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날들보다 도서관에서 시집을 많이 빌려온 날이었다.
벌써 시간은 3주가 흘렀다.
시도 읽고 다른 책도 읽고 쓰고 여전히 혼자 바쁜 척 했나보다.
항상 도서관에 가면 뭐에 홀린 듯 무리하게 책을 모셔온다.
검색한 책보다 도서관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면서 마음 가는대로 가져오는 때가 훨씬 많다.
정호승 시인의 시도 그랬다.
시에서 받은 느낌이 밝고 좋았는데... 빌려온 시집 <당신을 찾아서>는 이전의 시들과 달리
결이 다른 느낌을 받았다. 어둡고 무거웠다.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듯 고백적인 시들이 많았다.
죄를 회개하고 참회함으로 용서를 비는 얼핏 참회록의 느낌이 들었다.
시인 윤동주의 '자화상'과 '참회록'이란 시가 연상되기도 했다.
묵념
봄길을 찾아가다가
허리가 잘린 개미에게
숲길을 찾아가다가
온몸이 으깨어진 달팽이에게
빗길을 찾아가다가 결국
꿈틀꿈틀 땡볕에 말라 죽어가는 지렁이에게
끝내 하늘의 길을 찾지 못하고
날개마저 찢어져
길바닥에 떨어져 죽은 매미 주검에게
인간의 모든 발걸음을 멈추고 묵념하다
먼 지평선 너머
십자가에 매달린 한 청년의 미소가
저녁놀이 될 때까지
시인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 무엇일까?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살아낸다는게 참으로 고단한 일이구나 싶다.
깨끗하게 정직하게 살아가고 싶지만 내 양심이 자꾸 가만두지 않는걸까?
거울을 보면서 자기를 때를 닦아내는 시인의 고통이 느껴진다.
모란을 위하여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피어났구나
아직 피어나지 않았는데 아름답구나
아직 아름답지 않은데 향기롭구나
아직 향기롭지 않은데 먼 데서
나비떼가 날아와 꽃이 지는구나
아직 봄이 지나지 않았는데 온 천지에
기쁨의 슬픔이 찬란하구나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모란은 서둘러 피고, 아름답고, 향기롭고, 지고, 찬란했다.
봄이 아직인데 바빴다. 봄은 지나지 않았다.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분위기와 마지막 역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새똥, 해우소, 먼지..... 사람들이 피하는 소재물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자연을 의인화해서 친구로 맞아들인다. 기꺼이 자신의 삶에 합류시킨다.
낯설게 보기가 아닌 친밀함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어두운 시집이란걸 상쇄시키는 듯 하다.
그래서 이 시집의 따뜻함을 느꼈다. 온기가 필요하고 온기가 있는^^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
시각장애인이 사진을 찍을 때는
파도는 찍지 않고 바다만 찍는다
능선을 찍지 않고 산만 찍는다
나뭇잎은 찍지 않고 나무만 찍는다
인간은 찍지 않고 사랑만 찍는다
시각장애인이 혼자 사진을 찍을 때는
그저 웃는다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을 보면
온통 웃는 풍경뿐이다
골목도 웃고 지붕도 웃고
하늘을 나는 새도 웃고
골목의 개도 웃는다
보이지 않던 아기 부처님도
슬며시 골목에 나타나 미소 지으신다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을 보면
비어 있는 하늘이 충만하다
흘러가버린 구름이 꽃을 피운다
침묵의 그림자가 노래를 부른다
달그림자가 따뜻하다
살아가면서 때론 한번씩 나의 지나온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특히 그 때는 정말 힘들고 어려웠는데 시간이 지나니 어느새 어려웠던 삶이 시간 속에서
어떤 기억의 한 장면으로만 남아있음을 알게 된다. 그 때 잘 지나온 것에 대해 감사한다.
부끄럽고 참 얄밉게 행동했던 고약한 마음 심보도 어느새 동글동글해졌다.
매일의 시를 쓰야한다. 나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오늘의 나에게 말을 건네야한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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