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과 책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소재라서 자연스레 눈과 마음에 먼저 들어온다.
이래저래 상처받은 사람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 내가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들 등
만날 수 있었다. 그 곳에 가면 크고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나'란 사람에 대해 알게 된다. 외로운 섬처럼 홀로 있는 듯 하지만, 홀로가 아닌 함께.
나만 힘든게 아니었구나! 하는 은연중의 위로와 연대감은 느끼게 된다.
그 중심에 '사람'이 있어서 좋다. 나와 너, 우리들의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 일과 쉼의 문제,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괴리감,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먹고 사는 문제 등등 버거운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 결국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누구이고 여기가 어디인지, 나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지......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서 나를 잃어가고 있지 않는지 방황을 한다.
그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선택을 해야하고, 그동안 수고했던 나와 마주한다.
생각과 마음은 이제 아둥바둥 그만~~ 좀 쉬어갔으면 좋겠네...
그냥 지나쳤는데, 아늑하고 따스한 불빛을 만난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일 마치고 몸은 녹초가 되어 집으로 가는 길,
피곤함이 몰려오지만 서점의 불빛에 발걸음은 멈춰지고, 서점 안으로 눈길이 간다.
아무래도 쉬어가야 될 것 같다. 휴남동 서점에서.
퇴근하는 길에 잠깐 들러 10분이라도 책을 읽고 가면 길었던 하루의 마무리가 될 것 같은데.....
책을 읽지 않더라도 쉬어가도 될 것 같은 부담없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을 발견한 것 처럼 기쁠텐데.
조용하고 후미진 동네를 불 밝히고 있다면 좋겠다.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가지 않고, 서점 본연의 공간과 아울러 사람들의 소리를 잠잠히 들어주는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해가는 오랫동안 살아남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럴려면 서점 주인장의 결단과 용기, 진심이 있어야 된다고 했다.
책과 책방(서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읽었지만, 이 책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여느 책방 관련 책과는 결이 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거창하지않은 아주 소소한 이야기들이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삶의 지점이었다.
서점 주인(영주)과 바리스타 직원(민준), 민철과 민철엄마(희주)와 지미(커피콩 고트빈 사장),
명상하는 마음으로 뜨개질을 하는(정서), 우리말 문장에 필 꽂힌 작가(승우) 등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들 각자의 삶에서 살아내는 그 자체가 뭉클했다.
각자의 삶들을 잘 버무려 글 표현한 작가의 따뜻한 말들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좋은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편안한 책방에서 마주하는 좋은 책의 기준은...
《삶에 관해 말하는 책, 그냥 말하는게 아니라 깊이 있는 시선으로 진솔하게 말하는 책.
삶을 이해한 작가가 쓴 책, 삶을 이해한 작가가 엄마와 딸에 관해 쓴 책, 엄마와 아들에 관해 쓴 책,
자기 자신에 관해 쓴 책, 세상에 관해 쓴 책, 인간에 관해 쓴 책, 작가의 깊은 이해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면,
그 건드림이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그게 좋은 책 아닐까.》(41쪽)
서점을 운영하면서 영주가 현실의 벽과 마주할 때, 피하지않고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게 좋았다.
경제적 부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서점의 미래와 자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도 좋았다.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데, 휴남동 서점의 영주를 통해 잠깐이나마 생각한 것 같다.
편안함에 닿는 것과 행복해지는 것, 한 템포 쉬어가는 것과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
누군간의 원하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
꿈을 이루었다고 행복해지기엔 삶이 복잡하다는 느낌의 이런 소소한 고민들이 자연스레 글에 녹아있어서 따뜻했다.
새삼 이런 진지한 이야기들은 현실에서 누군가와 나누기엔 맺고 있는 관계가 얕다는 것과 생각의 차이가 느껴질 것 같아
섣불리 다가가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스스로가 벽을 만들게 된다.
가볍고 사소한 농담을 건넬 수 밖에 없는 관계의 거리감이다.
그래서 삶에 관해 말하는 책은 타인의 삶에 관한 이해가 먼저이다. 그 이해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프렌차이즈 커피 전문점에도 가보고, 소규모 커피 전문점에도 가보고, 여기가 제일 편해서 죽치게 된 거거든요?
음악이 마음에 들었고, 시끄럽지 않아 좋았고, 조명도 마음에 들었고, 또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좋았어요.
편한 느낌이 들어서 점점 더 자주 오게 됐고요. 수세미 뜨다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왠지 마음에 놓였다고나 할까.
책이 있는 공간이 주는 안도감 같은 것이 있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중략-
영주는 몇 시간마다 커피를 주문해야 서점에 피해가 가지 않는지 묻던 정서의 모습이 기억났다.
그 때 정서는 열심히 예의를 지키려 노력하고 있던 거였구나.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면서
각자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최적의 거리는 예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던 걸까.》(188쪽)
오랫만에 ㅋㅋㅋ 웃기도 하고, 눈에 물이 맺혔다.
현실의 삶에서는 위로받지 못하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데... 익숙한 가면을 쓰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녹록치않은 삶의 고단함의 가면을 벗는다. 정말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었으면!
휴남동 서점에서 수세미 뜨며 시간을 보낸 정서의 마음이 쉬이 이해된다.
어느 공간 속에서 내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 사물(책)이나 사람을 통해서 내가 이해받고 있다는 것은 안도감이다.
낯선 곳에서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머물고 있는 그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면
그 공간은 고마움의 공간이 되고, 아울러 애착 공간이 된다. 내게 학교 도서관의 자리가 그랬으니까.
받아들여지고 이해받고 있음을 느낀 후, 아무리 다른 큰 일이 엄습해와도 불안하지 않다.
《삶은 일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기엔 복잡하고 총체적인 무엇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은 미묘하며 복합적이다.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행불행을 책임지진 않는다.
-중략-
대충 아무 일이나 해봤는데 의외로 그 일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어. 우연히 해본 일인데 문득 그 일이 평생
하고 싶어질지 누가 알아. 해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그러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미리부터 고민하기보다
이렇게 먼저 생각해봐. 그게 무슨 일이든 시작했으면 우선 정성을 다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은 경험들을 계속 정성스럽게 쌓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274쪽)
책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잘 쉬었다 갑니다!^^
겉모습이 아닌 내면이 멋진 사람들의 반짝반짝 빛 나는 주옥같은 말들도 많이 나온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고 말하는게 찐이다. 자리를 뜨고 싶지 않게끔 만든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픈 사람들이다.
동네 사랑방, 참새 방앗간, 편의점 등등 역할을 하는 휴남동 서점처럼 현실에서도 이런 공간을 기대한다.
물들어가는 시간이다. 가을빛으로 옷 입혀지는 날들이고, 찬 바람이 스며들기도 한다.
이 좋은 날, 좋은 책을 만났다.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구매해서 소장하고 싶다.
선물로 주고 싶은 책이다.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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