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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행복해지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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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5.22 씨앗 빌려주는 도서관
  2. 2022.05.15 감자가 싫은 날
  3. 2022.03.23 「미움을 파는 고슴도치」그림책 속 디스토피아
  4. 2022.03.19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소외되지 않고 함께♥
  5. 2022.01.10 「내가 개였을 때」먹먹한 슬픔이...
  6. 2021.12.25 「별 만드는 사람들」반짝반짝 아름다워요!
2022. 5. 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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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인가보다. 봄에 거리를 다니면 어떤 사람들이 맨들맨들한 포장지 봉지를 2,3개씩 나눠줬다.

포장지 앞면에는 꽃 이름과 함께 사진이 선명하게 찍혀있고, 뒷면에는 꽃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

비스듬하게 가위로 윗면을 자르면 공벌레가 돌돌 말린 것처럼  씨앗이 들어있다.

귀에 대고 포장지를 흔들면 서걱서걱 소리가 났다. 

호기심에 한참동안 읽어본다. 받은 씨앗도 복불복인지라 똑같은 씨앗이 아닌 다른 씨앗들이었으면...

마음속으로는 예쁜 꽃 씨앗이길 바랬다. 그 땐 씨앗 심지도 않을거면서 욕심을 내었다. 

아마 지금 꽃 씨앗을 나눠준다면 심고, 물 주면서 씨앗이 싹 틔고 꽃 피는 것까지 바라보고 기다렸을거다. 

소중한 것을 그 때는 모르고, 지금은 안다. 시간이 흘러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금까지 생존함은 삶의 터전에서 정착과 함께 다양한 먹거리가 될 식물들을 재배해왔기 때문이다.

기후와 땅의 환경에 맞게 씨앗은 발아되고 토착화되었다. 먹거리는 풍성해졌고, 차고 넘쳐서 버려지기도 했다.

새로운 종자들이 쏟아져나왔고 인간의 이익에 따라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종자와

오랜 시간 키워내야하는 식물들은 자연스레 멸종되기도 했다.

인간의 이윤 추구와 편리함에서 밀려난 씨앗들은 개체수에서 밀려 점점 도태된다. 

세상 속 많은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진지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공통된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의 연대와 소통이 중요한 이유다.

책 [씨앗 빌려주는 도서관]을 읽었다.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 클로에의 일상은 몬트리올에 있었다. 

갑작스레 오게 된 아빠의 고향, 빅토리아. 그리고 별로 친해보이지 않은 아빠와 할아버지.

아빠는 할아버지의 삶이 못마땅하다. 아빠의 눈치를 보는 할아버지.

클로에의 시선으로는 보통의 부자지간이라 하기엔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상하다. 

할아버지와 아빠가 살아왔던 삶을 이해하기까지 클로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이해 지점에 할아버지가 키우는 멸종 위기의 씨앗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클로에의 삶에도 다시 균열이 생겼다.

엄마와 친한 친구 소피아가 있는그리운 몬트리올로 돌아가야 하나?

할아버지가 심었던 멸종 위기의 씨앗 상자를 찾아서 할아버지의 일을 계속 이어가야 하나?

 

 

할아버지가 머물던 집과 땅은 할아버지 것이 아니었다. 부자지간 문제가 된 빼앗겼던 집과 땅.

더 이상 그 집과 땅에서는 씨앗을 심고 수확을 할 수 없기에,

빅토리아에서 알게 된 친구 니코의 도움으로 할아버지와 심었던 씨앗의 작물들 수확을 위해

옮겨 심을 곳으로 자전거를 타고 간다. 

이 때를 위해 클로에가 니코에게서 자전거 타기를 잘 배워놨구나.

멸종 위기의 식물을 지켜내기 위한 아주 작은 움직임!

 

"모자에 숨겨서 독일 국경을 통과한 와이스 할머니의 토마토 씨앗부터 러시아산 핑크 브로콜리,

스코틀랜드산 블루 케일 등 할아버지의 채소밭에는 희귀 품종이 가득합니다. 

콩은 너무 오래 두면 자라는 힘을 잃어서 심어도 싹트지 않아. 

어느 지역이나 고유의 채소가 있지만, 사람이 계속 심지 않으면 결국 멸종하는 거야."

 

 

기후 변화와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마다 꿀벌의 개체수가 줄어든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더 심각한 것은 꿀벌이 사라지면 모든 인류도 멸망할 수 있다는 것.

