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삶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흔들린다.
이런 경우는 퍽 낯설어서... 당연히 사람이 먼저여야 하는 사회에서, 사람은 변방이었으니까.
사람이 있어야 될 자리에 무형의 부와 재산, 권력, 이념이 허울좋게 위치했으니까.
그래서 사람이 우선인 인문학적 고찰에 관심이 가고, 덩달아 마음이 따듯해졌다.
연이어 철학자 강신주님의 책을 읽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작가는 모르고 다소 에세이적인 제목에 마음이 닿았는데, 철학자 강신주님의 책이였다니.... 통했다.
아주 명료하게 부담스럽지않게 이해하기쉽게 철학자의 시선에 마음이 끌렸다.
사람에 관한 따뜻한 환대가 오랫동안 내 마음에 머문다.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생경하면서 낯설다. 특히 사람에 관해서라면...
삶에서 늘 마주치며 관계를 맺어서 정해진 사회 테투리 속에서 함께 하니까.
겉모습으로 사람을 보게 되니 잘 아는 사람일지라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읽고, 삶의 문맥을 읽는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닌거다.
읽어서 파악되고 이해되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니까 시간의 물들임이 필요하다.
읽어내야 할 사람의 문맥, 살아내야 할 삶의 무늬가 인문학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널뛰기하듯 질문과 답이 오고간다.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궁금했던 물음이고,
진부하지 않으면서 튀지않는 따듯한 답이라면 힘든 삶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건너가지 않을까!
막연한 현실에 살아내려고 조금이라도 힘을 내보지 않을까!
이 책 읽고 사람과 관계,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모나지않고 둥글둥글게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자본주의와 팬데믹 그리고 비대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양산.......
스마트폰으로 연결되는 혁명이라 불리는 것들(4차혁명, 정보혁명, 디지털혁명 등)은 인간의 노동력을 빼앗고,
세대간의 단절을 부추긴다. 몸은 편리해지지만, 마음은 어딘가모르게 불편해지고 있다.
부와 재물, 권력의 구심점이 되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되 계속 팽창하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견제와 경쟁 구도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유행을 만들고 전파하는 것이 소비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만드는 효과적인 전략인 거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유행이 어떤 스타일을 집단적으로 선호하거나 선택해서 만들어졌다고 착각을 해요.
사실은 거꾸러 산업자본이 유행을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소비하도록 만드는 거예요.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취향을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각인시키고 있어요"
철학자의 안타까운 마음이 책 구석구석 잘 읽혀졌다. 편리함과 맞바꾼 인간성의 상실이 안타깝고, 두렵고, 씁쓸하다.
자본주의 사회와 오늘날 변화되는 곳곳의 사회 현상들을 철학자의 시선으로 말해준다.
그 시선은 오늘 나의 삶을 어떻게 잘 살아내야할지 팁을 주는 듯 친절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돌고 돌아 사치품이 되고 필수품이 될 뿐.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을 다르게 새롭게 볼 줄 아는 시선이 필요하다.
객관적인 타인을 주관적으로, 주관적인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하는 인문학적 감수성을 갖춰야하는 이유가 된다.
"경쟁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하루에 한 번쯤은 산책을 한다든가, 음악을 듣는 시간을 갖는다든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사람들 얼굴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이런 것에서부터 출발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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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광활한 대기가 내 책을 펼쳤다가 덮고
파도가 바위에서 솟구치며 산산이 부서진다
날아가라, 나의 현혹된 페이지들이여!
부수어라, 파도여! 흥겨운 물살로 부수어라
돛단배들이 모이고 쪼고 있던 저 평온한 지붕을!
- 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詩 마지막 구절 -
폴 발레리... 프랑스의 시인이자 평론가라고 적혀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해변의 묘지>라는 詩의 마지막 구절이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에서 이 구절이 자막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폴 발레리의 詩도 잠깐 찾아보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 <바람이 분다>도 넷플릭스에 있다.
詩는 어렵다. 자꾸 의미를 해석하려고 하니까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철학자는 바람을 좋아하고 언젠가는 바람에 대한 작은 책도 쓰고 싶다고 했다.
철학자 마음에 깊이 각인된 깊이가 있는 사유들을 조만간에 읽어 볼 것 같다.
누군가가 재해석한 문학은 삶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읽을수록 인문학적 깊이를 느낄 수 있으니 기대가 된다.
고착된 내 삶과 생각에 아주 작은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으니까.
소통 가능성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 철학의 임무라고 했다.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 편견과 선입견이 아닌 따뜻한 시선과 환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매번 느끼고 배운다.
인문과 철학이 만났을 때가 아닐까!
그런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많기를 철학자는 기대한다.
인문과 철학, 정치와 사회 현상과 문제점 등 복잡하게 얽혀있는 그 속에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유들이 좋았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이렇게 생각이 한 뼘 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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