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 google3339f54caf24306f.html
2020. 12. 1. 19:46
728x90
반응형

코로나19로 인해 계절감이 자연스레 무뎌졌는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늘 왔다.

조금 우울한 2020년을 보내고 있기에 기분이 많이 가라앉았다.

10개월 이상 마스크를 끼고 생활했지만, 시간이 흐르니 이것도 익숙해졌다.

모든게 시간 안에서 익숙해지나보다.

그래서 어느 한 계절이 와도 그냥 무덤덤했나보다.

겨울이다. 역시 기분이 남다른 겨울이란 생각에 뭐랄까.......

마음이 휑하면서도 남은 겨울 따뜻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 달에 한 번 아이 치과에 가는데, 작은 전나무?들이 도로 한가운데에 몇 그루 서 있다.

그 모습이 꼭 크리스마스 트리(tree) 같아서 마음에,

"앗, 저 작은 나무 한 그루 울 집에 가져가고 싶다.

크리스마스 트리용으로 알록달록 전구도 달고, 불도 켜고, 구멍 난 양말도 달고,

멋지게 장식하면 화안해지겠네"

은연 중 저물어가는 2020년을 아쉬워하며 남은 시간 마음 뭉클해졌으면 좋겠다.

다른 해보다 특별하게 따뜻한 연말을 기다린다.

뜬금없이 불멍이 생각났다.

붉게 달아오른 장작불을 보면서 아무 생각없이 그저 바라만봐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해멍(바다 보면서 멍~), 산멍(산 위에서 멍~)도 있다고 하니 요즘 사람들 많이 힘겨운가보다.

모든 불을 꺼고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만으로도 조금 위로가 되지 않을까!

덜컥 겨울이 곁으로 왔고, 때는 연말 분위기로 향해 가는데 기분이 가라앉는다.

크리스마스에 관한 책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

혹시나? 마음이 들뜨니까^^

 

 

눈이 온다면...... 더 화안해질 것 같다. 여기는 눈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그동안 집-학교-학원 이어지는 재미없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기 좋을 때.

눈 오는 날~~~ 집순이, 집돌이도 집 밖으로 나오게 만든다.

모든게 하얀 세상, 그 하얀 세상에 내 발자국이라도 첫 흔적을 남기고 싶다.

눈싸움에 자신없다면, 눈으로 이글루를 만들 재주가 부족하다면

그냥 가만히 눈 오는 것 바라봄으로도 좋을 것 같다.

소복소복 쌓여가는 눈에 마음이 쉬어가면 되지. 설멍?^^ 인가.

 

그림책 <감기 걸린 눈사람>이다.

이맘때 딱 읽기에 좋은 그림책이 나와서 마음이 밝아졌다.

겨울은 으스스 오돌오돌 춥다. 추우면 사락사락 어쩌면 눈이 내릴수도.

눈 내리면 마당에 아이들 웃음소리 깔깔깔~~ 함박 웃음 짓게 하는 함박눈이다.

눈을 굴려서 눈을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자!^^

올라프의 탄생은 초 읽기다.

여기서 잠깐, 겨울에 눈으로 태어난 눈사람이 왜 감기 걸렸지?

하기사 겨울에 태어난 아이도 감기 걸리니까.

눈사람은 아무 죄 없음~~~

눈사람이랑 놀고 싶은데,..... 감기 걸려서 눈사람의 기분이 영 저기압이다.

따뜻하게 해줄 방법이 없을까? 눈사람을 웃게 만들 수 있을까?

 

 

감기 오지게 걸린 눈사람 아아츄를 만난다.

이름도 그럴싸하다. '아이 추워'~ 줄임말이 아아츄? 하여튼 기발해~~

한창 눈밭에서 재밌게 놀던 친구들, 아아츄가 감기 걸린게 마음에 걸리는지

추위로부터 아아츄를 구하려고 한다.

따뜻한 코코아를 주고, 모닥불을 쬐게 하고, 뜨끈한 물에 담그고,

털모자를 씌워주고, 목도리를 두르고, 외투를 입혀준다.

다시 녹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면서 아아츄는 또 너무 덥다고 투덜거린다.

 

 

결국, 친구들이 챙겨준 외투와 털모자, 목도리로 체온 높이기에 성공한 아아츄.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으로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를 찾게 된다.