꽃과 열매가 자라기 어려워지고 그것을 먹는 초식 동물의 감소와 육식 동물의 감소로 이어진다. 

먹이 사슬의 문제는 결국, 사람들의 먹거리 수급에도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씨앗의 우리의 미래, 우리 채소를 보존하자, 꿀벌을 보호하라!

이 구호가 가까이서 들린다. 인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니까. 

 

클로에가 찾고 찾았던 씨앗인데, 할아버지는 씨앗을 도서관에 기증했다. 

도서관은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곳인 줄만 알았는데,

씨앗도 기증하고 빌려주고 수확해 씨앗을 받아 잘 말려서 도서관으로 반납하는 것이었다. 

 

씨앗 도서관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아니면 일반 도서관에서도 책과 함께 원하는 사람들에게 씨앗도 대출해줬으면 좋겠다. 

꽃 피우는 씨앗이라면 꿀벌에게, 열매 맺는 씨앗이라면 초식동물과 사람들에게도 좋겠다. 

꽤 오래전 아무것도 몰랐을 때 받았던 씨앗들 이젠 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알 씨앗의 숭고한 비밀을 많은 사람이 안다면 아울러 한 알 씨앗의 소중함도 알게 될텐데.

자연스레 살려내는 일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의 신비로움도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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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2. 5. 1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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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가 부담스러운 날들이 꽤 오래되었는데, 일하는 공간에서는 책으로 둘러쌓여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눈으로 먼저 보이는게 책들이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작은 학교 도서관에는 따끈따끈한 새 책과 아이들 손 때 묻지 않은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언제든지 내 마음과 시선이 가는 책이라면 읽을 수 있는데... 책 읽기가 그토록 힘들었나보다.

그림책 뿐 아니라 문고판 도서가 책장에 진열되어 꼭 자기를 읽어달라는 듯 눈짓한다. 

책을 정리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마음은 마구 욕심이 생긴다.

읽기까지 한참이란 시간이 걸릴 줄 알면서도.

그림책도 좋지만, 글밥이 제법 되는 문고판 도서에 눈이 간다.

읽으면 뭉클해지는 그 마음.... 아니깐. 책 [감자가 싫은 날] 이다. 

 

한참 친구들과 놀려고 하면 엄마는 부른다. 그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 

뭘 사오라고 시키거나, 장날이니 엄마 따라 시장 가자고 한다.

장바구니 챙기지도 않고, 집으로 올 땐 양손 가득 검은 봉다리 하나씩....

혹여 아는 친구 마주칠까봐 고개는 땅만 훑는다. 

부끄러워서 어디 숨고 싶고, 얼릉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엄마가 들고 있는 감자 봉지를 바라봤다.

엄마는 내가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감자 봉지를 다른 봉지들 사이로 숨겼다.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것, 숨겨도 너무나도 잘 보이는 것, 우리는 똑같은 것을 숨기고 있었다.」

 

 

엄마 따라 시장을 갔는데, 엄마가 값을 치르지 않은 감자 한 봉지를 훔쳤다. 

그리고 엄마가 값을 치른 다른 감자 한 봉지는 엄마 손에.

잘못 본 것일까? 아이는 혼란스럽다.

값을 치르지않고 가져온 것은 도둑질이다.

엄마는 아이가 못 봤다고 생각했을까?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일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아이다.

어른인 엄마의 비양심적인 모습에 아이는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마음이 힘들다. 

 

아빠는 직장에서 몇 달치 월급을 받지 못했다.

대출로 생활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집 안 형편은 점점 기울어져가고.

생활비의 무슨 항목을 줄이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결국엔 아이의 학원도 끊는다.

엄마 아빠의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아이는 불안하다.

 

한창 커가며 예민해져가는 아이는 엄마의 감자 도둑질에 대해 터 놓을 사람이 없다. 

어떻게든 눈에 보이는 (부)식비를 줄여야 하는 엄마의 마음과 사정은 이해된다.

그렇다고 용서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터, 꼬리가 길면 결국은 밟힌다.

 

엄마의 꼬리가 결국 밟혔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힘들 때,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각자의 몫이다. 

어른이라고 매번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하고 실수하되, 잘못을 반복하는 것은 실수가 아니다. 고의적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게 진정한 어른이다. 

 

「나는 엄마가 고른 감자 봉지 안에서 감자 두 알을 빼내 옆에 놓인 감자 박스로 옮겼다.

이렇게 몇 번을 더 하면 우리가 몰래 가져간 감자 값이 될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

 

아이의 죄책감과 양심으로 인한 행동이 오히려 어른을 부끄럽게 한다.

