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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 뼘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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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7.04 「나무를 심은 사람」그림의 붓터치에 따스함이 스며든다
  2. 2021.06.28 [걷는 생각들] 나를 추스르는 시간들
  3. 2021.06.23 김신회 에세이,「가벼운 책임」
  4. 2021.06.20 곽재구 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
  5. 2021.06.06 보노짱; 너부리가 사라졌다
  6. 2021.05.30 평안에 이르다; 토와의 정원
2021. 7. 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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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교장선생님과 대화를 자주 한다.

6월에 신간이 들어와서 도서관 오며가며 책을 자주 빌리신다.

점심 시간에 오셔서 잠깐 책을 고르면서 함께 읽은 책에 관해서도 나눈다.

유명한 저자의 책이나 TV 강의에 관한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도전을 받는다고^^

학교 근무하면서 가장 이야기 잘 통하는 분이 교장선생님 일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공간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나보다. 

역사와 그림(미술), 그림책에 관심이 많으신 교장선생님.

비교적 두껍지않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퍽 인상적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배경은 프랑스인데, 책의 그림을 그린 사람은 우리나라 화가라고.

우리나라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잘 그렸는지......

<나무를 심은 사람> 작가와 내용은 워낙 유명한지라 짐작이 가는데, 그림이 궁금했다.

읽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대출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우리나라 화가가 그린 것이 아닌...... 

 

 

산도 아닌 나무 한 그루도 안 보이는 황량한 언덕이 넓게 펼쳐져있다.

튼튼하게 지은 듯 단순한 돌집 하나와 아주 작은 우물, 낮은 담 쳐져있는 양들 보금자리.

그리고 하늘 구름 사이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빛이 새어나온다.

그 빛은 양 무리의 등에 비친다. 실낱 같은 희망이 이런걸까?!

교장선생님은 이 그림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고 놀라웠다고 말씀하셨다.

빛과 어둠의 명암 표현으로 인해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회복을 말해주는 것 같다고.

책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제가 은연중에 부각되는 것 같다고.

 

대단하고 놀라운 관찰력과 호기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림만으로도 글의 분위기와 배경 등 많은 숨은 그림찾기들이 있다고.

이런 이유로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품으며 이해를 한다고^^

이런 자세로 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많은 지적 유희로 인해 행복해질까!

또 배운다. 그 대상이 누구든 배움은 끝이 없다.

 

 

내가 뽑은 책 「나무를 심은 사람」의 한 컷이다. 

정성껏 나눈 도토리, 작은 것이나 금이 간 것들을 골라내는 수고로움.

그렇게 골라 낸 완벽한 상태의 도토리 100개.

지팡이 대신 길이 1.5m 정도 굵기가 엄지손가락만 한 쇠막대기,

쇠막대기를 박고, 구멍을 파고 그 안 에 도토리를 심고 덮기.

누구의 땅인지도 모를 그 땅에 정성스레 도토리 100개를 심는다.

 

3년 전부터 황무지에 홀로 나무를 심어 왔다는 사람, 엘제아르 부피에.

누가 심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는 그저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 곳의 땅이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딱히 중요한 일도 없어서 이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떡갈나무를 심고 자작나무를 심고 단풍나무를 심고, 너도밤나무를 심었다.

황량했던 마을에 다시 개울물이 흘렀다. 

그의 말대로 상태가 바뀌었다. 

 

철저하게 홀로 고독 속에서 일했던 「나무를 심은 사람」엘제아르 부피에.

평화롭고 규칙적인 일, 고산지대의 살아있는 공기, 소박한 음식, 무엇보다 마음의 평화.....

그는 행복해질 수 있는 멋진 방법을 알고 찾은 사람이란 말에 공감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가 머물 공간에서 할 일을 찾아 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 공간에 머무는 동안 아주 조금씩 공간이 바뀌어간다는 것을

경험하는 일은 아주 멋지고 가슴 벅차고 뭉클하다.  상태가 바뀌었으니까. 

