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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01 「비가 올까봐」조마조마~ 걱정은 No, 내가 너의 우산이 되어줄께♥
  2. 2020.08.31 어른의 어휘력; 장소에 맞게 언어를 잘 다루고 싶어요.
  3. 2020.08.21 그 기억 너머에「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2020. 9. 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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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자꾸 움츠러들게 만든다.

의기소침해진다.

혼자만의 방으로 숨는다.

내가 나를 자꾸 찌른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

헤어나오기가 힘들다.

마음의 병이란 것이 그렇다.

그렇다고 타인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

냉랭한 마음에 온기가 들어온다면 마음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갈 것이다.

그 따뜻함을 어디서 찾을까?

 

 

표정없이 분주하게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그들의 속내는 안녕할까? 새삼 궁금해졌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 세상에 걱정없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오늘 자기의 몫을 살아낸다.

오늘의 걱정은 오늘까지만,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길을 걷다 갑자기 내리는 비는 당황스럽다.

그렇다고 그 비가 아주 산더미 같은 걱정거리는 아니다.

잠시 지나가는 사소한 일기의 변화일 뿐이고 조금 지나면 멈출테니까.

비 오는 것에 계속 집착하지 않는다.

 

 

비 온다는 일기예보도 없는데, 비가 올까봐 우산을 계속 쓰고 다니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비와 우산에 집착한다.

맑은 날에도, 오고 가는 사람들 속에서도 홀로 우산을 모자처럼 푹 쓰고 걷는다.

비가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는지.......

비가 내린다.

그녀 뿐 아니라 사람들 모두 우산을 썼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거친 비바람이 분다.

우산이 바람에 마음대로 뒤집힌다.

사람들도 그녀도 비로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우산을 바람의 결대로 썼더니 한쪽 편에서 비를 맞고 걸어오는 강아지 '위드(with 함께)'를 보았다.

왠지 자신과 닮아서 그랬을까?

뒤로 구겨진 우산을 위드(with)에게 씌워준다.

함께 간다.

 

이 장면이 제일 뭉클했다.

어떤 상황 설명도 없는 그림책 <비가 올까봐> 이다.

비가 올까봐 늘 전전긍긍하던 그녀였는데,

그녀의 삶에 전환점이 되었다.

묵직한 붓으로 그린 수묵화 느낌의 밑그림에 간단하게 빨강 노랑 파랑의 색감이 들어갔다.

빨강 파랑 노랑의 색감이 그림책의 반전 부분이라 생각된다.

무채색 무미건조한 삶에 유채색의 소소한 평안이 들어온거다.

 

 

그녀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 집에는 외로움의 흔적이 고스란히 있다.

비가 올까봐 늘 걱정해서 사모았던 우산들,

비를 맞을까봐 우산이 펴진 채 여전히 집 안에 붕붕 떠 있다.

비에 대한 그녀의 집착이 일상 속에서도 그대로.

답답함이 몰려온다.

 

위드(with)는 재밌는 놀이를 발견했나보다.

집 안 가득 떠있는 우산의 끈을 푼다.

새장 속 새도 자유다.

 

 

그녀도 비로소 평안에 이르렀다.

더이상 자신을 둘러싼 쓸데없는 걱정에 휩싸이지 않는다.

<비가 올까봐> 썼던 우산은 더이상 필요없다. 그녀에겐 위드(with)가 있으니까.

옭아맸던 불안과 걱정이란 마음의 병은 치유되었다.

마음이 마음에게서 받은 위로로^^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 마음과 곁을 내어준다.

내 안의 걱정 대신 너를 향한 연민에 대해 배려한다.

그녀의 변화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보고 싶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게 된다.

작은 고양이 죠이(joy 기쁨)도 마음이 착하고 예쁜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비가 올까봐 걱정하며 우산을 쓰지 않는다.

외로움도 느끼지 않는다.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다.

당당하게 세상 속으로 걸어나간다.

비가 와도 우산을 씌워줄 수 있고, 비를 맞을 수 있다.

함께라면 홀로서기도 가뿐하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만 누군가가 옆에 있어도 외롭다고 한다.

그래도.... 함께 소통할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 생각된다.

아주 특별한 그림책을 만났다.

이 책 <비가 올까봐> 역시 어른이 읽으면 더 좋은 그림책이라 생각된다.

그림으로 얼마든지 나눔이 되는 '찐'그림책♥

코로나로 의기소침해진 마음이 화안해졌다. 그림책 효과다.

일상에서 위드(함께)와 조이(기쁨)를 만나면 인사해야겠다.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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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0. 8. 3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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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진이가 질문을 자주 한다. 주로 어떤 낱말이나 문장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다.

