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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8. 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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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amygdala)

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거다. 

그런데 내 머릿 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29쪽)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알베르트 카뮈의 책 <이방인>의 첫 문장이다. 어머니 장례식에서 보인 무덤덤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남의 일인 양 주인공 뫼르소의 말과 행동이 서늘하면서 강렬해 기억한다.

이 행동으로 인해 뫼로소는 위기에 처하고 결국 사형 선고를 받는다. 

카뮈는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 울지 않는 모든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라는 말을 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모질고 냉정한 사람으로 규정된다.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다면 사회 생활하는데 문제가 된다.

책 「아몬드」를 읽으면서 계속 <이방인>의 뫼르소가 생각났다. 

그렇다고 책「아몬드」속 주인공 윤재가 뫼르소는 아니다. 윤재의 머릿 속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났다.

좋고 싫음의 감정과 공감을 느끼지 못한다. 남들과 다름은 금방 표가 나서 쉽게 표적이 된다. 

 

인간은 태어남 그 자체로 감사하고 축복이다. 기쁨이다.

주인공 윤재의 생일날, 크리스마스 이브에 늘 그랬듯이 엄마와 할멈, 윤재는 밥을 먹으러 나갔다.

특별히 눈 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서 분위기는 고조되고 기분이 좋아 마냥 웃었다. 

망치와 칼, '오늘은 누구든지 웃고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 세상을 증오한 남자.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의 묻지마 폭행과 살인에 사회는 책임이 없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사랑하는 할멈이 죽었고, 엄마는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윤재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줬던 할멈과 엄마가 사라졌는데도 울거나 슬퍼할 수 없다. 

처음부터 감정 표현도 표정 관리도 안 되는 아이며, 갑작스런 부재조차 감당하기 어려운데

끈 떨어진 연처럼 윤재가 터벅터벅 내디딘 사회는 낙인찍기에 바빴다. '그럼 그렇지~'...

사람들의 편견의 골은 깊어서 어느 한 사람을 이해와 관용의 시선으로 잘 보지도 않을뿐더러 바뀌지도 않는다.

싹이 자랄 수 없도록 싹뚝~ 잘라버리고, 경계를 긋거나 회복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책 <이방인>의 뫼르소는 살인 이유가 태양 때문이라고 했다. 재판장 내 사람들은 웃었다.

뫼르소가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았기에 그의 사형 선고는 당연한 듯 전혀 이상하지 않다.

왜 뫼르소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을까? 절망의 끄트머리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게 사람인데.

그는 철저하게 이방인이었다. 낯선 사람이자 주변인이란 생각은 이미 사람들도 인식하고 있었을 터.

자신이 아무리 무죄를 주장해도 뿌리깊게 박힌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란 체념이

뫼르소의 무기력함을 부채질하지 않았을까?

책 「아몬드」속 주인공 윤재는 이방인이 아니다. 

윤재를 모르는 사람들은 윤재가 감정없는 괴물이라고 경계하지만, 윤재는 게의치않는다.

그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또 사람을 통해 잘 성장해간다. 

윤재 옆에 할멈과 엄마가 있었고, 심박사가 있고, 곤이와 도라가 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윤재를 본다. 

관심이 사람을 살린다. 이방인 뫼르소 옆에 진심 뫼르소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뫼르소가 철저히 홀로 이방인이 아닌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며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있었을텐데...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표절 시비가 한창이다. 어디까지 표절로 볼 것인가의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음악인이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익숙하게 듣고 자란 어느 가수의 노래와 멜로디가 머릿속에 각인되어져 있다면,

비슷한 멜로디가 만들어질 수 있음에 표절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것 같지만,... 관점의 차이다. 

여전히 논란이 되면서 구분하고 판별하는 것은 그래서 참... 어렵다. 다른 이야기겠지만,

책 「아몬드」의 윤재와 생뚱맞게 알베르트 카뮈의 '이방인' 뫼르소의 오버랩은 책을 읽으면서 흔한 경험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뭐랄까 읽는 재미가 색달랐다. 꼭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는 것처럼.

아마 알베르트 카뮈의 <이방인>을 읽더라도, 책 「아몬드」의 윤재를 생각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몬드와 이방인, 다양한 생각의 틀을 발견하고 다른 시각으로 읽히는게 책 읽기의 유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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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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