아주 딱 좋다고^^

 

아아츄를 웃게 만들고,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아이스크림으로 기분좋게 만들어주고,

제 온도를 찾게 된 아아츄에게 친구들은 그 이상이다.

아무리 눈밭에서 놀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해도 겨울은 겨울인데,

털모자와 목도리, 외투를 너무 자연스레 건네는 아이들이 순수하고 착하다.

비단 그림책이 아니라 실제로도 이런 경우가 생긴다면 아이들은 기꺼이 자기 것을 줄 것이다^^

어른이지만, 이런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과 착한 마음을 배우고 싶다.

아이들은 홀로가 아닌 같이 어울리는 마법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복잡하지않고 단순하게 그냥 친구에게 가까이 가서 자기 것 나누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것은 가르쳐준다고 배우게되는 심성이 아니다.

 

<감기 걸린 눈사람>이 드디어 제 몸에 맞는 온도를 찾아서 다행이다.

친구들과 재밌는 추억을 많이 만들 것 같다.

그림책을 읽는 순간은 늘 그렇듯 행복하다.

어릴적 추억을 꺼내기도 하고, 나도 잠시 아이가 되어본다.

반응형
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0. 11. 28. 17:17
728x90
반응형

봄에 무리지어 핀 풀꽃이 어제는 저기 피었는데, 오늘은 여기 피었다.

봄여름가을겨울 아침과 밤마다 새의 지저귐이 다르다.

같은 나무인데도 색깔의 물들임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바람의 흔들림에 따라 구름의 모양과 하늘의 색감이 다르게 펼쳐진다.

아침에 짙은 안개가 끼면 그 날은 맑고 더운 날이 예상된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 한 점 없고 맑은데, 겨우내 찬 바람이 스며듦은 눈이 왔으면 좋겠고,

비가 흡족하게 내려 땅을 뜸뿍 적셨으면 좋겠고,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 내려온 24절기가 그 이름에 맞게 사용되어졌으면 좋겠다.

11월 말의 때이른? 추위가 올 겨울을 덮칠 한파를 미리 걱정하기도 한다.

땅이 점점 메말라가고, 바다가 오염되어져가고, 기후가 널뛰기를 한다.

사람들의 이기심과 편의 때문에 자연이 시들시들해간다.

추위를 뚫고 봄을 깨우는 하얀 목련이 지금 봉오리져 있다.

겨울에는 목련의 꽃눈도 잠을 자야 되는데....

신기하면서도 마냥 기쁘지않다. 순리대로 피고 지는게 아니니까.

이런 자연의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난다.

그것을 제대로 보고 느끼지 못하고 무감하게 지나친다면 결국 폐해는 사람에게로 되돌아온다.

삭막한 삶 속이지만 조금 일찍 「자연 수업」을 받는다면 삶이 피폐해지지는 않을 듯 싶다.

 

 

 

 

땅 아래, 하늘 위를 누구보다 조금 더 관심있어라 하고 좋아한다.

흑빛 어둠 속에서 별을 헤아려보기도 하고, 혹여나 별이 내가 보이는 곳에서 떨어질까 궁금해하면서

한참 올려다본다. 땅 아래 보물을 숨겨놓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본다.

별과 풀꽃을 본다. 작은 벌레들도 본다. 나무 위의 새들도 본다.

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이지만, 그 본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다.

거기에서 무탈하게 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고, 안부를 묻는것이다.

나에게 이런 것이 자연 수업이다.

 

바람과 새와 꽃의 은밀한 신호를 읽는 법, 「자연 수업」 이 책이 나는 너무 좋다.

흔한 사진과 그림 하나 없지만 머릿속으로 연상이 된다. 저자가 쉽게 쓰기도 했지만, 다정하게 썼다.

<빨강머리 앤>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그 푸릇푸릇한 대자연이 스스럼없이 생각났다.

