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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7.11 [2025_산책6]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4
  2. 2025.06.21 [2025_산책5]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3. 2025.06.01 [2025_산책4] 작별하지 않는다 12
2025. 7. 1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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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쉰 줄에 들어서니 부모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정을 꾸리고 정신없이 그 속에서 살아낼 때는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다.

시간이 입혀지니 비로소 보여지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내가 보는 시선과 관점이 점점 변화되어지고 유연해졌음을 느끼는 지점이다. 

나이듦은 누구나 원하지도 않았다. 그저 삶의 시간표대로 흘러갔을 뿐인데, 지나고 나니 부모가 되었다. 젊은 부모가 노년의 부모를 생각할 즈음에는 품 속 아이가 성장을 하고 자기의 길로 나아가려고 날갯짓을 한다. 

 

100세란 기대수명 속에서 사람의 인생에는 계절이 있고, 삶에는 시간이 있다. 50줄에 선 나는 어디 즈음에 와 있을까? 늦여름과 초가을? 하루 24시간 속에서 반을 넘긴 정오를 지나 볕 가운데 3시에 닿았을까? 시간과 계절에 상관없이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야 할 때다. 그리고, 일흔 줄에 서 있는 부모님은 표면상으로 늦가을과 초겨울 밤 9시쯤에 닿았을까? 쉰의 자식과 일흔의 부모님은 각자의 삶에서 남은 시간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날마다 쇠약해져가는 부모님과 나름의 보살핌으로 옆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아들의 일상을 다룬 책,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을 읽었다. 언제나 책 겉표지의 뒷장을 읽고, 목차를 읽는다. 책은 목차 대신 '우리에게 서로가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부터 시작된다. 부모와 자식간 친밀하지 않더라도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힘이 될 때가 있다. 각자 한 방향으로 보았는데, 이제서야 같은 방향으로 생각과 마음이 서로를 향한다. 연민과 애틋함의 마음이 들어선다. 부모님의 마음을 차츰 헤아리는 시점이다. 

 

 

책,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읽는 내내 내 마음과 상황이 겹쳐졌다. 시간의 나이테가 짙어져 기억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시고, 홀로 넓은 집에 남겨져 요양보호사들의 종일 돌봄이 필요한 아버지(보)와 한시라도 떨어질 수 없는 반려견(식스텐),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들여다보며 필요하거나 불편한 부분에 대해 챙기는 아들(한스)의 모습은 지금 우리 세대와 앞으로의 자식 세대들이 감당해야 될 부분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서먹하다. 녹록치않았던 삶을 살아왔던 아버지(보)와 노인(보가 아버지를 지칭할 때, 노인)의 관계는 살얼음판이다. 서먹하면 관계 회복의 돌파구라도 있지만 살얼음은 깨어지면 끝이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손길을 내밀었을 때 아들은 바빴다. 그리고, 회복의 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렀다고 말하고 싶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따뜻한 말은 표현할 수 있을 때 자주 표현하라고 한다. 나쁜 감정은 바로 표출하지 않고 한 템포 쉬며 말하기!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사람을 향해 진심으로 다가가는지 보의 일상을 통해 잔잔하게 스며들었다. 서먹하고 섭섭하지만 아들의 마음을 더 헤아려주는,(노인이 자기를 대하듯) 아들 보에게 무섭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엿보았다. 

 

요양보호사들이 시간마다 오며가며 노인을 돌본 후 항상 써내려가는 일지는 간단하다. 무엇을 먹고, 어떤 행동을 하였고, 감정상태는 어떤지... 간단하지만 그 기록은 전환점을 맞이하는 노인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중요한 부분이다. 5월부터 10월까지 써내려간 다섯달의 기록 속에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는 아버지 보의 일상이 담겨있다. 일지을 보면서 아들은 아버지를 살핀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반려견(식스텐)을 산책시키는 것과 연로한 아버지가 혹여나 다치시지 않을까 하는 아들의 걱정은 아버지와 식스텐을 떼어놓는 것으로 결정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생각이 다른 지점이다. 이 부분은 한 쪽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이해와 설득을 통해 생각의 차이를 좁혀가야하는데, 일방적이다. 서로의 마음을 몰라주는데 대해 섭섭증이 올라온다. 비단 보와 한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부모와 자식간 관계에 있는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다. 부모가 참거나, 자식이 참거나... 싸움이 되지 않게끔. 다음번엔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더 조심하게 되었다. 