책「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으니 방과후학교 업무가 주된 업무이지만,

도서관에 내 자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나와 내 주변과 환경을 윤택하게 하는지 알게 된다. 

 

"1913년에는 이 마을에 열 집인가 열두 집이 있었고, 사람이라고는 단 세 명 만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난폭했고 서로 미워했으며, 덫으로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거의 원시인에 가까운 삶이었다. 
버려진 집들을 쐐기풀이 덮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 밖에 희망이 없었다.
하물며 선한 일을 하며 사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거이 변해 있었다. 
공기마저도 달라져 있었다.
옛날의 메마르고 거친 바람 대신에 향긋한 냄새를 실은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 같은 것이 저 높은 언덕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숲 속에서 부는 바람소리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못 속으로 흘러드는 진짜 물소기라 들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만들어진 샘에 물이 넘쳐 흐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를 감동시킨 것은 그 샘 곁에 이미 네 살쯤 되어 보이는 보리수가 심어져 있는 것이었다. 
벌써 잎이 무성하게 자란 이 나무는 분명히 부활의 한 상징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61~62쪽)

 

한 사람의 생명 존중 마음과 희생이 없었다면 황무지가 아름다운 숲으로 변할까?

숲이 개발의 틈바구니에서 온전했을까?

기적과 같은 선물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 자기의 일을 성실하게 해낸 묵직함이 뭉클함으로 다가왔다.

 

책「나무를 심은 사람」은 그림만으로도 글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림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때론 말하지 않아도 그림 자체로 그냥 위로가 된다.  

힘들 때 옆에만 있어도 괜히 위로가 되는 친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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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1. 6. 2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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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알베르게, 프랑스 생장, 스페인 하숙, 차승원*유해진*배정남 ........

낯설지만 따뜻함과 환대 그리고 동경, 평생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길......

지금은 갈 수 없지만 내 삶에서 내 마음대로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말하고 산책이라 쓴다.

홀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아주 의미있는 시간의 아침 맞이.

 

나는 참 싫증을 잘 내며, 무엇을 시작하면 끝을 맺지를 못한다.

중간에 쉼표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도돌이표도 있고 마침표는 별로 없다.

하루 8시간 일 하기 전에 하루 2~3시간 일을 했다.

아침에 아비토끼 회사 보내고, 아이 학교 보내고 나면 홀로 자유시간이다. 

오후 출근이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일상을 잘 보냈다.

해가 바뀌고 새로운 마음으로 아침 산책을 계획하기도 하고,

계절이 바뀌어 봄이 되거나 가을이 되면 걸었던 날들도 많았다. 

걷기에 좋은 천(川)도 집 앞에 있어서 하루의 시작을 알차게 보내는 첫 걸음이 산책이라 생각했다.

특히 봄과 가을에는 내 마음을 매료시키는 풍경들이 펼쳐져있어서 얼마나 멋진지.

꽃을 보고, 하늘 색감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감탄했던 날들이 선하다.

이런 내 느낌 고스란히 적힌 듯, 눈에 띈 걷기와 산책에 관한 책이 나에게로 왔다.

 

 

오롯이 나를 돌보는 아침 산책에 관한 책,  [걷는 생각들] 이다. 

지금 나는 걷기를 하지 않는다.

아침 출근과 시간이 없다는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거다.

아침 산책을 하지 않지만 아침 출근을 통해 걷고, 버스를 타는 출/퇴근을 한지 4개월이 되었다.

음은 바빠졌지만, 오며가며 그 짧은 순간의 걷기도 허트러진 내 마음과 생각을 추스르기에 충분했다. 

결국 나에게 걷기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이었다. 

 

책은 아침 산책길 예찬이다. 

저자의 오감으로 느끼는 아침 산책길은 다정하고 정겹고 싱그럽다. 

오직 앞으로 걸으며 나아가는게 목적이 아니라 느긋한 기분으로  한가로이 거닌다. 