인문학 서적이 될만한 자연을 다룬 책 중에서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달맞이꽃은 오직 해질녘이 되어서야 꽃잎을 열고 향기를 내뿜는다. 그러면 달콤한 유혹에 홀려서 
   나방들이 몰려들고 연노란색 꽃받침에 내려앉는다. 어둠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눈에 잘 띈다는 점에
  
노란색은 '야행성' 식물의 전형적인 색이다. 비누풀은 하루종일 꽃을 만개한 상태로 유지하지만
  
해가 진 다음에만 매혹적인 향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숙근플록스의 옅은 핑크색 꽃은 밤에도 쉽게 눈에 띈다.  
   따뜻한 여름날 저녁 야외에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 밤에만 꽃을 피우는
  
이런 녀석들을 몇 개 심어 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수줍음이 많은 방문객을 볼 기회가 생길텐데.
  
그중에는 생전 처음 보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76쪽)

정원을 가꾸는 세심하고 따스한 정원사처럼 저자의 설명이 충분히 마음 속으로 스며들었다.

비와 바람, 눈과 우박에서부터 새와 꽃 나무에 이르기까지 자연에서 관찰되는 모든 현상과 존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정원에 무방비로 쑥쑥 자라나는 풀에 대해 무자비하게 제거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 빙빙 맴돌았다. 흙과 연관되기에 더 나아가 빗물의 스며듦과 흙 속 생물과 나무에까지

그 연관성이 이어지기에 생생함과 경이로움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듯 싶다.

 

  혹시 여러분은 몇몇 야생화들이 정원을 마치 자기 발로 돌아다닌 양 보이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런 야생화들은 처음 몇 년 동안 한쪽에 모여 있다가 갑자기 다른 한쪽에 나타나서 개체 수를 불리기 시작한다.
  무슨 조화일까? 야생화가 씨앗을 퍼뜨릴 수 있도록 개미가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개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식물은 작은 보상을 제공한다. 모든 씨앗에는 엘라이오솜이라는 지방과 당분으로 이루어진
  화학 물질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이들 택배 직원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진다.
  개미의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는 식물에는 야생 딸기를 비롯해 들제비꽃과 달래, 광대수염, 물망초 등이 있다. (82쪽)

식물과 동물의 세계에서도 택배 서비스가 있다니.... 하기사 공생의 관계로 서로 더불어 살아가야지 같이 윈-윈 할테니까.

개미가 택배 직원이라는 발상이 신선하다. 그리고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는 식물과 씨앗들.

내가 봄부터 이쪽 저쪽 흙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보았던 큰개불알풀꽃(봄까치풀꽃)을 개미가 배송했다니....

  새벽 5시에 꽃을 피우는 호박은 하루를 가장 부지런하게 시작한다. 금잔화는 오전 8시에 꽃잎을 열고
  데이지가 9시에 그 뒤를 잇는다. 태양이 남쪽의 천정점에 도달한 정오에는 솔잎국화로도 알려진 사철채송화
  같은 정오에 피는 꽃들이 만개한다. 오후가 되면 서서히 가게를 닫는 꽃들이 생기는데 오후 2시부터 3시 사이에는
  서양민들레가 꽃잎을 닫기 시작하고 오후 3시가 되면 박꽃이 하루를 마감한다. 저녁 6시 즈음에는 양귀비고 가게를 닫는다.
  이렇게 식물들이 왜 서로 다른 시간에 꽃을 피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까?
  꽃가루받이 곤충들에게 선택의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그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다.
  수많은 꽃이 영업을 위해 만개하는 혼잡한 시간대에는 벌들이 그들을 기다리는 모든 꽃을 방문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꽃은 손님을 받지 못한 채 허탕을 칠 수 밖에 없다. (88~89쪽)

하루를 열고 다는 꽃들의 시간표가 전부 달랐다. 영업과 손님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도 재밌다.

꽃잎의 열고 닫는 시간을 통해 하루 중 어떤 시간인지 대략 알 수 있음에 흥미로웠다.

이런 꽃들의 세계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생존전략이긴 하지만 생각이 많아진다.

결국 공생으로 이어진다. 더불어 win-win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얼마나 소원해졌는지는 덥고 건조한 여름이 오면 잘 알 수 있다. 농부들과 삼림 감독관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비 소식을 기다리는데, 도시 사람들은 무심하게도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에
  기뻐한다. 가뭄이 길어진다는게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에 직면해있는 지금, 자연이 보내는 신호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일은 오히려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그래야만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알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핵심이다.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인데, 우리는 일기 예보를 하는 기상청을 자꾸 탓한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자연을 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으면 자연의 신호를 읽고 우리도 내일의 기상예보관이 될 수 있다.

