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연 맺은지 꽤 시간이 흘렀다.
경쟁적으로 읽은 적도 있었고, 바빠서 잠시 멀리한 적도 있다.
습관적으로 책을 찾아 읽거나 습관을 벗어나 책 읽는 사람이 맞나 할 정도로
띄엄띄엄 허술하게 읽기도 했다.
습관은 무서운 법이라 책 읽기를 그만 둔 날들은 없었다.
내 삶의 시간 중에 책 읽기는 서류에 한 줄 쓰는 그럴듯한 취미가 아니라 일상이다.
헌책방에서 책을 샀던 날들이 있었고, 새 책으로 분기마다 내게 선물주는 시간도 있었다.
지금은 타관대출로 편하게 집 근처 작은 도서관을 드나든다.
집과 회사를 오며가며 하는 날들 중에서 유일하게 책 대출반납으로 산책하는 날이기도 하다.
반납하는 날을 훌쩍 넘겨 연체라고 문자가 오거나 전화가 오기도 하지만^^;;;
책을 반납할 땐 다 읽었다는 뿌듯함으로, 책을 대출할 땐 책 속 인물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이 있다.
3년 전에 학교 있을 때 친한 선생님이 항상 요즘 읽는 책은 어떤 책이며, 책 추천을 부탁하셨다.
책을 소재로 함께 대화할 때 가장 편안했고 말이 많았다. 반면 책을 추천할 땐 고민해야만 했다.
개인마다 취향이 달라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은 상대방에게는 별로일 수 있기에.
그럼에도 읽고 난 후 같은 책으로 얘기나눌 수 있으니 그것 또한 좋다.
어떤 사람의 사적인 성향을 알게 될 때 책 추천은 수월할 수 있다. 맞춤 옷처럼.
"좋은 책 한 권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면 택배사를 통해 하루나 이틀 사이 고객들의 집으로 배송된다.
직접 서점에 가지 않아도 편리하게 책을 받을 수 있다.
이 편리함의 이면에는 점점 옅어져가는 관계와 소통의 부재가 있다.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하는 것과 그냥 사람들의 입소문과 평가(리뷰)로 책을 구매하는 것은 다르다.
관계과 소통의 문제에서라면 책,「책 산책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을 누군가가 소개해주고 배달까지 해준다면 서로에게 인격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
「책 산책가」칼 콜호프가 그렇다. 특별한 서비스 곧 찾아가는 서비스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서점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은 칼 콜호프를 통해 배달 서비스를 받는다.
책 산책가를 통해 독자들은 자신만의 취향이 담긴 책을 만난다.
어떤 책을 선택할지 모를 때 책 산책가는 길잡이가 되어 독자에게 책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책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
홀로 외로운「책 산책가」 옆에는 당차고 똘똘하고 밝고 미워할 수 없는 아홉 살 소녀 샤샤가 있다.
내 한 몸 지쳐 힘겨울 때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책 산책에 동행한다면 귀찮고 불편할 듯.
그러나, 이 사랑스러운 소녀는 「책 산책가」의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어느새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아는 사이, 서로의 빈 자리에 마음이 쓰일만큼.
책 산책가 칼 콜호프도 꼬마 숙녀 샤샤도,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대체된 책 산책가의 독자들도.
그렇게 서서히 마음문을 연다.
책을 소재로 한 책들을 읽으면서 항상 마음이 뭉클했던 것 같다.
책이 있는 공간은 사랑방이 되고, 같이 책 읽는 사람들은 서로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위로하고 힘이 된다.
무엇보다 책은 연대하게 한다. 네 일이 아닌 내 일처럼... 뭉치게 만든다.
책 산책가 칼 콜호프가 더이상 책을 배달할 수 없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 때 책 산책가의 꼬마 동행자 샤샤부터
피츠윌리엄 다아시, 파우스트 박사, 롱스타킹 부인, 아마릴리스 수녀, 헤라클레스, 에피 브리스트까지...
쓸쓸하게 홀로 잊혀져갈 뻔한 칼을 가만두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나를 변화시킨 사람들 때문일수도.
그들을 위한 나의 선행과 배려는 돌고 돌아 마지막은 자기에게로 오니깐.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삶의 형편을 살펴보고 필요한 것은 나누고,
힘겨운 일상 속에서 헤어져나오지 못할 때 책 산책가의 책 배달과 안부는 따뜻한 위로가 될 것 같다.
외따로 떨어져있어도 마음은 은근하게 전해지는 법이니까.
책을 통해 깊숙한 자기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책을 건넨
「책 산책가」의 습관적인 책 배달을 통해 사람을 살리기도 하니깐.
책 「책 산책가」의 이런 지점들이 많아 읽으면서 내내 따뜻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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