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 가득, 초록의 싱그러움 가득 오월의 날들은 긴 연휴와 함께 시작되었다. 목요일부터 시작된 근로자의날, 학교재량휴업일과 주말, 어린이날/부처님 오신날, 대체공휴일까지 엿새 날의 연휴에서 사흘이 훌쩍 지났다. 긴 연휴라 짧게나마 다른 지역으로의 산책을 계획했지만 징검다리 봄비 소식에 날은 뒤로 밀려나더니 미세먼지 좋은 노오란 송홧가루 날림도 덜했던 어제 그동안 기대했던 산책을 했다. 장소는 경남 하동으로의 산책이다. 학교 재량휴업일이라 다른 사람들은 쉬지 않는 날이다. 아비토끼처럼 연차를 사용해서 쉬는 사람들도 꽤 있겠지만 국내보다 해외로 더 많이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주말도 아닌 평일의 하루 여행은 북적거리지 않아 좋다.
아이도 대구에서 집으로 와서 친구들을 만나 학교 선생님 뵈러 가는 일정이 있다. 아이는 아이대로, 우리 부부는 우리대로 서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이제서야 하게 되는구나 싶을 때 홀가분함과 허전함의 감정이 같이 느껴져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아비토끼는 좋은가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니(집-회사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옴) 나름 쉼이 필요했을텐데 이렇게 나가게 되다니.... 우리에게도 이런 시간이 오는구나! 짠하면서도 수고했던 우리 둘의 삶을 위로해본다.
시끌벅적한 장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조용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는 느린 곳이라면 무조건 좋다. 그냥 발길 닿는 곳 어디든지 가자고 했지만 가보지 않은 곳이 많아서 목적지가 있는 곳으로 동선을 짜본다.

# 화개장터
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하동은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지리산이 품고 있는 바교적 집과 가까운 동네라서 선택했다. 화개장터과 재첩으로 유명한 곳이라 선택했다. 예전에는 전통적인 재래 시장으로 오일장이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상시 시장으로 개장된다. 시장에 가면 구경하는 재미에 먹거리도 많고 활기가 느껴질거라 생각해서 갔는데, 조금 실망했다. 징검다리 연휴 속에 낀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날은 좋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다. 파는 품목도 산나물과 차茶 종류, 수수부꾸미와 쑥떡 그리고 식당마다 산채비빔밥과 채첩국, 은어튀김 등 하동 지방 특유의 먹거리로 구성되었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한결같이 똑같은 포장지로 둘러싼 품목들을 팔고, 여느 관광장소마다 파는 음식(핫바,어묵,번데기,닭꼬지 등)은 특색이 없다. 빠르게 지나치다 오란다와 유과를 팔고 있는 매대를 발견하고 하얀 뻥튀기 유과를 맛보라고 권하기에 먹어봤는데 달지도 않고 괜찮았다. 그냥 가는데 되돌아와 유과를 샀다. 달지도 않고 손에 달라붙지도 않고 먹을수록 오래 가는 은은한 맛?이 괜찮았나보다. 이런 유과 처음이다 싶어 한 봉지 만원 주고 샀는데 지금 집에서도 잘 먹고 있다. 소문난 화개장터에서의 구경은 사람의 북적거림이 없었던 조용함이다. 평일 11시쯤 도착했는데, 화개장터 앞 공용주차장에는 주차할 곳 많았다. 화개장터가 주 여행이 아니라면 내려서 구경할만하다.
하동야생차문화축제
봄날의 벚꽃이 진 자리에 초록의 가로수길이 섬진강 물줄기와 함께 반짝반짝 빛났다. 화개장터를 뒤로 하고 근처 쌍계사 가는 길로 식당(팔모정 식당)이 있어서 아침 겸 점심을 먹으로 갔다. 산채비빔밥과 감자전을 주문했다. 기대했던 산채비빔밥이 아닌 일반 가정식 비빔밥인 듯 해서 실망했지만 감자전은 괜찮았다. 화개장터에는 사람들도 차도 별로 없었는데, 식당 근처에는 차들이 줄지었다. 5.2.(금)~5.5.(월)까지 하동야생차문화축제가 열린다고 현수막을 보고 알았다. 우리가 간 날이 축제의 시작일이었다. 우리나라 최초 차 시배지인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매년 5월에 개최되는 정부지정 명예 문화관광축제라고 한다. 차茶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방문해도 좋을 듯 한데 축제 마지막 날 월요일에는 부처님 오신날이라 쌍계사로 오는 사람들도 많아서 더 붐빌 듯 하다.