아비토끼나 나는 전문적인 용어 사전이 아니니 뜻을 정확하게 말해줄 수 없고,

대신 어떤 경우에 그 낱말이나 문장을 사용하는지 이해되기 쉽게 설명해주는 편이다.

일상의 말들로 관용어구처럼 말해주면 귀에 쏙쏙 잘 들어오고 어느 경우에 쓰는지 알기에 잊혀지지 않는다.

헷갈리거나 모르는 말인 경우 폰으로 찾아서 읽어준다. 아이도 알고 나도 알게 되는 경우다.

새로이 알게 된 낱말을 자주 사용해 입에 착착 달라붙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발소에 가면 항상 신문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가로세로 낱말 퍼즐 면이 있는데 푸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너무 재미있어서 한동안 푹 빠졌다. 신문의 기사는 관심 없고. 단어와 사자성어를 제법 알게 된다.

여기서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우리말보다 영어 익히기에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재미로 영어를 배우기보다 시험을 위한 과정인데, 너무 많은 노력을 한다. 모국어도 아닌데.

자연스레 체득되어 몸에 인이 박혀야 하는데, 성인이 되면 자연스레 멀어지고 잊혀지는게 영어다.

그 시간만큼 우리 말과 단어에 시간을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때와 장소에 맞게 말과 글로 표현하고, 시간이란 연륜과 함께 더 풍성해지고 깊어지지 않았을까.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있다. 글로 다시 정리할 때가 있다.

입으로 내뿜는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게 익숙한 사람인가 보다.... 생각 될 때가 많다.

말을 조리있게 참 잘 하고 싶은데, 부족함을 느낀다. 어휘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책 <어른의 어휘력>이 눈에 띈다. 읽고 느낀점은 역시 어휘를 많이 아는 것이 중요했다.

영어를 공부할 때도 제일 기본이 단어였다. '단어부자' 단어를 많이 아는 사람이 탁월함을 나타낸다.

영단어와 숙어장을 작은 수첩에 적어 달달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웃음이 난다.

우리말 단어를 그렇게 수첩에 적어 외우고 다녔다면 삶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니깐.  

'우리말 부자'는 '단어부자' 보다 부럽다.

알맹이 없이 말만 잘 하는 사람보다 귀에 쏙쏙 박히도록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다.

열린민주당의 비례로 당선된 김진애 의원은 닮고 싶은 사람이다. 국정감사 생중계 할 때,

송곳같은 질문도 좋았지만 가려운데를 긁어주는 본질에 충실한 질문을 하는 사람인 듯 이때까지 봐왔던 국감의 풍경들과

달라서 눈에 띄었나보다. 품격있는 말씨라고 느껴졌다. 무엇보다 어떤 질문을 하기 전에 그에 대한 공부(준비)를 하고 온다는

말에서 신뢰감이 느껴졌다. 저 자리에 딱 맞는 사람이다. 말 하는 것을 보면서 한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최소한의 인간적인 성품과 깊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책도 많이 읽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고민하며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 적재적소의 어휘를 풍부히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그런 소통과 교감을 하기까지 필살기 어휘력에 주목하게 된다.

   어휘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힘이자 대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며
   어휘력을 키운다는 것은 이러한 힘과 시각을 기르는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말이 상대의 감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 '어른'다운 어휘력이다.

말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으면 은근히 오래 잠잠히 어떤 사물을 바라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풍경의 색깔이 머릿속에서 그려질 것 같다.

시인들 특히 순수 서정시를 많이 짓는 시인들이 왜 언어의 연금술사라 하는지 이해된다.

그들은 허투루 보지 않는다. 그 시선이 평범하지 않다. 표현할 수 있는 어휘가 충분하다.

비유법과 함축법을 쓰더라도 결이 다르다.

 

책의 1장과 2장에서는 어휘력이 왜 중요하고, 어휘력을 키우는 필수 조건들이 나와있다. 이론편이라 할 수 있고,

3장과 4장에서는 어휘력을 키우는 방법들과 쓰임새 등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다양한 어휘들을 구경할 수 있다.

알고 있는 어휘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3,4장을 읽고 일상에서 빈도있게 자주 쓰는 말 위주로 메모를 해서

사용해도 괜찮을 듯 싶다. 사전을 일일이 찾을 수 없으니, 이참에 영어 단어 외우듯 우리말 자주 사용하기.

새로 알아가는 즐거움을 발견할 것 같다.

많은 개수의 낱말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알고 있는 낱말을 잘 활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하고자 하는 말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으려면, 길게 다시 설명하는 수고로움을 덜려면 정확하게 어휘를 구사하는게 중요하다.

 

"언어는 나다.

나의 세상은 언어의 한계만큼 작거나 크다"

어휘력은 관심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림도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다.

