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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1853~1890년 #아를-생레미-오베르에서 3년 #오베르에서 70일 그리고 70점의 작품 #예술가의 종착지 #오베르에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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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4.30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70일; 예술가의 종착지, 오베르에서의 시간
2023. 4. 3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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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책을 읽고 나면... 한동안 먹먹하다.
읽고 정리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쓰야할지 막막하다.
화가의 삶을 알기에 다시금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쓴다는게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빈센트 반 고흐의 책은 늘 가슴 뛰게 한다. 
 
37세(1853년~1890년)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불후의 화가이자 죽음 이후에 삶과 작품이 재평가 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짧은 삶을 책으로 마주할 때 마다 마음에 찬 바람이 스며든다.
녹록치 않았던 삶을 산 짧은 시간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 때문에.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70일을 재조명한 책을 읽었다.
책「반 고흐의 마지막 70일; 예술가의 종착지, 오베르에서의 시간」이다. 
 

 
아를 그리고 정신병원(1888년 2월~1889년 5월/15개월)
생 레미 수도원(요양원 1889년 5월~1890년 5월/1년)
오베르(1890년 5월~7.29./70일)
음울했던 파리 대도시를 떠나 3년간 아를-생 레미 드 프로방스 수도원-오베르로 떠돌이 생활을 했다.
몸과 마음 기댈 곳 하나 없이 얼마나 많이 불안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동생 테오가 있었지만,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부담감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동생 테오에 대한 미안함을 갚기위해  또 얼마나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을까?
그 마음을 찬찬히 읽어내려가니 비로소 그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은 삶처럼 역설적이다. 찬란한 슬픔의 봄처럼...
음울한 마음을 밝은 노랑으로 때로는 보색으로 표현하는 그림은 역동적이지만... 참 많이 아프다!
반 고흐의 본격적인 화가의 삶 10년 가운데 프랑스 아를-생 레미-오베르에서의 3년간 작품이 가장 많았다.
고흐의 마지막 종착지 오베르에서 그린 70점의 그림을 엿볼 수 있어서 아울러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를 자신의 노란방에서 고갱과의 불화로 한 쪽 귀를 자르고, 불안한 마음과 우울증에 정신병원으로.
다시 생 레미 수도원에서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고흐가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병이 회복되었다고 의사들은 진단하지만 여전히 그의 삶과 주변은 폭풍전야...
가난했고, 열악했고, 불우했다. 마음의 병은 주변 환경에 의해서도 좌우되기에 쉬이 낫지 않는다.
그리고 오베르행~~ 고흐도 오베르행이 자기 삶에서 마지막 일 줄은 몰랐을텐데...
지금보다는 낫겠지란 조금, 아주 조금의 희망을 품고서 오베르로 향하지 않았을까?
 
다시 시작하게 된 오베르에서의 삶,
여전히 가난했지만 오베르에서의 삶은 빈센트 반 고흐에게 나쁘지 않았다.
아픈 사람도 자연속으로 들어가면 더 나빠지지는 않고 조금씩 회복되듯이,
오베르의 자연은 고흐에게도 평안을 주는 것 같다. 여전히 삶은 불안하지만...
그림을 그릴만한 소재들이 다양했다.
오베르에서 만난 가셰박사 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호의적이고.
기꺼이 작품의 모델도 되어주었다. 가난한 고흐에게서 초상화의 모델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기에. 
오베르에서의 짧은 70일, 그리고 70점의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데...
빈센트 반 고흐의 불꽃같은 치열한 삶을 엿볼 수 있다. 
힘드니깐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들을 떼어내고 잊으려고 하는 몸부림같이 느껴진다.
인간적인 짠함이 곳곳마다 베어있다. 
 

 
오베르에서의 70일도 고흐에겐 녹록치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조금더 참아줬더라면...
동생 테오가 형 고흐에게 충분히 아주 믿음직스레 잘했지만 조금 더 세심하게 마음을 나눴더라면
고흐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오베르에서 평안의 시간이 더 연장되었을텐데...
가셰박사가 옆에 있었지만, 고흐와 자주 친밀한 시간을 가졌더라면 고흐가 위로받고 작품 활동을 즐겼을텐데...
동생 테오도, 가셰박사도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고흐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주는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로 하는 위로도 중요하지만, 그냥 그 마음 옆에 살짝 있음으로도 위로가 되니깐.
가난했고 불우했던 빈센트 반 고흐 옆에 단짝친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히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있는 내(우리)가 위로를 받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오베르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오베르 성당과 정원, 평원, 밀밭, 오베르 우아증강, 포도밭, 농가/초가집/주택 등
해질녘, 구름 낀 하늘 아래, 밤꽃/양귀비/덤불꽃/장미 등등 특히, 이런 풍경화에 대해 빈센트는 
죽기 전 7월에 집중적으로 이런 풍경화들을 그렸다.
"거친 하늘 아래 광활하게 펼쳐진 밀밭이며, 나는 슬픔과 극한의 외로움을 표현하려 했다"
7월 중순의 이 감정적 토로는 그가 점차 가족과 친구의 지원 없이 버려진 느낌을 받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작품을 통해 우리는 화가를 알아가고 이해한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 오베르, 마산과 부산쯤 될려나?
아주 먼 곳도 아닌 작품의 주 근거지였던 곳에서 불과 1시간 거리 떨어진 곳에서
안식을 찾으려했던 고흐의 삶이 많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는 그냥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을 뿐인데.....
안녕, 빈센트 반 고흐 그리고 오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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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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