#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타지로 나와 먹는 밥은 기대감이 있다. 그리고 타지에 와서 마시는 커피는 우리동네에 있는 같은 커피점이라 하더라도 맛이 다를 수 있다. 여행이 그렇다. 일상과 다른 기대감 때문에 거창하지 않아도 그냥 좋은 것! 음악이 있고, 커피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지 좋다. 오랫만에 둘이서 다른 곳으로의 산책.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동선을 맞추기 위해 끼워넣은 곳은 의외의 만족감과 기쁨을 선물했다. 적극 추천해도 되는 와볼만한 곳, 아... 여기가 우리에겐 하동 여행의 하이라이트구나!




악양면 평사리의 최참판댁이다. 산과 대나무 숲과 아담하게 자리잡은 마을, 그리고 앞으로 내려다보면 마음이 넉넉해지는 악양 들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처럼 오브랩되는 최서희와 그 일가, 주변인물들을 통해 일제강점기 때 우리 나라 상황을 그린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무대이다.







문간채를 넘었다. 마을의 소작농들이 오며가며 하는 문에서 바람이 지나갔다. 위엄이 느껴지는 최참판댁으로 들어가는 첫 문이었다. 양반집답게 넘나드는 문도 많았다. 넓어서 어디가 어딘지 몰라 숨박꼭질하면 못 찾을 듯 싶다. 아비토끼가 말한다. 최참판댁에서 보면 저 넓은 악양들판에서 하인들이 일하는 모습 한 눈에 보여 거드름도 못 피우겠다고. 특히 최참판댁 사랑채에서 보는 풍경이 압권이었다. 솟을대문이며, 장독대와 문간에서 문간으로 이어지는 집채들은 기세등등 권세있는 부잣집의 모습 그대로였다. 최참판댁 집을 배경으로 보통 사람들의 삶이 이어져가고 있다. 독립적으로 자기의 삶을 꾸려나가는 지금 시대와 많이 다르다. 세월의 무상함과 쓸쓸함이 베여있는 듯 시간이 멈춰져있다.




최참판댁의 대궐같은 집과 비교될 정도로 누구 아무네의 초가집들이 작은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삶을 살아내며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녹록치않은 삶들의 흔적이 곳곳에 펼쳐져있다. 작지만 북적댔을 관수네, 이평이네, 막딸네, 칠성이네, 오서방네, 봉기네, 영팔이네, 서서방네, 정한조네, 용이네, 우가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듯이 그렇게 북적이며 살아갔을 우리네 이웃들의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리듯 말듯.
# 박경리 문학관



드라마 세트장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당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그 시대적 상황을 바라본다. 25년에 걸친 작가의 글쓰기 시간은 인고의 시간이었고 시간이 많이 흘러 여러번의 재출간과 개정으로 보석과 같은 작품을 우리는 만난다. 과거와 현재는 서로 이어져있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마주하며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작가와 만났다. 고즈넉하게 다가왔다. 시대를 관통하는 좋은 작품을 만나고 그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을 찾아가 한참을 머물다오는 시간이 좋았다.
최참판댁 입장료는 2천원이고, 주차장은 충분하다. 들썩들썩한 축제 현장이 아니라서 가족 단위로 하동여행 겸해서 둘러보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박경리 문학관도 같이 있어서 작가의 삶도 엿볼 수 있다. 오는 길에 동정호도 보였는데, 시간 여유되면 차 한 잔 마시면서 둘러보는 것도 추천! 못 들러서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섬진강 대나무 숲길




당일치기 하동 여행의 마지막 산책길, 섬진강 대나무 숲길에 갔다. 최참판댁 대나무와 바람의 조화도 참 멋지게 어우러졌는데... 바람에 대나무 향내가 더욱 짙었다. 하동에서 구례로 넘어간 곳이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상도와 전라도를 넘나들었다. 산과 강은 도시로의 경계도 희미하게 만든다. 그냥 우리 대한민국의 땅 곳곳이다. 메타세콰이어 길은 아니지만 쭉쭉 뻗은 대나무들이 숲을 이뤄 봄인데, 여름 속으로 들어온 것 처럼 걷기에 탁월했다. 자전거를 타야할만큼 길지않고 적당하게 걷기에 좋은 숲길이었다.저렇게 굵은 대나무를 직접 눈으로 본 적은 거의 없어서 놀라웠다. 바람의 소리가 더 많이 들리는 듯, 그 속삭임이 고요했다.

화개장터-최참판택-섬진강대나무숲길 이어진 당일 하동 여행, 우린 제법 긴 산책이라고 부른다. 오월 시작하는 날에 발걸음 닿는 곳으로 여행은 정말 위로가 되는 참 예쁜 산책이었다. 이 산책 자주 하기로 했다. 시간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니깐 주어진 우리의 시간표대로 바람 수시로 씌어보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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