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밤부터 내린 비는 지금도 굵은 빗방울 튕기며 온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서 빗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무에는 살포시 깃들이고 길바닥에는 웅덩이를 만든다.
빗물 고인 웅덩이에 어둑어둑 하늘이 보인다.
달리는 차가 웅덩이를 지나가면 옛날 어릴적 봤던 흑백 텔레비젼의 '신호없음'
수신처럼 울리며 화면에 회색 덧칠을 반복한다.
옥상에 올라가서 안테나를 맞춰가며 신호를 잡았던 기억이 올라온다.
텔레비 나오나? 아니, 안 나와~~~ 어어어... 조금만 더 돌려봐. 어, 됐다 됐어.
다시 빗방울 튕기며 웅덩이에 잿빛 하늘이 보인다.
학교 다닐 때 우산 때문에 언니랑 많이 싸웠다.
비 오면 단단하고 잘 펴지는 2단 우산을 쓰고 가면 좋은데,
항상 언니가 먼저 학교 가니 좋은 우산을 차지했다.
뒤에 가는 나는 우산 때문에 한참 문 앞에 서 있었다.
우산 살이 꼬여있거나 뭔가 하나 빠져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학교에 간 기억......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30년 이상 된 기억이 내리는 비로 다시 소환되네.
그래서일까 지금 신발장 다른 켠의 우산 넣어두는 장에는 저절로 펴지는 자동 3단 우산이며
빳빳하고 엣지있는 2단 우산까지 골고루 있다. 식구는 3명인데........
기름 지글지글 고소함은 비 오는 날에 더욱 맛있고 중독성 있는 냄새이다.
검은 후라이팬에 기름 둘러 굽는 정구지(부추)지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이다.
할머니가 늘 해주신 추억의 맛이다. 그 추억 때문에
비 오는 날 나는 청양고추랑 양파만 넣고 정구지 지짐을 해먹는다.
노릇노릇하게 기름에 구워지는 소리가 빗소리랑 닮았다.
여기저기 사방으로 튕긴다.
연아~ 연아~~ 부르던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다.
내 이름은 '연희'인데.......
그 많은 손주들 있는데도 할머니는 나를 아끼셨다.
비를 좋아한다.
깊은 밤 조용히 방 안을 넘나드는 적막 속에서 내리는 비를 좋아한다.
찰방찰방 내리는 비와 함께 책 읽기를 즐겨한다.
장마가 시작되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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