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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2.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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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저씨를 안지 꽤 시간이 흘렀다.

수더분한 외모에 꼭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을 풍겼는데......

입담은 더 장난 아니다. 박식한 척 하는건지 허풍쟁이인지 난감하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 쎈 언니가 있다면, 모르긴해도 이 아저씨는 분명 쎈 아저씨 축에 들어간다.

절대 말에서 꿀리지 않는다. 재담꾼이라 하지.

까칠하면서도 할 말, 하고 싶은 말 다 풀어놓는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의 쌉싸름한 영국 여행기

책「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이다.

까만 글만 있는 여행기는 이 아저씨 책이 독보적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나름 편견을 가진다.

사진이 글보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책은 여행기가 아닌 카탈로그 아닌가?

사진에서 주는 위로가 있고 감흥이 있는데, 내가 너무 재단했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일 뿐인데.

여행 작가의 책을 읽음으로 함께 여행하는 착각을 한다.

보이는 사진 속에서 시각화됨으로 여행에 대한 로망에 불 지피고, 쓰여진 글을 통해 상상한다.

여행 작가와 더 깊이 밀착된 느낌을 받는다.

미국 횡단과 유럽 산책을 이미 함께 동행한터라 빌 브라이슨의 익살맞은 이야기가 더 기대되었다.

물론 다른 책들도 빌 브라이슨의 해박한 지식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미국 아이오와주 출신의 작가가 유럽을 여행하다 유럽의 매력에 빠져 20살때 부터 20년간 영국에 거주했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 영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쓴 책「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이다.

1975년에 처음 와서 1994년 20년이 지나고서야 영국을 제대로 둘러본다.

처음 밟은 땅, 남부 지역 도버에서부터 시작이다. 20년이 흘렀지만 옛 모습 그대로인 곳도 있고,

많이 개발되어서 흔적없이 사라진 곳도 있다. 20년 만에 제대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영국 곳곳을 누빈다.

"나는 심란한 마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내 기억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곳이 이렇게 낯설어졌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도 이 발칙한 아저씨를 처음 알았을 땐 30대였는데, 지금은 40중반이다.

같이 나이 먹어가는 처지가 되었다. 그 때 읽었을 땐 마냥 웃겼는데, 지금 읽으니 느낌이 조금 다르다.

이제 제대로 같이 여행하는 느낌이다.

 

낯선 땅에 와서 낯선 사람들과 부딪히고, 같은 영어 문화권인데도 언어의 결도 조금씩 다르고,

무엇보다 삶의 방식이나 문화가 다르니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그럼에도 특유의 입바른 소리와 익살맞은 이야기로 감정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모습이 곳곳에 담겨있다.

여행하는 지역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하다. 더 좋아진 곳은 엄지 척, 더 나쁘게 변한 곳은 아쉬움이 묻어난다.

지도 하나만으로 20년 전의 기억의 흔적을 찾아가는 모습은 당당하기까지 하다.

빌 브라이슨의 책을 제법 읽었으면서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그가 진정 도보여행자라는 사실에 감탄이^^

책 곳곳에서는 몇 마일(몇 Km) 걸었다는 언급이 계속 되었다.

하루에 기본적으로 적게는 5,6마일(8Km~10Km)를 걸었음은 그를 '걷기 예찬론자'로 불러도 될 것 같다.

물론 빠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편하게 되도록이면 여러 군데를 두루 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여행자들은 대개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빌 브라이슨의 사소한 행동들?도 이해된다.

그 마음 중심엔 하룻밤이나 며칠 지낼 곳으로 싸고 안락하고 부족하지않게 잘 구비된 방이 있다면 금상첨화~

하루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여정을 제법 그럴듯한 선술집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하루 마무으리~~~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이 몸으로 겪고 체험한 소중한 여행기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살지만 자기가 태어난 곳 이외의 지역은 평생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이다.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부산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본 적이 없었다. 아비토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방 여행자가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더 잘 아는 것과 통한다. 빌 브라이슨이 그렇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고 체험한 영국은 영국 사람들보다 더 영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20년이란 시간 너머 여행지의 민낯과 장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날 것 그대로의 여행기라 재밌다.