천천히 걸으면서 자연에 내 몸과 마음, 생각이 반응하며 느끼는거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생각이 정리된다. 감사함을 느낀다.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로움과 나에 대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이런 소중한 시간들을 저자도 산책하면서 느끼는데, 

산책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가보다. 

때론 쉼표의 걷기도 도돌이표를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걷기의 유희에 눈이 뜨이겠지.

 

나는 걸으면서 사진 찍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사진 속에는 어느 계절의 한 순간이 담겨있다.

그 계절에 나는 걸었고, 꽃과 바람 하늘과 구름을 만났다. 

어떤 생각으로 걸었는지 흔적이 남는다. 

그 흔적과 느낌이 좋아서 아침이 아닌 어느 밤에 청량한 바람이 스며들 즈음에 또 걸을 수 있다. 

짧은 산책길이라 하더라도,

저자의 말처럼 얼마든지 '산티아고 순례길'이 될 수 있는거다. 

나를 추스르며 극복하는 시간의 산책도 좋지만,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내 삶의 일부가 산책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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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1. 6. 23.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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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읽고서 작가의 팬이 되었다.

지인에게 선물을 하거나 추천할 정도로 좋았던 책이었다.

그리고 다음 책을 기대할만큼 작가의 이름 세 글자는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신간이 나올때마다 사서 읽거나,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었다.

보노보노의 작가, 김신회.... 책 한 권의 영향력이 이렇게 크다.

곽재구 시인의 <우리가 사랑한 1초들> 산문집이 그랬다.

읽고 느낌이 좋은 책은 작가를 오롯이 기억한다. 

다른 어떤 책보다 먼저 읽어야 될 것 같은 일종의 책임감? 하여튼 그런 감정이 있다. 

이후 김신회 작가의 <심심과 열심>,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도 않구나>도 읽었다.

공전의 히트를 친 첫 책보다 깊이 닿지는 않았지만,  김신회 작가니까^^

그리고 김신회 작가라면 신간을 한번 더 눈여겨본다. 

문체를 알고 느낌 아니깐~~  책 「가벼운 책임」이다.

 

제목에서 조금 갸우뚱해진다. 역설인가?

'책임' 그 말 자체에서 오는 부담감 때문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데....

묵직한 돌 하나를 얹어놓은 듯 '책임'이란 말은 전혀 가볍지 않은데 말이다.

그래서  무거운 책임을 조금 내려놓고 자유로워지란 말인가?!

그 자유로워지기까지의 힘겨움이 고스란히 글 속에서 느껴졌다.

읽다보니 작가도 이런저런 생각이 나처럼 참 많구나! 

잘 하려고 하고,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의 부담감이 책임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나를, 우리를 옭아매는구나!

몇 달 동안 나도 그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가벼운 책임을 읽으면서 이해되기도 했다. 

 

 

'어른 됨과 책임, 반려견 입양과 책임' 두 문제로 고민하는 작가의 삶을 엿본다.

누구나 하게 되는 일상적 고민이다. 

때론 감당해야되는 책임감이 결국 내 만족 때문이란 것에 동의하게 된다.

그 만족감이 충족되지 않기에 삶은 피폐해져간다.

잘 하려고 하는 욕심만이라도 조금 내려놓으면 자유로울텐데.....

 

"노력해보겠다는 말은..........(중략)
노력하는 중에는 뭐라도 하는 사람이 되니까, 힘이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니까
끊임없이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길게 가지 않는다. 
노력하면 혹시 좋아질지도 몰라,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나아질지도 몰라. 
........ (중략) 상대의 단점 앞에 눈을 감는 것,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

내 마음에 거짓말하는 것, 그럼으로써 관계를 내려놓지 않는 것,

그러느라 너덜너덜해진 마음마저 감당하는 것, 이제 그런 거 안 하고 싶다.
관계 또는 누군가를 책임지기에 앞서 필요한 것은 먼저 내 마음에 책임감을 갖는 일이니까." (92~93쪽)

 

박스 안에 「가벼운 책임」을 추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당하지 않을까?