반응하지 않고 무뎌져있는 우리의 감각을 탓해야 하는것이다.

지금은 얼마나 중요한 때인가? 그동안 우리는 역사적으로  많은 기술적인 진보와 혁신을 이루었다.

세계는 다양해졌고 인간은 편리해졌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자연은 없다.

무분별하게 자연을 막 이용하고 환경을 파괴해왔다. 자연의 신호, 아픔을 외면했다. 얻은 것보다 잃은게  많다.

더 늦기 전에 전세계적으로 기후협약을 맺고, 환경 파괴가 가속화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될 때이다.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가져야 할 때이고, 자연에 대해 미안함과 고마움을 가져야 할 때이다.

 

보석같은 자연 속 일들이 땅과 하늘, 숲과 정원, 대기 속에서 마구 일어난다.

들여다보니 자연이 순리대로 흐름은 이유가 있었다. 생존에 대한 본능과 이로움이다.

예측할 수 없지만 자연은 그들 나름으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인간도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가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하는데....

  우리는 개나 고양이, 새 등의 지각 능력에 자주 감탄하면서 인간의 신체도 똑같은 원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우리의 감각 능력이 사무실이나 집 안 소파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자연환경에서 평생에 걸쳐
  길러진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할이 인위적인 생태 환경에 좌우되는 까닭에
  우리 인간의 생물학적인 기원을 망각하는 것이다. (245쪽)

곰곰히 생각해보니, 감수성이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연습을 해야하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자연에 반응하고, 보는 것과 소리와 냄새에 민감함은 이유가 있었다.

관심과 애정이었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나의 감수성을 칭찬해~~~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하지는 않지만, 마음을 따라 흐르는 감정이 짙어져가는 나를 본다.

반응하는 속도에 느릴수 있지만, 깊이 여운으로 생각하는 내 마음을 칭찬해~~~

이런 사랑스러운「자연 수업」이 또 있다면, 계속 수강할 수 있다^^

 

겨울이 들어왔기에, 문을 다 닫는다.

아침에 밝은 햇살이 동쪽 창에서 반짝일 때, 문을 다 열고 환기를 시키고 하루를 시작한다.

다시 어둠이 찾아와 방 공기가 싸늘해지고 닫힌 문으로 건조할 때, 책상에 물 한 대접을 올려놓았다.

코가 막혔는데, 뚫렸다. 물 한 대접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

이렇듯 자연을 무한대로 이용하는 소비자 입장이다. 비용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대신, 같이 살자고 말하는 것 같다. 소비하는 내용물에게 관심을^^

매순간 반응하며 사는 것이 자연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란 생각이 든다.

반응형
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0. 11. 22. 16:51
728x90
반응형

엄마와 딸의 이야기들은 참 많은데, 아빠와 딸의 이야기는 생소하다.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도 제법 있는데....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가 눈에 띈 표지 그림이 따뜻해보이고 끌렸다.

부녀(父女)의 시간을 담은 그림 에세이,「햇감자와 묵은 감자」이다.

70Km와 40Km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

더 늦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고 기록하고 싶었다는 속내 깊은 딸의 말이 닿는다.

아버지는 시간이 흐른만큼이나 병약하시고 달라졌다.

아버지의 그런 변화들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마음 한 켠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딸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하리라.

아버지와 주말 농장에 땅을 빌려 작은 밭을 가꾸면서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간다.

 

딸 둘, 막내딸이라 어릴 때 아버지의 사랑을 나름 많이 받고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크면서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과 흔적들이 없었음에 조급증과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 흔한 우리끼리의 가족 여행도 같이 해본 적 없었고, 가족 사진이란 것도 없다.

부모님들은 다 바쁘셨고, 나름 여유도 없었다.

따뜻한 가족간의 정과 유대감을 느낄만큼 끈끈함도 없었다.

부모와 자식간, 자매간의 스킨쉽도 우린 낯설다.

말로 서로를 위로하고 마음으로 넌지시 전할 뿐이다.

 

 

감자형 얼굴에 감자를 좋아해 가족들이 부르는 별명, 아버지는 묵은 감자 딸은 햇감자.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몰랐던 서로의 공통점도 발견한다.

술을 멀리하게 되고, 책 읽기를 좋아한다. 흔한 운전면허도 없다.