 

서로간 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마음을 힘들게 하는지....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거라고 말하지만 시간이 가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있다. 다르게 살아온만큼 좁혀지지않는 거리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으로만 운다. 살얼음판을 걷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싶지 않으니깐. 낯선 빈 자리와 부재의 시간이 다가올거다. 이미 늦은 때라고 말하기 전에 부모님을 향한 진심을 알아가고 닿고 싶다. 부모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싶다. 그러면 부모님도 삶을 마치고 평안하게 당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책,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은 부모님을 향해 다가가는 것에 대해 마음은 굴뚝같은데 표현이 서툰 분들께 꼭 읽어보시라고 강권하며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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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5. 6. 2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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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의 삶 이야기로 책을 쓴다면 책의 분량도 어마할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삶을 살아서 나올 이야기가 없다지만 사람의 살아온 삶은 평범하지 않다. 평범하다 하더라도 그 누구나의 삶을 마음대로 규정할 수 없고. 그래서 이야기는 삶의 무늬로 수 놓아진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내 삶도 말하게 된다. 듣고 말하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소통을 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관계에 있어서 더 친밀할까, 대화를 이끌어가는 특별한 기술이 있는걸까, 이야기가 많은걸까? 길게 이어지지 못하는 대화를 몇 번 하게 되면 더이상 말을 하지 않게 된다.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쌍방향의 티키타카는 안 되더라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것! 이야기를 잘 듣고 다음번에 들은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깐. 머릿속은 이야기 저장고가 되고, 마음은 내가 들으면서 느낀 너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로 자리잡아간다. 이야기의 물꼬는 트이고, 너와 나는 한 뼘 더 가까워진다. 

 