물건 하나 사는 것도 결정하기 어려워 미루는 사람,.... 나는 결국 고르다 지쳐 선택을 포기한다.

인생, 대충 사는 것 아님을 몸소 느끼는 요즘이다.

관계에서 좀 많이 숙이는 편이다. 

싫은 소리 잘 못하고, 혼자가 그냥 편하다. 그렇다고 외로움은 절대 아니다. 

관계 소통이 중요하지만, 그 관계가 피곤해서 피하는 편이다.

책임감이란 말에 답답해하지만 그래도 시간 지나면 그 책임감 때문에 일을 다 해내고 만다. 

책임이 주는 무게감과 어른..... 불가분의 관계임을 새삼 알게된다. 

그렇다고 책임감과 어른을 한 매듭으로 묶고 싶지는 않다.

어른이기 이전에 인격을 가진 내 몸과 마음, 생각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의식한 책임감 이전에 나를 먼저 배려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3월~6월 지금까지 새로운 환경(삶)에서 나를 지탱해준은 사실 「가벼운 책임」이라 할 수 있다. 

「가벼운 책임」이 없었다면 새로운 일, 어려운 일을 피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6월 100일이 지난 이제서야 조금 자유롭고 가벼워진 마음이 될 수 있었을까? 

 

"작지만 단단한, 수시로 만져 반질반질해진 돌맹이 같은 책임을 나는 하루에 다섯 번씩 반복하고 있었다.

책임감은 특별한 게 아니다. 오늘 하루, 하기로 한 일을 잊지 않는 것, 귀찮거나 싫어도 해보는 것,

최대한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 만약 당신이 '나는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매일 나를 혹은 누군가를 위해 반복하고 있는 일들을 떠올려 보자.

그것 하나하나에 번호를 매겨 하루에 몇 번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헤아려 보자.

하루는 의미 없이 지나가는 것 같아도 몇 갠가의 책임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걸 수행하면서 매일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이다."(104쪽)

 

3월부터 지금까지 수첩에 하루 하루 할 일들과 수행했던 일들을 메모했다.

메모 할 당시에는 너무 절박했다. 다음번에는 내가 혼자 감당해야 될 몫이니까.

메모는 번호를 매기지는 않더라도 수시로 기억해야 될 오늘 하루 감당해야 될 나의 작은 책임감이다.

결코 가볍지않은... 그렇다고 부담스럽지도 않은 내 힘겨운 때 나를 지켜줬던 책임감이다.

 

"책임감의 또 다른 이름은 관대함이 아닐까.

나를 책임지고,누군가를 책임지는 일은 나에게, 더 나아가 타인에게

관대해지는 일로부터 시작되는게 아닐까.

내가 진짜 갖고 싶었던 건 책임감이 아니라 관대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조금 더 관대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그걸 위해서는 책임감부터 가져야 한다며 또 한번 통제 욕구를 발휘했던 거다. (195쪽)

 

내 만족을 위한 책임감보다 내 마음을 향한 배려와 관대함이 책임감 이전에 선행되어야 함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른이라면....

책임감 보다 관대함이란 단어가 먼저 생각날 수 있도록^^

관대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내 마음밭을 잘 가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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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1. 6. 2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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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시인의 글을 읽으면 가슴 한 켠 묵직한 그리움과 따뜻함이 교차한다.

그래서 많이 좋아한다. 산문도 시집도 좋다. 

머리로 이해되기 보다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나도 모르겠다. 곽재구 시인의 글(시)만 읽으면 그렇다.

뭣이든지 다 쎄~하다. 뭉클함이다.

 

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 이다.

시인의 사연이 담긴 글과 글 속에서 호올로 빛나는 詩의 향연.

곽재구 시인의 수필을 먼저 알았다. 그리고

그 수필 속 액자처럼 환하고 밝고 아련한 시어들을 만났다.