♬♪ 아버지와 함께 완두콩을 까는 시간.

영원히 까야 할 것처럼 무수해 보이던 완두콩도 함께 까다 보니 바닥이 보였다.

모든 것엔 끝이 있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도 유한하다.

아버지의 따뜻한 손, 지금 이 순간의 온기. 지금 이 순간의 삶 ♬♪

읽고 정리하면서 홀로 계신 아버지가 더 생각나고 보고싶다.

비 온 뒤 점점 날이 찬데, 걱정되기도 하고.... 그러면 다시 아버지께 가야 할 시간이다.

 

 

딸은 아버지와 한 해 동안 주말마다 농장에 함께 다니며 4평의 땅에 채소를 키웠다.

아버지와 함께 하니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롭고 아름다웠을 듯...

나도 소망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아버지는 이발사로 일 하신다.

아비토끼와 늘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칼국수집~~~

나는 맛깔나게 생김치를 잘 담그니 칼국수집 하면 된다고^^;;;;

아주 작게 소박하게 가게를 내고, 가게 옆 작은 텃밭에 소소하게 채소들을 심을건데

그 텃밭을 가꾸는 것은 아버지 몫으로 드려야겠다고.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꽃화분을 키우셨고, 집 옆에 고추며 상추를 심었다.

아버지가 손을 대면 희한하게 꽃도 채소도 잘 자랐다.

그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고^^

오래 걸리지는 않도록 준비해야겠다. 시간이 길지 않으니까.

아버지의 힘겨웠던 젊은 날들 이젠 평안하셨으면 좋겠다.

한결같은 기도제목이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 마다 마음이 아픈 것은 삶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40대 중반을 훌쩍 넘어가니 애틋한 마음이 든다. 나도 부모라서...

사랑을 강요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충분히 사랑을  듬뿍 나눠주셨다는 것을 안다.

그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릴까? 그 공이 나에게 넘어왔다.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다.

감사함으로 마음 속 품은 계획에 대한 문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

"삶이 이야기가 될 때 이야기는 힘을 지닌다. 삶이 말하게 하자"

반응형
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0. 11. 21. 22:04
728x90
반응형

업무가 많아져서 시간도 빨리 가고 좋지만 두렵기도 하다.

늘 하던 일이 아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 재밌지만 부담스럽다.

같이 하던 일에서 혼자 하려면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쌓인다.

모든 일이 처음에는 새롭고 힘들고 부담스럽다고 위로를 나름 해보지만,

오지 않은 시간과 일에 대해 걱정을 쌓는 날들이 많아졌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잘 하려고 하는 내 일에 대한 나름의 완벽성~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이 강한 것 같다.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마음이 가볍지 않은 날들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아무것도 아니라고 훌훌~~ 털고 마음 가볍게 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정체되거나 조금씩 불어난 몸무게가 일로 인한 스트레스로 빠지고 있다.

바라던 「포스트잇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아닌데 고민된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책임감이다. 일을 뒤로 미루지 못하는 마음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랬구나. 내 마음이 딱 이랬다.

꿀꿀하고 지친 기분에 이 책을 읽었더니 한결 낫아졌다.

다 내 마음 같아서 무언의 위로감?! 수지 맞았다.

특히, 매일 성경 말씀 읽고 묵상할 때 내 생각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내 마음을 알고 토닥토닥~ 안아준다.

 

필요할 때 딱 붙어 있고, 임무를 다하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스르륵 떨어지는 포스트잇처럼.

잘하려고 너무 애쓰지도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다 하고 나면 미련 하나 남기지 않고 돌아서는 자세.

 

참 이걸 못했다. 포스트잇은 그렇게 잘 활용했으면서.

'열심'이란 굴레 속에서 나를 자꾸 집어넣었다.

내가 나를 궁지속으로 몰아넣고, 일 많아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그리고 '괜찮다' 뒤에 숨었다. 안 괜찮은데.....

 

 

매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요즘 여러 버젼으로 회자된다.

바야흐로 매미의 시대는 지고, 베짱이 시대가 뜬다. 베 짜는 베짱이라니.....

베짱이에 대한 편견이 걷어졌다. 오히려 성실의 아이콘으로 이름을 획득했다.

때에 맞게 쉬고 일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일과 삶의 균형, 워라벨이 괜히 나온게 아닌 듯.

