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책이 모이기 시작했다.
지금 거실 전면 한 켠 책장엔 책이 빼곡하게 진열되어있다.
이사오고 난 후 정리의 수순을 거쳤는데도 다시 책장 책은 채워졌다.
분리수거 할 때 몇 박스의 책을 수시로 정리했음에도 줄어든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읽지 않는 편이고, 손 때 묻은 표시보다 줄 긋은 자국이 많다.
볕이 잘 드는 거실에 책장이 있다보니 먼지가 쌓이고, 책등은 누렇게 변색이 되었다.
출간된지 얼마되지 않은 책인데도, 변색으로 인해 낡은 책처럼 보인다.
책을 정리할 땐 겉으로 보이는 책 상태를 먼저 보고 결정한다.
나에게 얼마나 의미있었던 책인지를 판단한다.
이렇게 판단이 끝난 책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살아남았구나!
다시 책장에 가지런히 꽂히는 행운?을 누린다.
여간해서는 다시 읽지 않는 책인데, 다시 읽게 된다면 그 책은 아끼는 책이 된다.
아끼는 책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쉬이 버리지 못한다. 시간의 때가 쌓여간다.
그 추억 속 이야기도 시간 속으로 묻힌다. 그리고 어느 날,
시간이 숨겨 둔 보물을 발견한 것 처럼 추억의 책이 보였을 때... 뭉클해지는 마음!
중,고등학교 때 긁적거렸던 일기장을 펼쳤을 때의 그 마음.... 빙고!!!
나름 감수성 짙었던 그 일기장, 내 마음 상태가 고스란히 담겨진 풋풋한 10대의 그 일기장.
낡았지만 소중해서 더 오래 간직하고 싶다.
이 책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읽기 전에는 계속 책장 한 켠에 덩그러니 있었을텐데,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재영 책수선'을 알고 나니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을
더 빛나는 소장품으로 바꿔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수선해서 나만의 책으로 만들고 싶다.
옷 수선, 구두 수선은 익숙한데.... 책을 수선한다?! 낯설다.
하지만 말 그대로 낯설 뿐이다.
낡았다고 버리는게 아니라 다시 재활용한다는 의미이니까.
옷도 구두도 아끼고 애정하는 것이라면 잘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책도 한 개인에게 의미있는 애장품이라면 쉬이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쓰는대로 닳아 없어져 못 쓰게 되는 소모품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늘 갖춰 두루 쓰게 되는 비품이 된다.
진정한 수선의 의미가 아닐까!
책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은 뭔지모르게 참 신선했다.
책 수선도 낯설지만, 수선을 통해 재탄생된 책은 사물 그 이상의 가치를 품고 있는 듯 하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추억과 이야기로 되살아나고,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는 등
고전의 깊이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책 수선을 의뢰하고, 수선하고자 하는 책의 사연을 듣고, 수선을 하는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책은 비로소 의미가 된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詩 속에 담긴 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한 권의 의미있는 책이 탄생하기 위해 책 수선가와 의뢰인 사이에 오고 간 대화들.
어쩔 땐 뭉클함으로, 먹먹함으로, 아픔으로, 슬픔으로, 기쁨으로, 뿌듯함으로.
소설 <츠바키 문구점>의 포포가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손님들의 편지 대필 작업을 하는 것처럼
책 수선가도 종이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을 이어주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음에
참 복되고 귀하구나! 멋지다...
'이런 하늘색 어떠세요? 예쁘죠! 따님이 이 책을 많이 아끼고 좋아한대요. 알고 계셨어요?
기억 나실지 모르겠지만 따님이 어릴 때 한 여기 이 낙서들은 그대로 둘 거예요.
동백꽃은 여기에다가 찍을건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각각의 책이 쌓아온 시간의 형태를 정돈하고 다듬어주는 일이 책 수선가로서 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책은 그 안에 이야기가 오랫동안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집과 같다.
책을 만든다는 건 안전한 종이를 내장재로 써서 튼튼한 제본으로 골조를 쌓아 올린 뒤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마감을 하는, 한 채의 집을 짓는 일과 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수선한다는 건 오래된 집을 보수하거나 리모델링 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의 비유와 책 수선의 의미가 쉽게 이해된다.
처음부터 튼튼하게 지은 집은 세월의 흔적은 남지만 무너지지 않듯이,
아끼는 책의 상태가 좋기까지 한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변화를 주고 싶을 때도 있다.
면지는 그대로 두되, 표지와 덧싸개 꽃천(헤드밴드)과 가름끈의 리모델링이라면 새로울 것 같다.
흔한 보통의 책이 수선을 한 후 특별한 책이 된다는 것에 공감했다.
책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읽으면서 곰곰히 생각한다.
책 뿐 아니라 아주 사적인 일기장이나 메모장, 추억이 담긴 좋아했던 스타의 브로마이드 모음이나
결혼 또는 아이 성장 앨범, 차곡차곡 해마다 써왔던 가계부, 액자나 수첩 등
모든 지류는 수선이 가능하다고 했으니 내가 수선 맡기고 싶은 책은?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말씀 설교노트가 제법 된다.
표지 디자인만 변경해도 아주 귀하고 멋진 책이 되겠구나 싶은데...
내 삶의 성실함의 지표가 될 수 있는 글들을 참 많이도 적었구나 싶은게 스스로 대견해~!!!
재영 책수선을 이렇게나마 책을 통해 알았으니, 앞으로 책 수선할 기회가 있을지도.
아무리 생각해도 참 귀한 일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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