관성, 타성, 건성으로부터 탈출할 때 비로소 새로운 것이 보인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주의의 시작이라고 한다.

"낙엽, 자갈돌, 빛줄기......

그것들의 미세한 색조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형상을 식별하게 될 때 나는 신비와 환희에 가득 찬 기쁨을 맛본다.

그리고 여태까지 한 번도 사물을 제대로 본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한 번도."

빛과 색의 오묘한 조화,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그래서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느껴 인상주의 화풍을 끌어낸 모네처럼

우리가 겉으로 무심하게 보는 자연과 사물과 사람에게서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어휘가 숨겨져 있을까?

찾으려는 열심이 어휘력을 늘릴 수 있다는 말에 연신 고개가 끄덕끄덕~~~ 예쁜 우리 말이 너무 많았다.

인간 뿐 아니라 낱말 하나도 소우주 라는데 친밀하게 느껴졌다.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관심은 애정이고.

"언어적 직관이 부족한 사람에게 시적 상상력, 은유, 함축, 의인화 운운해봐야 난해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언어적 직관이 통한다는 의미다."

살아가면서 말이 통하는 사람과 늘 함께 있다는 것은 선물이다. 말들이 난무하지만 서로를 이끌어주며 소통 또한

부재한 시대에 살고 있다. 머릿속으로 받아들이는 지식은 늘어났지만 생각을 요구하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타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존재이길 바란다.

그래서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쁘다'는 내용을 가진 말이야말로 최고의 칭찬이다"

내 영혼 뿐 아니라 타인까지 살리는 말이 어휘가 가진 최고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이토록 좋은 어휘를 많은 사람들이 쓴다면 사회가 온기가 있고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낼 것 같다.

말은 인격이고 품격이다. 한 사람을 알고, 사회를 바르게 이해하는 시선.

그래서 욕심을 내고 싶다. 어휘력을 늘리기 위해 책 읽기, 글쓰기, 말하기를 허투루하지 않기를.

세심하게 깊이 오롯이 찬찬히 들여다보기 연습을 해야겠다.

 

  "오랫만에 한갓지니 해낙낙해서는 네 세월이구나" 지네발에 신 시기는 듯 일하다 모처럼 찾아온 한갓진 시간은
  천하 없이도 혼자 있고 싶다. 나는 한갓진게 좋고 잠포록한 날씨를 좋아하고 어둑발 내려앉는 시간을 좋아하며
  새물내를 좋아하고 얕은맛을 좋아한다.

  ★해낙낙하다: (형용사) 마음이 흐뭇하여 기쁜 기색이 있다.

  ★잠포록하다: (형용사) 날이 흐리고 바람기가 없다.

  ★어둑발: (명사) 사물을 뚜렷이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빛살.

  ★새물내: (명사) 빨래하여 이제 막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

  ★얕은맛:(명사) 진하지 않으면서 산뜻하고 부드러운 맛. 산뜻하고 싹싹하며 부드러운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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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0. 8. 2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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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밀려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어렸을 적 뛰어놀던 집 앞 넓은 공터에 건물이 생기고, 전봇대가 없어졌다.

그리움과 애틋함이 녹아있는 공간에 대한 기억이 하나씩 사라지는거다.

다시 찾을 때 혹시나 흔적이 남아있나 싶어 애닳은 마음으로 그 공간을 오래도록 본다.

도로가 나서 문방구(점방)은 오래 전에 문을 닫았다.

낡은 건물들이 많고 거주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어서 시간에 녹슬은 간판은 그대로인 채....

대저 아빠 이발소도 그렇는데.....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일 하시고 계심에 존경스럽기도 하면서

그 연세에 편하게 지내셔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형편에 자식으로서 마음 한 켠 늘 아프다.

글자 모음 자음이 떨어져 나간 오래된 간판 구청에서 새로 달아줬다고 하니 마음도 한결 낫다.

한 자리에서 오래 생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분들이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기도한다.

 

<청운면에서/봄여름가을겨울>

전국의 구멍가게를 찾아 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그 시간의 흔적을 남기는

멍가게 두 번째 이야기를 읽었다.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3년만이다.

<동전 하나로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을 반갑고 옛 추억이 생각나서 읽었는데 너무 좋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을 닫는 구멍가게들이 많아지고 시간을 견디며 굳건하게 오래도록 있어주면 좋겠는데...

녹록치않은 저마다의 삶의 사정이 안타깝다.

 

그려진 구멍가게와 그 주변의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시간이 멈춘 듯 묘한 이질감과 평안함이 함께 깃들었다. '그냥 좋다' 말이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낡은 양철 지붕 아니면 특색없는 기와, 가게 앞에 늘 놓여있는 평상은 왜 노란 장판으로 다 깔려있을까?

