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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18년 #다산의 사람 그릇 #다산학 #나라다운 나라 백성다운 백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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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2.08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산 정신
2020. 12. 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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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으로 부유해졌고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만, 허함이 느껴진다.

물질적 풍성함과 부요함으로 대체될 수 없는 정신적 피폐함이다.

삶의 공허함으로 연결되어진다.

아무리 채워넣어도 느껴지는 허기를 달래려면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할까?

결국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을 이해하는데서부터 출발하는 인문학이 도움 될 것 같다.

다산 정약용에게서라면 각자의 삶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책  「다산의 사람 그릇」이다.

 

18년 유배지에서 실학자로 잘 알려진 다산 정약용을 만난다.

고등학교 때 국사 시간에 달달 외웠던 정약용의 대표적인 책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당연히 와닿지 않았다. 그냥 외우기만 했을 뿐.

그런데 이 책들의 의미를 다른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다.

다산 정약용의 삶에 관해 폭넓게 마주하게 된다.

제대로 한 사람을 알기까지 책에 담긴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너무 잘 알아서 익숙하다고  화가 '빈센트 반 고흐'도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그 앎이란 것은 곁으로 드러난 단편적인 배경지식이다.

「다산의 사람 그릇」을 통해서 정약용의 18년 유배생활에서 지식과 지혜의 진귀함을 엿볼 수 있다.

길고 긴 시간 낯선 곳에서 자기를 비우고 겸손함으로 삶을 살아낸 조선이란 한 시대의 참선비를 만난다.

 

--- 백성이 근본임을 헤아리며 다스린 치수의 우임금

--- 최고의 목민관으로 민생을 품어 다스린 정승 부열

--- 백성의 생사고락 시로 함께 풀어낸 귀거래 도연명

--- 백성을 생각 성찰하며 큰 바위에 매일 절한 미불

 

강진 다산초당의 정석(丁石) 바위에 새겨진 글이다.

정약용이 닮고자하는 인물들이다. 그 인물들을 통해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실제 정약용은 관직에 나가서도 탐욕과 부패와 거리가 멀었고,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지 않았다.

오로지 위국과 애민정신이 그의 삶의 모토였다.

 

종교적인(천주교) 모함으로 한 가족이 풍비박산이 되고 뿔뿔이 흩어졌다.

형(정약전)은 흑산도, 정약용은 강진으로 가는 갈림길(나주 율정 삼거리)에서의 서글프고 애닳은 마음.

지어진 다산의 詩와 문장이 서정적인 듯 아픔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18년 유배생활은 아이러니하지만 다산학이란 학문적 업적을 일궈낸 문장의 전성기였다.

600여권의 책을 펴냈고 그 책들은 모두 체득한 열매들이었다.

 

특히, 지아비 없이 홀로 남겨진 어린 아이들을 양육해야하는 아내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

커가는 아이들에게 아비가 없어도 올바르게 잘 자라게 하기 위해 편지로 참교육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식에게 폐족 집안이라는 오명을 벗어나는 길이 오직 독서와 학문하는 길밖에 없다며 수많은 편지로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을 적에 병이 든 아내가 헌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는데,

그것은 시집올 적에 입는옷으로 붉은빛이 담황색으로 바래서 글 쓸 종이 대용으로 알맞았다.

이를 재단, 조그만 첩으로 만들어 훈계하는 말을 써서 두 아이에게 전해준다.

다음 날에 이 글을 보고 감회를 일으켜 두 어버이의 흔적과 손때를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그리는 감정이 뭉클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하피첩'이라고 명명한다.

1810년 초가을에 다산 동암에서 쓰다.

--- 하피첩에 제함 / 다산시문집 제14권 ---

 

이 장면을 읽으면서 잠시 생각해봤다. 아내로부터 한 꾸러미의 보따리를 받았는데,

그 속에는 아내가 처음 시집왔을 때 입고 왔던 홍치마를 곱게 싸여있다. 

아내는 볼 수 없는 지아비를 생각하면서 그 속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정과 사랑을 싸서 보낸 듯.

여기에 뭉클하고 울지 않을 지아비가 있을까?

 

잘못된 사회 제도와 피폐한 백성들의 삶, 관리들의 횡포가 다산의 시와 글 속에 담겨있다.

이런 다산이 양반들 눈에는 얼마나 눈엣 가시일까?

기득권은 한 번 가지게 되면 계속 그 맛에 길들여지게 마련이다.

정조와 정약용의 콜라보 정치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위협적이었을까?

200년 전의 정치가 지금도 여전히 재생되어지고 있다.

그래서 변화는 어느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엿부족이다. 다산이 느꼈을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변화와 개혁으로 새 나라와 좀 더 낫은 삶을 백성들에게 돌려주고 싶은데 자신은 끈 떨어진 연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산학의 그 정신이 아닐까!

 

♣ 담을 스치고 있는 산복숭아 나무의 풍경

♣ 문발에 부딪치는 버들가지

♣ 따뜻한 날에 들리는 꿩 우는 소리

♣ 가랑비 내릴 때 물고기 밥 먹이는 일

♣ 단풍나무 잎이 아름다운 바위에 얹혀있는 모습

♣ 못에 비친 국화꽃

♣ 한 언덕 위의 푸르른 대나무

♣ 만 개 골짜기의 소나무 물결

 

다산은 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뒤 주변 경관을 친구 삼아 자신이 아끼는 풍경 8가지를 골라

'다산팔경사'를 지었다. 아, 이 분 정말 다재다능하구나!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학 등 방대한 지식의 소유자구나.

책 맨 앞 표지에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다산에게 사람을 묻고 인생을 배우다' 의미가 느껴졌다.

미술, 조각, 건축, 토목, 수학, 과학, 음악 등 전 분야에 걸쳐 천재성을 발휘하며 ‘르네상스적 천재’라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란 한 인간의 정체성과 맞닿았다는 느낌을 정약용에게서 보았다.

실학자란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리게 삶을 살아낸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다.

시대를 초월한 다산 정약용의 학문과 뜻이 지금 제대로 전해진다면 다산이 그토록 꿈꾸었던

'나라다운 나라, 백성다운 백성'이 정의와 원칙, 법과 공정함, 양심을 자양분으로 제대로 세워져 갈 것이다.

그런 나라가 도래할까?!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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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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