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를 훌쩍 넘긴 김장김치는 묵은지라는 이름을 얻었다.
시고 텁텁하거나 짠 김치는 이제 본연의 김치가 아니라 다른 식재료와 어우러져야 한다.
찜이 되거나 볶거나 쌈으로서 식욕을 돋우는 음식이 되고.
김치냉장고 속 제일 아랫쪽에 자리잡은 묵은김치가 밖으로 나온다.
붉음은 시간을 털어내고 씻겨 말갛게, 물 속에 담겨져 시고 텁텁함이 희석된다.
들기름 두르고 대파 송송송 썰고, 빻은 마늘 지글지글~~~
파기름이 나올 즈음에 씻은 묵은지, 코인 육수 한 알, 물 한 컵 넣고 같이 볶는다.
신맛보다 특유의 짠맛이 남아있어서 설탕을 조금 넣었다.
자작하게 볶은 후 물기가 없어질 즈음에 통깨 솔솔솔 뿌려주고 불을 끈다.
쓴맛과 짠맛보다 감칠맛이 더해졌다.
방학 때 학교에 도시락 가지고와서 점심을 먹었는데
어느 날 조리사님이 밥을 하셨고 반찬도 집에서 몇 가지 준비해와서 같이 먹게 되었다.
음식 솜씨가 워낙 좋으시니 조리사님 만든 음식은 내 입에도 맞다.
그 날 반찬 중에 가장 인기있었던 반찬이 묵은지 볶음김치였다.
여전히 맛있게 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조리사님 만든 묵은지 볶음김치랑 비교할 수 없지만 꽤 먹을만했다.
시간의 손맛에서 내공이 느껴지는게 있으니깐.
따뜻하게 먹어야 제 맛인 음식과 차게 먹어야 풍미를 상승시키는 음식들이 있다.
묵은지 볶음김치는 차게 먹으니 감칠맛이 더 느껴졌다.
묵은지 볶음김치랑 조미김의 조합도 좋았다.
오래전 할머니가 입맛 없을 때 찬밥에 물을 말고 묵은지 볶음김치랑 먹었다는 얘기 들었다.
그 맛이 도대체 무슨 맛인지 도통 알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안다.
누군가의 음식에 대한 기억이 넘어와 또다른 누군가의 기억이 된다.
그 음식은 시간을 넘나들어 그리움이 된다.
웃음이 오랫동안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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