빨간 우체통은 그냥 거기에 계속 있은 듯 시간의 먼지가 쌓여간다. 편지 한 통 없이 그리움만 쌓인다.  

가게 창문마다 적힌 '담배'는 여전히 근심 깊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주나보다.  

구멍가게는 낡고 빗바래지는데, 우두커니 가게와 함께 했던 꽃 피고 초록을 드리우는 큰 나무는 여전히

봄여름가을겨울을 살아내고 구멍가게를 빛나게 한다.

심고 피워낸 가게 앞 색색깔의 꽃들은 가게 주인장의 고운 심성을 닮은 듯 발걸음 멈추게 하고 따스한 눈길을 보낸다.

세워둔 자전거는 주인아저씨가 갑갑할 때 마실 나가려고 '항시 대기' 중이다.

철제 대문을 사이에 두고 안집과 가게는 연결되어 있다. 밥 짓는 소리가 가게 안에서도 밖에서도 들린다.

밥을 먹다가도 가게에 손님이 오면 '예~ 갑니다' 손님에게 '식사 좀 하실래요?' 정겨운 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오며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구멍가게라서 이야기도 넘쳐난다. 사랑방이 된다.

 

♣ 물건과 사람은 서로 인연을 맺고 살고 있습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시간이 지나도 기억 속에 온전히 존재할 때 비로소 나의 것이라 느낍니다.

딱지, 풍선껌 안에 들어있던 작은 만화책, 만화경이나 유리상자, 열쇠, 돌맹이, 인형, 카드, 우표,

누더기가 된 퀼트 이불의 부드러운 촉감, 시간마다 쩌얼꺽 하며 시간을 알리는 괘종시계의 소리,

바닷가에서 주운 조개껍데기, 흑백사진, 맨 처음 갖게 된 샤프, 오르골, 책갈피에 꽂아 말린 나뭇잎과 꽃잎들,

구멍 난 스웨터, 닳아 너덜거리는 소매의 옷, 이사할 때 장농 뒤에서 그렇게 찾아 헤매던 물건을 발견할 때의 기쁨,

박제된 허물의 먼지를 털어낸 사물을 통해 내 안에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그 순간의 냄새, 풍경, 색깔, 감정이

바람처럼 다녀갑니다. (153쪽) ♣

 

흐른 시간만큼이나 너무 변해버린 나는 그 때 별 쓸모없다고 느껴진 사물과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꽃과 나무에게 마음을 준다. 소중함의 가치를 항상 늦게 알게 된다.

언제나 내 앞에서 든든하게 서 있을 것 같은 내 아버지를 향한 연민도 그렇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아직 가지고 있다. 30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그 편지는

내 학창시절을 잘 보내게했던 위로였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오래되었지만 행복한 시간여행을 한 것 같다. 선물과 같은 그 날들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그 때 그 위로가 지금의 내 삶이라 생각하니 참 고맙다. 잘 살아냈다^^

 

"너는 지금 행복하니?"

이 물음이 마음에 꽂힌다. 행복보다,

평안하다.

 

 

여름이 뒷꽁무니만 남았을 즈음에, 추석이 다가오면 양산 배냇골 외갓집에 갔다.

구포에서 버스를 탔는데, 다 고향으로 가는 길이라 앉을 자리도 없었다.

길도 험했고, 구불구불 고개를 몇 개나 넘었고, 점점 올라갈수록 산 아래 절벽이 아찔했다.

다행스레 기사 아저씨들은 다 운전 베테랑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몰았다.

도착한 외갓집은 마당이 넓었다. 물 맑은 계곡이 있어서 놀러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할머니 집은 아주 작은 시골 점빵도 하고 있다. 정말 딱 필요한 생필품만 있는.....

계곡에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 밥도 해주었다. 시골 토종닭으로.

냉장고가 없어서 수돗가 빨간 큰 고무 대야에 물을 틀어놓으며 음료수를 시원하게 해놨다.

덩달아 큰 수박도 대야마다 한가득이었다. 계곡에서 여름 마지막 한 때 신나게 놀며

목 말라 할머니 몰래 음료수를 대야에서 살짝 꺼내먹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시원한 나무 마루에서 낮잠 자던 날들, 오늘처럼 큰 나무에서 매미는 마지막인 양 그렇게 울어댔다.

그리고 외할머니, 할아버지는 배냇골에서의 삶을 정리하시고 부산으로 왔다.

내 유년의 추억 한 켠도 사라진거다. 거기 계속 사셨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부산에서의 삶이 녹록치 않았기에.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는 그 구멍가게들이 계속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낯선 곳에서 마주하게 된 허름한 구멍가게가 다른 위로를 안겨줄지 모르니깐.

뜻밖의 선물을 발견할수도 있으니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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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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