나이에 비해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다. 

[감자가 싫은 날] 책을 통해 어른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늘 아이가 보고 있다........ 행동에 책임을 지는 어른!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어른!

아울러 삶이 힘들더라도 지켜야하는 도덕과 양심 앞에서 길을 잃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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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2. 3. 2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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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리 오세요! 누가 당신을 싫어하는지 알고 싶지 않으세요? 

누가 당신의 것을 훔치고, 당신을 속이는지 알고 싶지 않나요?

누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정말 알고 싶지 않습니까?

남들이 감추고 있는 검은 마음을 알고 싶지 않나요?

제가 파는 미움은 최상의 품질을 자랑합니다. 

효과도 아주 빨라요! 어세 오세요, 여러분!

멋진 미움을 장만하고서 편안하게 사십시오.

값도 싸요, 싸! 공짜나 다름없어요!"

 

 

미움을 파는 상인이라...

실크해트를 쓰고 빨간색과 하얀색 줄무늬 바지를 입은 고슴도치.

사람의 여린 마음과 불안함을 이용하는 음흉한 상인, 고슴도치.

사람의 감정 흥정을 붙이며 팔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

사람의 마음을 악용해 기생하는 고슴도치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주 흥미로운 그림책 「미움을 파는 고슴도치」를 만났다. 

그림책이라기엔 무겁고도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미움이란 감정은 언제, 어떻게 올라오는걸까?

남이 잘 될 때 질투심에, 내 것을 빼앗겼을 때,..... 그리고,

미움을 파는 상인 고슴도치를 만났을 때가 아닐까!

고슴도치가 사용하는 방법은 '이간질'과 '불신'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화를 돋우고, 탐욕스러워진다. 

미움을 파는 상인 고슴도치 삶의 처세술이다. 

심보가 신포도 우화 속 여우와 비슷하다.

달고 탐스런 나무 위 포도송이, 너무 먹고 싶은데 도저히 딸 수 없네. 

'에잇, 저 포도는 신포도야'~ 자기합리화를 하는 여우의 행동.

그러나 여우와 고슴도치는 비슷하되 다른 느낌이다. 

여우의 미련함과 고슴도치의 약삭빠름이 자연스레 매치된다.

절대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 남의 것을 야금야금 빼앗는 고슴도치이다. 

남이야 서로를 헐뜯고 미워하든 게의치않는다.

어차피 자기는 미움을 파는 상인이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미움을 팔고 자기 것을 챙기는 이기주의자이다. 

 

"겨울이 왔어.

고슴도치는 새들의 솜털로 만든 침대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잠을 잤어.

먹을 것도 아주 많았지.

고슴도치가 이렇게 잘 지내는 종안 다람쥐들은 계속 숲을 돌아다니며

눈 속에 묻힌 반쯤 썩은 도토리까지 파냈고,

쥐들은 굴속에서 떨며 굶주려야 했어.

또 비버들은 나무를 점점 더 많이 쓰러뜨려 차곡차곡 쌓았고, 

새들은 둥지에서 옹송그리고 추위에 떨며 숲이 줄어드는 모습을 불안스레 지켜보았지.

아주 슬픈 겨울이었어."

 

고슴도치가 파는 미움을 산 숲 속 동물들의 비참한 현실이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각자 삶의 공간에서 배려하며 살았는데....

소중했던 일상이 불신과 미움으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졌다. 

죽 쒀서 개(고슴도치) 준 꼴이다. 

 고슴도치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서로를 이간질시키는 말로 한 마을을 초토화시켰다. 

모두가 불행한 끔찍한 디스토피아 세상이다. 

고슴도치의 세 치 혀로 가장 연약한 마음이 통제되고, 억압받는.

 

고슴도치가 할퀴고 간 마음의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서로를 향한 믿음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리듯.

고슴도치는 떠도는 장돌뱅이처럼 또 어느 마을에서 미움을 팔고 있겠지.

그 곳에서도 순진한 사람들은 서로를 아무 이유없이 미워하고.

 

아무 걱정 근심없고 평안할 때, 조심해야 할 것!

마음은 그 때 습격받으니까. 

당황스럽지만 충분히 호기심 가질만한 것.

누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가?

관심 없을 것 같은데, 괜시리 알고 싶은 것.

고슴도치의 그럴듯한 제안과 거래에 솔깃하지 않은가?

고슴도치는 이미 떠났고, 우리 속에 게으름뱅이 욕심쟁이 가식덩어리가 남았다. 