 

책에서는 자신의 속도대로, 사소한 기쁨, 지금 현재란 시간의 중요성, 작은 사치, 소박한 기쁨,

감사함, 애정을 갖고 바라볼 것, 괜찮은 척/아닌 척.... 어른 흉내내지 않기,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 집중하기 등

아프고 힘들고 속상할 때 붙이는 마음의 반창고가 많다.

처의 정도가 다르지만 유용하게 그 때 그 때 사용가능하다.

막연해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결국은 다 마음의 일.

자기의 마음을 먼저 찬찬히 들여다봐야 되는 것들이기에 회복은 더디지만 낫을거라 생각된다.

결국은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의 맛이 제대로 드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는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공간에서 일정한 온도와 습도로 차분히 숙성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

'후숙 인생'이다. 후숙의 시간이 쌓여 한층 더 부드러워지는 아보카도처럼,

달콤해지는 바나나처럼 맛이 제대로 들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좀 더디고 모자라 보일지 모르지만,

는 지금 나의 속도로 천천히 그리고 맛있게 익어가는 중이다.

 

열심히 무엇을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막연하고 내가 제대로 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하던 일을 계속 해본다.

일만 시간의 법칙, 그 마법의 순간이 나에게도 기회를 주리라 믿어본다.

익고 열매가 맺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듯이^^

좋아하는 일은 은근하게 계속 하되, 불안을 몰고 오는 일에 대해서는 무심함이 필요하다.

될데로 되라.... 나 삐뚤어질테다.ㅋㅋㅋ

이게 지금 필요한 내 마음의 처방전이다.

 

반응형
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0. 11. 19. 11:44
728x90
반응형

학교 다닐 때 필기구에 대한 애착이 좀 있었다.

특히, 친구들의 필통 속이 항상 궁금했다.

어떤 아이들은 그 성격대로 보기에도 좋아보이는 연필을 깔끔하게 깎아와서

키높이에 맞춰 가지런히 필통 속에 들어있었다. 무슨 숲 속의 공주처럼.....

필통도 아무렇게나 흩어진 지퍼 쫙~ 지갑 필통이 아니라

칸마다 용도에 맞는 수납장처럼 2단 필통이었다. 디즈니 만화 시리즈 그림들을 달고서.

어린 마음에  탐 났다.

어떤 아이들은 알록달록 형광펜에다 모양이 다른 지우개에 집착하는 아이,

연필은 들쑥날쑥 키가 맞지 않아도 뭔가 호기심을 일으키는 필통이었다.

보물 찾기를 하듯이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필통?!

모나미 153 볼펜이 늘 필통 안에 있다. 그리고 볼펜심도 줄줄이 몇 개씩 가지고 다녔다.

연필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 아이들은 연필 하나로 줄기차게 쓴다.

몽땅연필이 되어 손에 쥐기가 힘들 때 연필 뒷쪽도 칼로 깍아내어 거기에 볼펜 몸통을 끼워 또 쓴다.

연필이 없어서가 아니라 재미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연필,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부드럽게 빨리 필기할 수 있는 샤프가 인기였다.

좀 컸다고 필통은 유아틱한 것 플라스틱에서 벗어나 모양이나 디자인이 좋은 지갑필통이 대세~

무엇보다 소리가 나지 않아 좋았다. 철로 된 필통도 많이 썼는데.

샤프도 연필만큼이나 각자의 성향이 오롯이 나타났다. 연필의 경도에 맞춰 종류도 많았다.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었다. 샤프심을 갈아써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좋았다.

연한 심보다 B계통의 심을 많이 사용했다. 글씨가 왠지 선명하고 더 잘 쓴 듯 해서.

그리고 중고등학교 땐 친구에게 선물로 지갑필통 속에 연필과 샤프, 볼펜, 형광펜 까지 다양하게 넣어 줬다.

덩달아 엽서와 편지지도 인기였다. 지금처럼 셋트는 같이 잘 팔리니깐^^

 

연필에 대한 이야기와 딸린 연필과 친구들 이야기가 생각해보니 이렇게 많았다.

점점 사라지는 이야기는 머릿속 어렴풋이 기억과 추억이 된다.

아쉬움이 되기도 하고. 붙잡고싶지만,...... 시대가 많이 변했다.

