸개 지도, 비둘기, 식권, 종달새, 닭, 곡간, 빨래, 빗자루, 비행기, 굴뚝, 개, 편지, 버선본, 사과,
십자가, 호주머니, 코스모스, 고추밭, 해바라기 얼굴, 장미 병들어, 참새, 할아버지, 어머니...
詩가 어떤 상황인지 선명하게 연상이 된다. 일기장을 몰래 엿보는 듯......
일상의 사물과 자연에 대입한 삶의 모습이 정겹기도 하면서 삶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시들도 많다.
~ 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少年)들을 삼키었느냐! ▶투르게네프의 언덕 중에서
사연 없는 詩가 없다.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슬픔이 베어든다. 삶의 회환이 스며든다.
~ 나이 보담 무수한 고생 끝에 때를 잃고 병(病)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 ▶위로慰勞 중에서
일상생활 하면서 눈에 들어온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시로 녹여내는 것이 놀랍다.
그래서 더 특별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마냥 어려웠던 시가 어렵지 않게..... 하지만,
~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詩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쓰여진 詩 중에서
새삼 어느 시인에게나 쉽게 쓰여진 시가 있을까?
가만히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어보니 조선시대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이덕무가 생각이 난다.
일상의 가치 재발견이란 의미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은 베일에 가려진 작품들이 많았다.
밀밭, 사이프러스 나무, 별빛, 인물들의 초상, 바다 풍경, 정원, 협곡, 초가집, 쓸쓸한 거리 등
동일한 장소와 풍경이라도 보여지는 시선에 따라 비슷한 듯 다른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다.
가난과 고독, 외로움, 슬픔 이런 감정들이 고흐의 작품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삶에서의 녹록치않음을 두 사람의 시와 그림에서 느껴지다니.......
처한 시대적 환경은 다르지만 작품에서의 인간적 고뇌가 엿보인다.
빈센트의 그림을 자세히 보게 된다.
그림의 제목이 모두 영어로 되어 있어서 그림을 보면서 비슷하게 맞춘다.
詩를 읽으면서 추측해보기도 한다. 그래도 답답하면 검색해서 영어 단어를 일일이 찾았다.
그림의 제목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싶지 않지만, 내가 찾아 한참을 본 그림이기에 기억이 더 오래 머물 것 같다.
고흐 특유의 표현기법이 익숙하지만 거친 어떤 그림들 속에서 화가의 슬픔도 읽는다.
모든 작품에는 예술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기에 시인과 작가의 마음을 대신 읽어보려고 한다.
아쉬운 것은 윤동주의 시는 들어가는 첫 페이지에 詩의 목차가 있는데, 고흐의 그림은 목차가 없다.
시 제목 옆에 그림 제목도 나란히 썼더라면 친절함과 배려에 고마움 마음이 가득 담겼을텐데.........
동주의 시와 빈센트의 그림을 엮은 것은 탁월함으로 느껴졌고 충분히 마음 동하는데.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너무나도 잘 안다고 느꼈던 시인과 화가의 몰랐던 작품들을 많이 만났음에
읽으면서 마음이 콩닥콩닥 뛰었다.
잊지 않으려고 읽으면서 사진도 많이 찍어놨고, 마음에 들어오는 詩도 발견했다.
고흐의 그림도 잠잠히 보고.
별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 별을 그린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정말 그랬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에 대한 동경이 각자의 처한 삶의 환경은 다르지만, 별을 보면서 그들은
삶이 좀 더 나아지기를 꿈 꾸고 소망하지 않았을까?!
만돌이
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전봇대 있는 데서
돌재기 다섯 개를 주웠습니다.
전봇대를 겨누고
돌 첫 개를 뿌렸습니다. - 딱 -
두 개째 뿌렸습니다. - 아뿔싸 -
세 개째 뿌렸습니다. - 딱 -
네 개째 뿌렸습니다. - 아뿔싸 -
다섯 개째 뿌렸습니다. - 딱 -
다섯 개에 세 개......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 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하고 선생님한테
흰 종이를 바쳤을까요.
그렇잖으면 정말
육십 점을 맞았을까요.
이 詩가 유쾌하고 좋았다.
만돌이의 일상이 재밌다. 전봇대에 겨눠 맞춘 돌 갯수로 시험 점수를 가늠하다니....
만돌이의 장난스러움과 베짱이 그냥 좋아보였다.
따뜻하지만 가슴 한 켠 아린 시들이 많았는데, 이 '만돌이' 詩는 그냥 좋다.
책 한 쪽 귀퉁이에 접어놓은 부분들을 다시 폈다. 접은 흔적들만 남았다.
이 흔적들은 내 마음에 살짝 들어왔던 詩로 남을거다.
비가 오는 길목에서,
잿빛 밤 풍경 속에서,
여름의 바람이 드나든다.
이런 날 추천하고 싶은 책, 「동주와 빈센트」
여름 전시회에 온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맑음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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