어느새 마음은 너덜너덜.... 공허해진다.

삶에 독이 된 미움은 계속 자란다. 

이쯤에서 끊기를!

누구의 책임이냐? 묻지만.....

소용 없다. 

 

"고슴도치가 거짓말을 하긴 했지. 하지만 거짓말을 사들인 건 우리다. 왜?

두렵고 화가 날 땐 그냥 믿어 버리는게 가장 쉬우니까.

그렇게 우리 스스로 마음 속에 미움을 받아들이고 겨우내 불을 붙여 잘 타오르게 한 거다."

 

세상에 누가 미움 따위를 산다고, 그걸 팔려는걸까?

미움은 불쾌한거잖아. 그러나, 고슴도치의 상술인 '멋진 미움'

이 역설적인 말에 누가 거절할까?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는데....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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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2. 3. 1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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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에 있다보면 아이들이 많이 빌려가는 책이 보인다.

사뭇 궁금해진다. 그 책이 왜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도 눈여겨본다.

쉬는 시간에 와서 다시 그 책을 빌리는 아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책이다.

그림책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이다.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는 1996년에 세상에 나왔다.

작년까지 86쇄 발행되었다.

25년 이상 된 책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음에 놀란다.

매일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를 바라지만 쉽지 않다.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를 처음 펼쳤을 때 첫 느낌은, 따뜻함이다.

하얀 천에 뾰족한 색색의 만년필로 자수의 도안을 그린 듯 선명하게 다가온다.

자수실로 색을 입혀놓으면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사람 좋은 인상을 풍기는 검피 아저씨의 모습이다. 

왠지 모르게 함께 하고 싶은...

 

강가 옆에 검피 아저씨 집이 있다.

집집마다 차가 주차되어 있듯이 검피 아저씨 집 강가에는 배가 항상 대기중~~

한나절 열심히 밭일을 하고, 어떤 날엔 배를 끌고 강으로 나온다.

 

 

아저씨가 배를 끌고 가면,

동네 꼬마들이, 토끼가, 고양이가, 개가, 돼지가, 양이, 닭들이, 송아지가, 염소가

검피 아저씨께 태워달라고, 데려가달라고 부탁한다.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가 시작된다.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에는 각자 나름의 규칙이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그 규칙을 지켜야 서로 행복한 뱃놀이가 된다.

 

꼬마들은 서로 싸우면 안 되고,

토끼는 깡총거리면 안 되고,

고양이는 토끼를 쫒아다니면 안 되고,

개는 고양이를 못살게 굴면 안 되고,

돼지는 배 안을 더럽히면 안 되고,

양은 시끄럽게 울면 안 되고,

닭들은 날개를 파닥거리면 안 되고,

송아지는 쿵쿵거리면 안 되고,

염소는 뒷발질을 하면 안 되고....

 

꼬마들, 토끼, 고양이, 개, 돼지, 양, 닭, 송아지, 염소는 모두

집에서 키우거나 함께 하는 가족 또는 반려동물이다.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에는 구별과 차별이 없다.

원하는 누구든 함께 할 수 있다.

 

 

착한 검피 아저씨의 배로 모두 함께 신나고 행복한 뱃놀이가 될 줄 알았는데.....

각자 지켜야 될 사소한 규칙을 어김으로 배가 기우뚱~~~

모두 물 속으로 빠졌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지켜야 될 규칙이나 약속은 얽매는 속박이 될 수 있지만,

함께 지켜나가면 자신을 지키는 생명줄이거나 자유로움이 될 수 있다.

공동체 속에서는 사소하더라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각 사람이 모두 자기의 목소리를 크게 내면 배는 서서히 빠져들어간다.

 

뱃사공인 검피 아저씨가 경계하는 부분일 듯 한데.

자기의 목소리를 낮추고, 서로를 배려하여 모두가 행복한♥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아무도 낙오되지않고 모두 물에서 빠져나와, 함께

따뜻한 햇볕 아래서 몸을 말리는 시간.

 

뱃놀이를 망쳤음에도 어느 누구도 누군가의 탓이라고 하지 않는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서로를 너그러이 생각해주는 마음이 엿보여서 좋았다.

규칙은 지켜야 하지만, 그 규칙 너머 더 중요한 것이 함께 하는 '공존'이 아닐까!

 

아저씨의 배는 망가졌고 한바탕 소란은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다들 집으로 돌아가자. 차 마실 시간이다."