반갑고 그리운 사람이 있었고, 사연 깃든 장소가 거기에 있었고, 추억이 있었다.

잘 버무려져서 시인의 언어로 재탄생되었다.

 

 

주말에 우리 아파트에는 음악 DJ가 있다. 

점심 지나고 3~4시 즈음 볕이 가득 들어오는 한나절에 음악이 울려퍼진다.

울림통이 큰 아주 빵빵한 전축 소리가 한낮의 적막을 깨운다. 

나오는 음악도 아주 다양하다.

70,80 음악 뿐 아니라 올드 팝송과 클래식 음악까지......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음악에 관한 깊이가 있구나! 

나도 모르게 그 음악에 빠져든다.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이 소음을 만들구나 싶었는데.........

이제 주말마다 멋진 전축에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허전하다.

낮잠이 스며들기 딱 좋은 시간인데,

울 아파트 DJ가 들려주는 음악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곽재구의 시집을 읽으니 더욱 아련함으로 들어간다.

따가운 볕이 베란다 창으로 뜸뿍 들어오고, 빨래도 잘 마른다.

 

---♠ 세상의 모든 시 ♠--- 곽재구

 

나는 강물을 모른다

버드나무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둘이 만나

 

강물은 버드나무의 손목을 잡아주고

버드나무는 강물의 이마를 쓸어준다

 

나는 시를 모른다

시도 나를 모른다

 

은하수 속으로 날아가는 별 하나

시가 내 손을 따뜻이 잡는다

 

어릴 적 아기 목동이었을 때

소 먹일 꼴을 베다

낫으로 새끼손톱 베었지

새끼손톱 두쪽으로 갈라진 채 어른이 되었지

 

시가 내 새끼손톱 만지작거리며

괜찮아 복숭아 물 들여줄게 한다

 

나는 내 시가 강물이었으면 한다

흐르는 원고지 위에 시를 쓰다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을 것이다

 

 

시인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시인이 어떤 시를 쓰야 하는지

이해하기 쉽게 시로 표현했다. 

이런 시인의 시라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까!

흐르는 강물을 원고지 삼아 시를 쓰고,

저녁 어스름한 불빛 속 항구에서 세상의 시를 읽는 삶.

곽재구 시인의 삶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시였다.

문득 그리움과 고독, 외로움과 따뜻함이 교차한다.

이런 감정을 더 느끼고 싶어서 시를 찾고 읽게 된다.

 

---♠ 자두꽃 핀 시골길 ♠--- 곽재구

 

우리고물상 지나

용당식물원 지나

낙원주유소 담장 위 노란 호박꽃

어린 태양의 축제 같아라

시가 찾아와 깜빡이등 켜고

길가에서 시 쓰는데 경찰이 달려오네

주정차 금지 구역 열심히 설명하는 젊은 경찰에게

면허증을 건네니

뭐 하셨소? 묻네

호박꽃이 좋아 시를 쓰는 중이었소, 하니

호박꽃이 좋으오? 또 묻네

아니오 평소엔 자두꽃을 좋아한다오

그가 천천히 면허증을 건네주며

다음번엔 자두꽃 핀 시골길에서 시를 쓰오, 하네

 

시로 응수하는 시인의 말센스에 한번 더 놀랍다.

일상의 상황을 시로 표현되는 세상, 삭막하지 않을 것 같다. 

'다음번엔 자두꽃 핀 시골길에서 시를 쓰오'

젊은 경찰의 훈계가 아닌 따뜻함 묻어나는 말이 그냥..... 고맙다. 

참, 고마움이 가득한 세상이다. 

다르게 보면.....

시인은 그래서 다르구나!

내면의 옹골찬 깊이를 사색하며 표현해내는 그 일을 감당하는 시인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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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1. 6. 6.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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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조금 아주 조금 쉬어가고 싶을 때 가끔씩 유튜브로 <보노보노> 만화를 본다.

