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쉰 줄에 들어서니 부모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정을 꾸리고 정신없이 그 속에서 살아낼 때는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다.
시간이 입혀지니 비로소 보여지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내가 보는 시선과 관점이 점점 변화되어지고 유연해졌음을 느끼는 지점이다.
나이듦은 누구나 원하지도 않았다. 그저 삶의 시간표대로 흘러갔을 뿐인데, 지나고 나니 부모가 되었다. 젊은 부모가 노년의 부모를 생각할 즈음에는 품 속 아이가 성장을 하고 자기의 길로 나아가려고 날갯짓을 한다.
100세란 기대수명 속에서 사람의 인생에는 계절이 있고, 삶에는 시간이 있다. 50줄에 선 나는 어디 즈음에 와 있을까? 늦여름과 초가을? 하루 24시간 속에서 반을 넘긴 정오를 지나 볕 가운데 3시에 닿았을까? 시간과 계절에 상관없이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야 할 때다. 그리고, 일흔 줄에 서 있는 부모님은 표면상으로 늦가을과 초겨울 밤 9시쯤에 닿았을까? 쉰의 자식과 일흔의 부모님은 각자의 삶에서 남은 시간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날마다 쇠약해져가는 부모님과 나름의 보살핌으로 옆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아들의 일상을 다룬 책,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을 읽었다. 언제나 책 겉표지의 뒷장을 읽고, 목차를 읽는다. 책은 목차 대신 '우리에게 서로가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부터 시작된다. 부모와 자식간 친밀하지 않더라도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힘이 될 때가 있다. 각자 한 방향으로 보았는데, 이제서야 같은 방향으로 생각과 마음이 서로를 향한다. 연민과 애틋함의 마음이 들어선다. 부모님의 마음을 차츰 헤아리는 시점이다.
책,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읽는 내내 내 마음과 상황이 겹쳐졌다. 시간의 나이테가 짙어져 기억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시고, 홀로 넓은 집에 남겨져 요양보호사들의 종일 돌봄이 필요한 아버지(보)와 한시라도 떨어질 수 없는 반려견(식스텐),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들여다보며 필요하거나 불편한 부분에 대해 챙기는 아들(한스)의 모습은 지금 우리 세대와 앞으로의 자식 세대들이 감당해야 될 부분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서먹하다. 녹록치않았던 삶을 살아왔던 아버지(보)와 노인(보가 아버지를 지칭할 때, 노인)의 관계는 살얼음판이다. 서먹하면 관계 회복의 돌파구라도 있지만 살얼음은 깨어지면 끝이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손길을 내밀었을 때 아들은 바빴다. 그리고, 회복의 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렀다고 말하고 싶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따뜻한 말은 표현할 수 있을 때 자주 표현하라고 한다. 나쁜 감정은 바로 표출하지 않고 한 템포 쉬며 말하기!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사람을 향해 진심으로 다가가는지 보의 일상을 통해 잔잔하게 스며들었다. 서먹하고 섭섭하지만 아들의 마음을 더 헤아려주는,(노인이 자기를 대하듯) 아들 보에게 무섭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엿보았다.
요양보호사들이 시간마다 오며가며 노인을 돌본 후 항상 써내려가는 일지는 간단하다. 무엇을 먹고, 어떤 행동을 하였고, 감정상태는 어떤지... 간단하지만 그 기록은 전환점을 맞이하는 노인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중요한 부분이다. 5월부터 10월까지 써내려간 다섯달의 기록 속에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는 아버지 보의 일상이 담겨있다. 일지을 보면서 아들은 아버지를 살핀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반려견(식스텐)을 산책시키는 것과 연로한 아버지가 혹여나 다치시지 않을까 하는 아들의 걱정은 아버지와 식스텐을 떼어놓는 것으로 결정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생각이 다른 지점이다. 이 부분은 한 쪽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이해와 설득을 통해 생각의 차이를 좁혀가야하는데, 일방적이다. 서로의 마음을 몰라주는데 대해 섭섭증이 올라온다. 비단 보와 한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부모와 자식간 관계에 있는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다. 부모가 참거나, 자식이 참거나... 싸움이 되지 않게끔. 다음번엔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더 조심하게 되었다.

서로간 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마음을 힘들게 하는지....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거라고 말하지만 시간이 가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있다. 다르게 살아온만큼 좁혀지지않는 거리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으로만 운다. 살얼음판을 걷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싶지 않으니깐. 낯선 빈 자리와 부재의 시간이 다가올거다. 이미 늦은 때라고 말하기 전에 부모님을 향한 진심을 알아가고 닿고 싶다. 부모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싶다. 그러면 부모님도 삶을 마치고 평안하게 당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책,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은 부모님을 향해 다가가는 것에 대해 마음은 굴뚝같은데 표현이 서툰 분들께 꼭 읽어보시라고 강권하며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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