그래서 그 시대를 공유하거나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시선이 머문다.

연작시리즈 「아무튼, 연필」처럼~~~

저자가 좋아하는 재료가 연필인가보다. 연필에 대해 직접 겪거나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글 쓰는 작가들에겐 누구나 연필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한 꼭지씩은 있을 듯....

쓴다는 것과 연필(폭넓게 필기구)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니까.

작가의 연필에 대한 글들이 낯설게도 느껴졌다. 한편,

연필의 탄생 비화와 역사에 대한 것도 알게 되고, 사랑받는 연필과 소장하고 싶은 연필에 대한

애착과 아쉬움도 느껴졌다. 보통의 사물이 특별함이 될 때는 분명 사연이 있는거였고.

그 특별함에 어떤 가치를 더하게 되면 명품이 된다.

연필에 대한 깊은 사유가 애정과 연민으로 다가올 수 있구나!

 

 

 

 

연필을 깍을 때, 그 서걱거림이 좋다.

연필 쓸 일이 별로 없는데, 여전히 연필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그렇다고 연필을 이 책 작가처럼 잘 알고 소장하는 각은 아니다. 그냥 좋아한다.

책을 살 때 한번씩 연필이나 포스트잇이 사은품으로 소개된다. 그 때도 연필을 고른다.

아무 이유없이 그냥 좋으니까. 좋아한다는 것은 이유가 필요치 않아~ 하면서^^

책을 읽었지만 오히려 내가 사용해왔던 연필에 대해 생각이나서 긁적였는데 놀랬다.

작가만큼 그럴듯한 연필에 대한 사유는 아니지만, 내가 행복했던 한 때 기억이 나서 좋았다.

유명한 사람들도 연필이란 아주 작은 사물을 통해 삶의 의미를 부여하듯이...

책의 효용성이 아닐까! 시간을 달리하지만, 한 소재로 인해 기뻐할 수 있다는 것~~

 

지금 내 연필 서랍에는 전세계에서 각자의 지리와 함께 내게 온 연필들이 누워 있고 그 중에는

테오 신부님의 오셀로 연필과 같은 시대 같은 모델도 있다. 그렇지만 신부님의 오셀로는 지금껏 유일하다.

땅과 마음이 만난 기억으로 내게 와, 떠올리면 여전히 배꼽이 땡땡하게 당기는 느낌을 주는 연필은

네가 처음이예요. 말하자면 내가 선 곳, 닿는 세계를 연결한 최초의 지라학적 연필로. (p31)

♥--------------------------------------------------------------------------------------------------♥

시간 여행이 가능해지면 나를 꼭 1865년 어느 하루, 메사추세츠에 있는 오차드 하우스로 보내주면 좋겠다.

루이자의 막냇동생에게 내가 한 자루 가지고 있는 드로잉 연필을 전해주고 올 수 있도록.

루이자는 에이미('작은 아씨들'의 넷째딸)가 그 연필을 갖게 된 것으로 작품을 수정할 것이다.

그들에게 꼭 말하고 와야지. 앞으로도 갖고 싶은 건 갖고 싶다고 써서 남겨줘요.

그래야 다음 여성들이 그걸 욕망해도 된다는 걸 알게 돼요. 이건 나와 친구들에게도 하는 말.

그래서 쓴다. 가난한 우리는 유연한 자존심과 세심한 감각, 실패해도 안전한 경험을 갖고 싶다.(p205)

 

연필의 인기는 특정한 지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만큼 연필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다면 아마 어마어마 할 듯 싶다.

물을 건너, 산을 건너 멀리까지 주고받는 연필이란 사물의 경계가 어디부터인지 아무도 모른다.

물리적 거리보다 가깝게도 멀리도 느껴지는게 연필에 대한 그 누구나의 기억이 아닐까!

루이자 메이 올컷의 연필의 의미가 더 마음에 들어온다.

작품 속에 투영된 바람은 결국 작가가 닿지 못한 희망이니까.

작품 속으로의 시간 여행을 해서 결핍과 부재에 대해 바로잡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때론 그 결핍과 부재로 상황을 인식하게 만들고, 행동하지 못한 의식을 고양하게 되니

그냥 그대로 놔둬도 괜찮을 것 같다. 쓰는 작가에 대한 책무가 아닐까!