4,5분 정도의 짧은 컷의 만화라서 부담스럽지 않다.

언제나 순수하고 착한 해달 보노보노가 좋고,

사랑스러운 다람쥐 포로리,

때론 시크하면서 난폭하기도 한 듯 반전 매력을 뽐내는 라쿤 너부리 등

저마다의 개성 있는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숲 속 생활 이야기가 의외의 힐링을 선물한다. 

어른이 되어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를 보면 참 유치하게 느껴지지만 계속 본다.

좋았던 기억이 머릿 속 어느 한 곳에 오롯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들장미 소녀 캔디, 빨강머리 앤, 아기공룡 둘리, 모래요정 바람돌이, 플랜더스의 개,

개구쟁이 스머프, 개구리 왕눈이, 날아라 슈퍼보드, 이상한 나라 폴, 달려라 하니,

요술공주 밍키, 베르사이유의 장미 등

지금의 놀이문화와 비교하면 정말 재미없겠지만

TV만화 보는 시간이 밖에 나가 노는 것 만큼 중요했다. 

마음을 포근하게 덮어주었던 따뜻한 정서였다.

어렸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 그 때 그 정서가 그리울 때 있다. 

옛 추억을 소환하는 어떤 매체를 만난다는 것,

'반갑다 친구야' ~~~

 

 

어렸을 때 '보노보노'를 봤을 때는 보노보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보노보노의 문장들은 뭔가 깊이가 있었다.

느릿하고 어눌한 말투로 삶을 해맑게 표현하지만,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지점에서는마냥 어린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철 든 아이와 아직 삶을 배워가는 어른의 중간 즈음?

아마 이런 보노보노의 성격 때문에 보노보노는 친구가 많은 듯 하다.

이런 보노보노를 좋아하면서 못 견뎌하는 친구 중 하나가 라쿤 '너부리'가 아닐까!

 

보노보노, 포로리, 너부리로 인해 숲 속에 늘 생기가 돌았는데 왠지 조용하다?

「너부리가 사라졌다」 태연한 너부리의 아빠와 짐짓 신중한 보노보노 아빠.

너부리를 찾기로 한다. 포로리와 린네 집으로~~

'보노보노' 만화를 보면 내 기억이 맞다면 엄마들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아빠 손에서 자라는 보노보노와 너부리, 포로리와 린..... 그런데,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네 삶에서는 한 부모 가정은 어떤 식으로든 낙인찍히고, 상처가 되는데. 

 

「너부리가 사라졌다」에서는 같이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

보노보노와 친구들 아빠의 생각들이 꽤 자유롭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생활 방식이 이런 것일까 싶다. 

모성애와 부성애의 구별은 희박하고,

그냥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 속에서 그 누구든 키우면 된다. 

자유는 허락하되 속박하지 않는다. 떠나있어도 보고 싶다면 언제든지 보러와도 된다.

 

부부 사이에도 여행이 필요하다면 떠나는 것 괜찮은데,

너부리 아빠처럼 참을만 하니깐 참는다는 말은 '부부 사이가 남'이라는 말에 공감을 부여한다. 

너부리 엄마가 너부리 아빠와 같이 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다.

젊었을 땐 여행을 떠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여행 후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상함과 따뜻함에 끌렸는데,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고 참는 중이란 말에 너부리 엄마는 화가 난다.

끌림이 없고 대화가 단절된 부부 관계는 남보다 못하다.

 

-----♣ 너부리 아빠; 당신이야말로 어딘가 가지 말고 여기서 사는게 어때?

너부리 엄마; 내가 돌아오면 당신이 여행 떠나게?

너부리 아빠; 아니, 이제 안 가.

너부리 엄마; 왜 더 이상 여행을 떠나지 않아?

너부리 아빠; 안 가도 참을 수 있거든.

너부리 엄마; 참아야 할 정도라면 가면 되잖아. 

너부리 아빠; 참는게 더 편하거든.