이야기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다. 이야기를 수집하려면 듣는게 기본인데, 여기에 청소 도우미로 자기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다. 책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를 읽었다.  일정한 날과 시간마다 일로서 사람을 만나는 제니스는 어떻게 이야기를 수집하는 여자에서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가 되었을까? 그 해답은 등장인물 캐리루이즈 할머니의 말 속에 있다. "나는 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살았다고"(P88) 과연 제니스 뿐 아니라 나도, 많은 사람들도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살아왔을까? 초점이 내 삶이 아닌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관습에 따라 살아오지 않았나싶다.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과 지키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천일야화 또는 익히 잘 알려진 아라비안 나이트 속의 세헤라자데는 이야기 수집가이면서 지키는 여자이지 않았을까?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천일하고 하룻밤 동안 왕에게 밤마다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왕은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 죽일 수 없게 된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와 미뤄지는 죽음으로 세헤라자데는 자기를 지켰으니깐. 듣고 싶은 이야기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희망을 꿈꾼다. 제니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고 공감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공유하는게 부담스럽고 힘들다. '죄책감은 허락을 구하지 않고 들어오는 것 같아요. 문을 두드리고 밖에서 얌전하게 기다리지 않는다고요. 번식력이 아주 강한 잡초처럼'...(p362) 이야기꾼인 제니스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아주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똬리를 틀고 있는 죄책감이란 감정을 생각한다. 마음(감정)이란 것은 아주 사소한 듯 보여도 얼마나 민감한지... 오랜 시간의 삶을 옭아맬 정도로 죄책감이란 감정은 복합적이다. 불안과 우울함, 자존감 낮아지게하고, 일상에서의 무기력함에까지 이어진다. 자기의 이야기를 숨기려하는 마음이 이해된다. 그 마음이 안타깝기도 했고. 그럼에도 그녀는 쉬이 무너지지 않는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사람은 자기 감정까지 차츰 돌아볼 수 있을테니깐.  '때때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약간의 희망뿐이야'(p348) B부인의 말은 타인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지키는 것은 외따로 떨어진 의미가 아닌 동일선상에서 의미를 부여한다. 세헤라자데처럼 자기를 지키는 아주 큰 희망일 수 있으니깐.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살면서 좋았던 일을 공유할 뿐 아니라 화자의 나쁜 기억을 내보내는 기능, 바람에 먼지가 흩날리듯 나쁜 기억을 흩어지게 하는 기능도 있는 걸까?'(p391) 이야기를 하면서 차마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짓눌려왔던 일들에 대한 답답함이 조금씩 풀어진다는 것은 정말이다. 홀가분함이란 것은 어쩌면 바람에 먼지 흩날리듯 나쁜 기억을 흩어지게 하는 감정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하며 자연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얹는다. 그 이야기는 더 힘을 얻는다. 그 누구의 삶도 아닌 내가 살아내는 내 삶의 이야기니깐. 나도 제니스처럼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 내 이야기도 들려준다. 의외의 내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혹시나 갖고 있던 편견(선입견)도 한꺼풀 벗겨지지 않았을까? 이야기는 나를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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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5. 6. 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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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시월의 가을 토끼 가족 처음으로 제주도 2박 3일 여행 갔다왔다. 여행의 설렘은 준비단계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를 기억 창고에 저장했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은 짧게 일정을 잡았고, 마무리 지었던 곳이 '제주 4.3 평화공원'이었다.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4.3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늦가을의 4.3 평화공원은 사람의 발길이 없었고, 볕은 따뜻했는데 울긋불긋 잎들이 떨어지고 흩날려 황량했다. 일정에 없었는데... 잠잠히 평화공원의 기념관으로 들어섰다.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안겨준 한강 작가의 제주 4.3사건을 다룬 책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읽다가 그만두었다가 다시 읽기를 시작해 끝까지 읽었다. 역시나 마음 한 켠 아려오는 쉽지 않은 읽기였다. 거저 읽기만 해도 아픈데 작가는 우리네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과 마주하면서 글을 쓰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부분들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한낮의 어떤 일들처럼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선량한 백성들이 총칼에 의해 죽어가는 모습은 얼마나 참혹하고 무자비한지... 국가의 불의한 체제에 의해 규정되어지고 낙인찍혀 그 삶들이 송두리째 빼앗겨 한 사람이 아닌 그 가족과 마을 단위의 사람들까지 보란듯이 총구를 겨누었던 그 겨울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 한맺힌 절규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았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진심어린 사과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없고, 점점 잊혀져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많은 일들 중에 하나인 그 때의 그 일이 된다.  문학을 빌려 잊혀지지 않도록 자꾸만 기억하도록 만드는게 쓰는 사람들의 사명인지도 모른다. 책을 통해, 장소를 통해, 사람을 통해 읽고 찾아가며 질문하기를 반복적으로 해서 더이상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 삶 속에서 기억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새삼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한다'는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가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몫으로 남아있다. 

 

혹독한 눈발이 날려 고립된 마을의 풍경,  주인없이 홀로 남은 새, 눈이 흩날려 온통 얼어붙어 얼음이 된 세상과 텅 빈 적막만이 가득한 운동장, 그 속에서 죽은 혈육을 찾기 위한 몸부림, 바닷가에서 죽은 사람의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들어오는 썰물에 발이 빠져가고 허우적거리는 반복되는 기괴하면서 기막힌 꿈 속 사연,... 소중한 사람들을 허망하게 보내었다. 어떠한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홀로 남은 새도 물과 모이를 주지 않으면 하루를 넘기기 힘든데 그 생명있는 작은 목숨까지도 살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어떻게 죽었는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생사를 알 길 없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그 애타는 마음은 오죽할까! 높은 언덕에 나무를 깎아 등신대를 만들어 바닷물이 흘러들어와도 잠기지 않도록 세워주는 것, 더이상 볼 수 없어도 개인이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작별하지 않는 방법이 아닐까?

 

 

스산한 가을에 찾는 이 없는 추모 공원을 찾아서일까 마음과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이는 한참 우리네 현대사를 배우고 있는 시점이었기에 더욱 의미깊게 다가왔었다고 한다. 더 관심이 간다고. 그리고 우리는 2024년 12월 3일의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에 퍽 당황했고 놀랬고 두려웠다. 재석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됨으로 계엄령 선포는 무효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탄핵에까지 이르렀고, 6월 3일 이틀 후면 조기 대선을 치른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정치에 관심갖고 참여하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알게 된다. 더이상 소수의 탐욕적인 사람들이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을 지배하지 않도록 깨어있는 시민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화해와 상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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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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