 

지금, 나는 꽤 오랜 시간 써오는 펜이 있다. 연필과 볼펜의 사무적 관계를 떠나서.

내 개인적으로 친밀감을 쌓게 하는 늘 함께 하는 펜.

동아 연필, 많이 썼는데... 그 회사에서 나오는 향기나는 중성펜, 미피~~~ 동아 홍당무 0.5

습관이 되어서 이것만 쓴다. 연필과 볼펜을 대신하는 최적의 친구이다.

많은 다양한 외제 펜들 사이에서 이 펜이 있다.

글을 쓰면서 나오는 잉크에 묻어있는 옅은 향기가 꽃향기처럼 좋다.

말로 전할 수 없는 내 마음의 일들을, 기도제목들을 이 향기펜으로 꾹꾹 눌러 쓴다.

연필로 쓴 그 애틋함을 느낄 수 없지만, 지금의 내 삶의 향기이다.

그 향기를 담아내는 펜은 언제나 유용하다.

책「아무튼, 연필」좋았던 기억의 한 켠으로 데려가줘서 고마워요^^

반응형
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0. 11. 13. 22:28
728x90
반응형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아려오거나, 쓸쓸함이 묻어나는 시집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그런 시집은 나도 모르게 끌립니다.

사람의 감정은 다양한데,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이 감정을 더 심어주지 않았을까?

그냥 생각해봅니다.

 

외로움의 깊이와 쓸쓸함의 농도가 마음을 아리게 할 때 있습니다.

내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 누구의 슬픔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정말 좋은 사람인데,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 마음이 아픕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참 애타게 합니다.

 

 

이병률 시인의 신작「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시인의 책들을 통해 그 분위기를 조금 알고 있어서 그의 시집에 눈이 멈추고 손이 갑니다.

아는게 참... 무섭습니다. 아는 익숙함에서 벗어날 수 없네요.

특히, 마음 쓰이게 하는 것은 슬픕니다.

詩에서도 마음 쓰이게 하는 감정들이 나옵니다.

무슨 말인가 싶으면서도 다시 찬찬히 읽어보면 내재된 슬픔과 아픔이 교차합니다.

그 감정을 느끼기엔 여전히 어렵고 또 어렵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라서 좀 더 수월하게 이해 될까 싶다가도

머릿속은 되는데, 마음은 좀처럼 낫아지지 않습니다.

이해하지 말자고..... 다시 생각합니다.

이미 내 마음에 생채기가 남았습니다.

남의 이야기인데 왜 그렇게 아플까요?!

여기저기 삶 가장자리에 흩어져있는 모든 슬픔들을 꺼내온 것 같습니다.

밀려오는 슬픔은 힘이 세서 상대하기가 참 버겁습니다.

마음 약한 사람들은 쉽게 슬픔에 지겠구나!

슬픔이 만나자고 할 때 무슨 수로 피할까 싶기도 합니다.

 

오늘 이병률 시인의 시집은 고독도 외로움도 아닌 슬픔입니다.

보통의 날에 슬픔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슬픔은 속으로 품고 삭이고 있으니까요.

너무 좋아서 슬프고, 깊은 고난의 시간을 견뎌왔는데도 아무 일 없듯 살아냅니다.

그 속사정을 듣고 나면 슬픔이 아린다는게 어떤건지 이해됩니다.

 

 

아홉살 인생, 영화도 있지요.

하물며 14살은요?

몹시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큰 물결에 정신 없어요.

가만히 놔두면 지나가겠지만, 잘 살펴봐줘야 합니다.

바람의 세기가 차이날 뿐, 누구나 그 바람을 겪습니다.

그래서 조금 아주 조금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나한테 인생이 찾아왔다

굉장히 큰 배를 타고 와서는

많은 짐들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제 앞으로 그 많은 짐들을 짊어지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하나 풀어봐야 한다고 했다

 

오늘은 시집을 읽었습니다.

슬픔에 대해 한참동안 생각했습니다.

슬픔은 참 희한합니다.

가슴 속 뭉클함이란 감정이 슬픔도 됩니다.

그런 낯선 풍경들을 마주하게 되네요.

그래서 은근하게 따뜻해집니다.

이 시간, 좋았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빗살무늬햇님

google-site-verification: google3339f54caf24306f.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