너부리 엄마; 그래서 당신은 지루해진거야.

                       난 말이지, 참을 정도라면 여행을 떠나겠어.

(보노보노 아빠; 가버렸네요.)

너부리 아빠; 저 사람은 저 사람, 나는 나니까. -----♣

 

 

너부리는 엄마와 함께 있었다. 

아빠와 이웃들이 함께 찾아다녔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태연하게

보노보노와 포로리를 보자 함께 논다. 

너부리가 사라진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너부리 아빠의 태연했던 행동이 이해된다.

어딘가 여행하고 있겠지! 엄마랑 함께 있겠지!

너부리 엄마와 아빠가 같이 살지는 않아도 '남'이 아닌 '가족'이구나!

각자의 삶을 나름 존중해주는 보노보노와 친구들, 그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너부리가 아빠도, 엄마도 아닌 친구를 선택했다. 

둘 중의 하나 누군가를 콕 찍어 선택해야만 하는 사실이 웃프다. 

삶에서 이런 선택은 얼마나 많은지.....

 

------♠ 좋아했던 사람과 자기 아이 중 어느 쪽이 남일까?

이 질문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책 후기에서는,

'더 이상 같이 살지 않으면, 점점 완벽한 남이 됩니다. 

원망하는 것보다 완벽한 남이 되는 게 낫다면, 따로 사는 편이 좋습니다.'

대답을 내놓았다. 

 

감정이란 것이 무 자르듯 무심하게 툭툭~ 자르지 못하듯 관계란 것이 그렇다. 

특히 아이를 사이에 둔 부부란 관계에서 타인이 된다는 것은 더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최선을 아니라면 차선을 선택하는게 낫다. 

그래서 '따로 사는 편'을 선택한 너부리와 린 엄마의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에 공감이 간다. 

책 「너부리가 사라졌다」 통해 가족과 부부,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확실히 뭔가 심오한 지점이 있다. 보노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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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1. 5. 3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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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을 오롯이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해마다 계절은 돌고 돌지만, 느낌은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매번 똑같은 봄여름가을겨울이라고 생각한다.

공기의 흐름과 대기의 지각변화가 다양하고 너무 다른데....

눈으로 보고 느끼는 계절의 변화에 둔감하다. 

보는 눈이 아닌 듣는 귀와 코로 맡아지는 냄새의 민감함 뿐이라면 어떨까?

누구에게는 똑같아 보이는 계절의 미세한 변화를 느끼는데 더 집중할 것이다.

「토와의 정원」에는 특별한 향기가 뿜어져나온다.

그 향기로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는 아이가.... 어른이 있다. 

 

 

녹음이 짙어져가는 5월, 이 푸르름이 나는 좋다.

연둣빛에서 점점 초록으로 짙어져가는 이 시간들이 좋다. 

이런 멋지고 좋은 계절에  읽는 책은 얼마나 마음을 살찌우게 할까!

오랫만에 읽고 싶은 책이 눈에 띄어서 신청을 했다. 

바쁜 나날 속에서 그림책 읽는 것으로 그나마 허허로웠던 내 마음의 양식을 채워갔는데,

좋은 날과 내 기분과 마음에 드는 책, 3박자가 맞아 떨어진 책이 나에게로 왔다. 

이 또한 감사함이다.「토와의 정원」이다.

 

제목과 앞표지 그림만으로도 내 마음은 설레었다.

이런 집과 정원을 지금도 항상 꿈꾸기에.

그리고 <츠바키 문구점>의 작가, 오가와 이토의 작품이니까^^

오카와 이토의 작품은 특별한 정서가 있다.

장소가 주는 특별함과 음식에서 풍겨져나오는 삶의 담백함,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틋함,

사람과 장소로부터 뿜어져나오는 기억에 대한 따뜻함과 뭉클함이다.