검피 아저씨의 따뜻한 초대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상심했던 마음을 어루만진다.

 

 

검피 아저씨는 웃음과 평안을 선물한다.

삶에서의 행복이 무엇인지 안다.

함께 함으로, 아주 작은 것이지만 잘 지키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검피 아저씨와 함께 하는 뱃놀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상적이다. 

선물 보따리는 한아름 덤으로 얻어가는 느낌이랄까!

어떤 일에 마음을 다 쏟아놓고 마무리 쯤에는 괜시리 허한 느낌이 드는데....

검피 아저씨의 배를 발견하면 즉시 부탁 모드로 돌아가야된다.

'저도 태워주실래요?'

검피 아저씨와 함께 하는 뱃놀이라면......

망설이지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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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2. 1. 1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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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 가정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다.
아이를 홀로 키우며 살아간다는 것도 녹록치않은데....
아이의 곁을 지켜주는 부모는 하루 하루가 힘에 부친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부디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아무도 의지할 곳 없는 이 땅에서 장애인이 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건지 너무나 잘 알기에.
그림책 「내가 개였을 때」이다.

몸은 25살 청년인데, 마음과 생각 행동은 5살에 불과한 토토(앙투안)은
엄마와 22살의 남동생 자크와 함께 산다.
엄마는 날이 갈수록 메말라간다.
그리고 앙투안은 피에르 외삼촌 집에 잠깐 가게 된다.
엄마를 잃은 상실의 슬픔이 크지만,
남겨진 앙투안과 자크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그 막막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엄마가 있어서 그나마 의지가 되었지만,
장애가 있는 형을 이제 홀로 감당해야하는 자크의 부담감이 오롯이 느껴진다.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외삼촌 집에 지내면서 '가족'이란 말의 따뜻함이 앙투안에겐 낯설다.
엄마가 먼 여행을 떠났고, 앙투안은 불 꺼진 어둔 집으로 다시 왔다.
더이상 반겨주지 않는 집, 두려움과 정적만이 있는 집.

"나는 엄마가 떠난 이후로 자크가 더 무서워졌어요.
자크의 따귀질은 망치질로 변했거든요.
나는 되도록 자주 밖으로 도망쳐 숨었어요."

동생 자크의 방황과 결국 떠남....
무엇이 자크를 괴물로 만들게 했을까?
"바보 형 때문에 내 인생은 망했어!"


책「내가 개였을 때」읽는 내내 서늘한 바람이 가슴 속을 헤집고 들어온다.
막막함과 먹먹함이 교차한다.
자크가 말하는 바보 형 앙투안 때문도,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 처해진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떠나보내기에도, 남겨졌음에도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데.......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남은 앙투안은 절규한다.
실존의 고통과 불안은 사람으로서의 삶도 거부한다.
사람다움은 잊어버리고 본능이 앞선다.

"그리고 오래가지 않아, 나는 개가 되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과 떠남을 홀로 감당하기에 일반인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5살의 지능밖에 되지않는 앙투안에게는 절망이다.
집이라 말하지만 그 곳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함께 들판을 달리고, 웃고, 먹이를 나눠먹는 개 델핀느만 남았다.
온기가 있는 집과 가족 대신 반려견만이 앙투안을 지켜주는 듯.
그리고, 앙투안에게 남은 마지막 가족과도 같았던 델핀느도 아파 떠났다.
앙투안은 이제 오롯이 혼자다.


엄마가 너무 많이 지쳐서 숨으려고 여행 갔다고 생각하는 앙투안,
그런 엄마와 동생 자크보다 어떻게든 살아내려고했던 앙투안이 많이 짠하다.
5살 지능을 가진 25살의 청년이 감당하기에 이 모든 세상이 얼마나 두렵고 버거웠을까?
그럼에도 여행 중인 엄마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상황이 슬프고 아프다.

엄마도 쉬고 있고, 자크도 쉬고 있고 그리고 델핀느도.
모두 떠나고 정말 혼자인 줄 알았는데.......... 피에르 외삼촌!
앙투안, 이제 편안함에 이르렀나?!^^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명대사가 생각난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그 어두운 시간만 지나면 해가 뜬다.

처음부터 끝까지 슬프고 먹먹한 그림책이다.
이 세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장애를 이해한다는 말이 그렇다.
이해하는 것과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거니까.