저마다의 아픈 상처를 가진 사람들, 평범한 듯 보이지만 복잡하고 내밀한 속사정,

마음 속 상처를 밖으로 이끌어내기까지 마주해야하는 용기,

사람들과의 소통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는 늘 그렇듯 위로를 준다. 

 

 

서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것과 반대로 책 속 처음 들어가는 이야기는 밝지 않다. 

시각 장애를 가진 아이와 함께 사는 엄마, 영원한 사랑으로 이어져있는 '토와'와 엄마.

토와와 엄마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늘 함께 한다.

그런데 10살 토와의 생일날 이후, 삶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의지했던 엄마는 갑자기 사라졌고, 앞 못 보는 토와 홀로 남겨졌다.

살아남아야했다. 시간은 정원에서 바람 따라 들어오는 향기로 감지했다.

배고픔과 두려움으로 보냈던 시간은 얼마나 지났을까?

가장 어두운 해 뜨기 직전,

가장 어두운 절망 속에 홀로 남겨졌을 때, 새벽이 오고 해가 뜬다. 

누구의 도움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토와의 삶에 희망이 들어왔다.

가장 궁금한 엄마의 소식으로 한동안 떠들썩했다.

미움과 학대, 그리고 살인, 유기, 방임,....... 

엄마의 속사정에 대해 전혀 모르는 토와는 엄마가 보고싶다.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늘 책을 읽어주던 엄마,

토와의 정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밤과 아침을 여닫으며 함께 했던 시간들.

 

이제 토와의 정원이 아닌 바뀐 환경 속에서 토와는 다시 살아남는 연습 '홀로서기'를 한다.

모든게 처음이다.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 많지만.... 그래야 집, 토와의 정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엄마 외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서툴고 두렵지만 따뜻한 환대가 있었다.

그리고, 토와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안내견 '조이'다.

조이와 함께 이제 토와의 정원으로 가서 독립적인 삶을 꾸려나간다.

삶이 풍성해졌다. 조이와 함께라면 낯설지만, 두려움이 없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빵집에서 좋아하는 빵을 사고, 

토와의 정원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의 향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마음 맞는 착하고 배려심 많은 이웃, 마리 씨를 만났다.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게 되는 우연,

토와와 마리 씨에겐 '엄마'라는 접점이 있다.

엄마의 도움이 절실한 토와와 엄마의 간섭이 싫었던 마리.

시간이 흘러 '엄마'는 그리움이자, 돌봐야 될 아이가 되었다. 

집과 엄마는 힘겹지만 결국은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안식처였다.

 

무너진 일상을 회복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혼자가 아닌 함께 힘이 되어주는 사람(사물,자연,동물)이 있음에 살아낼 수 있다. 

토와에게 조이와 마리 씨, 스즈 그리고 토와의 정원이 있다. 

언제나 그리운 엄마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지만,  충분히 살아갈 이유가 된다. 

살아가기에 세상은 토와에게 여전히 어렵고 두려운 곳이지만 많이 행복해졌다. 

소소하게 해야 될 일이 있고, 독립적으로 살림을 꾸려나갈만한 작은 일거리도 있다. 

여전히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느끼고 볼 수 있다.

토와, 평안에 이르렀다^^

 

역시, 작가 오가와 이토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야기를 풀어냄이 아름답다. 아픔과 상처가 있지만, 동시에 회복이 있다. 

2년째 접어든 코로나 시대에 「토와의 정원」이야기는 특별한 선물과 위로로 다가온다.

삶의 제한을 받고,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 속에서 불편하고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지만

봄여름가을겨울이 올 때 마다 무심코 넘겼던 계절감을 이제는 소홀하게 다루지 않는다.

마스크를 끼고 다니지 않았던 코로나 이전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느낀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후 우리는 그 소중함을 절실하게 알게 된다.

「토와의 정원」으로 돌아온 토와는 일상을 아주 소중하게 가꿔나간다. 

우리가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 무덤덤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아주 절박하면서 소중한 일상이 된다. 

토와의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는 일상이 내 일상에 온기를 다시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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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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