혼자 있기 싫어서 개가 된 앙투안,
말을 걸고, 말을 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무엇보다 앙투안은 델핀느와 있을 때 델핀느를 챙겨줘야했다.
늘 앙투안을 챙겨준 엄마처럼....
누군가와 함께 있고, 누군가를 챙겨줘야 한다는 것도
살아내야 될 중요한 삶의 이유가 아닐까?!
여러 복합적인 생각과 의미가 담긴 그림책 「내가 개였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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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1. 12. 2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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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다양한 생각들을 담는 그릇이다.
정답이 없는 책, 그림책이 아닐까!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매번 새롭게 해석되는 책이 그림책 아닐까!
아이들이 읽고,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이 아니라
어느 누구나의 시선으로 머리와 가슴으로 채워지는 생각 주머니가 아닐까!
그림책에 풍덩~ 빠지면 허우적거리며 더 깊숙이 들어가는게 매력이다.
비로소 그림책은 어른이 봐야 할 책이란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그림책이 다 좋지만, 나는 글 없이 그림으로만 채워진 그림책이 좋다.
사일런트북(silent book)이라고 하는데.... 침묵으로 읽어내는 책?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으로 보며 느껴요^^
2019년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도서전 사일런트북 콘테스트 대상작,
「별 만드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이다.
유럽에서 먼저 데뷔전을 했구나. 대단하다!
학교 도서관에 있다보니 새삼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들이 얼마나 멋지고
글을 엮어내는 솜씨가 탁월한지 알게 된다.
좋은 그림책에 둘러쌓여 있지만 읽어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항상 있다.


언젠가 밤과 하늘, 별과 달에 관한 글을 연작으로 적어놓은 메모가 있었다.
내겐 아기자기한 동화 같은 이야기다.
밤하늘과 별, 달이 너무 좋아서 그냥 마음 가는대로 재미로 조금씩 적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쓸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그 이야기들을 지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후회가 된다.
마음 닿는 그림과 만나면 예쁘고 따뜻한 나의 그림책 1호가 될 수 있었을텐데.....

아이랑 별을 보며 밤길을 걷는게 여전히 행복하다.
공기가 맑고 깨끗한 곳에서는 크고 작은 별도 많지만, 모여서 반짝인다.
탁한 도시에서는 검은 밤하늘의 별을 일부러 찾아야 한다.
그 별빛에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
아울러 올려다보는 하늘마다 별빛이 노래하며 춤추기를^^


어둔 밤하늘에 반짝이지 않는 별을 수거해가는 별 재활용 차량이 신기하다.
밤 하늘 도화지에 달 옆자리 별이 사라진 곳에 반짝이는 별이 자리하도록 도면을 그린다.
설계되어진 도면대로 별 만들기에 돌입한다.


별의 구조물(뼈대)를 세우고,
구조물 안에 시스템을 장착시킨다.
컴퓨터로 치면 하드웨어가 되려나? 가장 중요한 작업 아닐까.
별 외부 구조물에 흰색 페인트 밑작업을 한다.
별 본연의 색인 가장 빛나는 노랑색을 덧칠한다.
드라이기로 말리는 작업으로 마무리한다.

사람들이 별을 만든다?
불 꺼진 별도 재활용 가능하다?
별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세심하고 정교한지 참신한 발상에 놀라웠다.
이렇게 별을 만들면 소음과 탁함이 가득한 도시의 밤하늘에도
별이 언제나 반짝반짝~~~
도시의 인공적인 불빛이 필요없을 듯 싶다.
사람들은 더 깊이 평안하게 잠 들 수 있지 않을까!


완성된 크고 작은 별들은 마무리로 전선을 연결하고 어디서든 빛날 준비를 한다.
컨베이어 시스템을 통해 상자에 담겨지고, 빛날 장소로 옮겨진다.
아.... 별이 도면에서 그려지고, 만들어지고, 밤하늘에 달리기까지
묵묵히 자기 일 책임감있게 감당하는「별 만드는 사람들」의 수고스러움이 베어있다.
물론 「별 만드는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수고하시는 분들께도
고마운 마음 한가득이다.


드디어, 별이 밤하늘을 수 놓게 된다. 전원 스위치 ON~~~
어디에서든 누구나 공평하게 바라보는 반짝반짝 별빛,
잠 못 이루는 사람들에게도, 단잠을 자는 사람들에게도 밤하늘의 별빛은 항상 옳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이 별빛으로 가득하다.

반짝반짝 빛나듯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글 없이 그림으로만 읽어도 그 느낌 아니까 누구나 소통이 가능하다.
다른 시선으로 「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도 있을텐데,
아주 흥미롭게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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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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