   다시 한번만 더 '영국 최대' 라든가 '영국 최고'라는 표현을 사용한 전단지를 보면 당장 그 곳으로 달려가
   방화를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놓고 제공하는 서비스들은 지독하게 조촐하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특색있는 명소라는게 '공짜 주차장' '선물가게' 그리고 늘 빠지지않는 창의력을 위한
   '놀이공원'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꼴랑 정글짐 하나와 스프링 달린 플라스틱 동물모형 두어 개가 전부인 사진을
   실어놓는 아둔함을 보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 곳에 대체 누가 가지? 정말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p193~194)

특히, 빌 브라이슨의 모든 책에서는 발음과 억양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영국식과 미국식으로 조금씩 다르기에 언어적인 해학이 많은 것 같다. 빌 브라이슨식 유머!!

능청스럽고 익살맞고 넉살이 좋을만큼 음흉하기도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언어에서 오는 억양의 차이다. 자존심 센 영국인들의 비위를 건드리기도 한다. 위험한데??

아마 영국인이 이 책을 읽는다면 분명 빌 브라이슨을 욕할지도 모른다.

뭐 욕해도 우리의 까칠하면서도 발칙한 아저씨는 귓등으로 듣겠지만....

그래도 영국에 20년 동안 살았다고 영국에 대한 애정이 많이 묻어난다. 그래서 달콤쌉싸름하다.

사람이 칭찬하는 소리는 잘 잊어버리고 듣기 싫은 말은 귀가 뻥~ 뚫리는 법이니까^^

 

빌 브라이슨의 여행지 중 '버지니아 워터'가 있다.

작가도 버지니아 워더가 재미난 곳이고, 매력이라고 했다. 무엇이 그렇게 매력적이었을까?

그 곳은 이상하면서도 마음이 닿는 곳, 특히 그 곳 사람들이 그냥 좋은 느낌! 특별한 이유가 있다.

   당시 버지니아 워터에 특별한 마력을 더해준 건 따로 있다. 정신병자들이 마구 돌아다닌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머리가 혼탁하거나 걷는 모양새가 엉성하고 주춤거려도, 혼자 뭐라뭐라 중얼거리고 다녀도,
   잘 가다가 갑자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도, 완전히 정신이 외출한 사람이 보이는 징후 수백 가지를 해도,
   대부분의 환자들은 마음을 헤매고 다니다 얌전히 요양원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매일 예상치 못한 재미를 주며 싸구려 담배나 사탕 종류를 사고 있는 정신병자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차를 마시거나 가냘픈 목소리로 힘없이 뭔가 항의하고 있는 정신병자를 만날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버지니아 워터는 영국에서 가장 특이하고 별난 지역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미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똑같이
섞여 지내기 때문이다.
   상점주인들이나 지역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보이는 태도 역시 정말 존경스럽다.
   그들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지냈다. (p113~114)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는데..... 정신병원을 짓는다하면 피켓 들고 현수막 걸고 난리날거다. 땅 값 떨어진다고.

특수 학교가 들어선다고 하니 거세게 반발하는 지역주민들, 그리고 무릎 꿇은 장애 아동 엄마들의 호소.......

저 부분을 읽으니 생각이 많았다. 성숙한 인간과 인간의 격이란 것이 있구나!!!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든 다 비슷비슷하지만, 많이 다른 곳도 있구나 싶다.

최소한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와 양심이 있는 곳은 특별하고 다르네. 그 마인드 자체가 부럽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영국 특유의 이슬비는자욱하게 허공을 메우고 있으면서 암암리에 사람들의 정기를 빼내가곤 한다.

성공적인 도보여행의 비결은 언제 멈춰야만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데 있다."

변덕스런 영국 날씨는 여행자들을 힘들게 한다. 햇살이 좋은 날도 있지만 갑작스레 내리는 빗줄기에

황당한 경우가 여러번이다. 이 낯선 곳에서 비를 영접하는 일은 여행자들로서는 매번 적응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럴 땐 잠깐 걷기를 멈추고 빠른 교통 수단으로 대체해 머물 곳을 찾아야 한다.

도보여행자들의 융통성이 필요할 때이다. 오래 길게 재미있게 여행을 끝까지 하려면.

아,.... 늘 500페이지의 긴 이야기를 보고 있는 발칙한 도보여행자의 '찐팬'으로서 그의 이야기는 매번 흥미롭다.

배꼽 잡으면서 이제 웃지는 않지만, 흐뭇하게 킥킥거리면서 본다. 몇 페이지 남지 않음에 아쉬워한다.

그래서 또 다음을 기대한다. 어떤 이야기를 들고 나올지 궁금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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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0. 11.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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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져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동시대의 사람이 아니라면 화가의 그림을 짐작할 뿐이다.

가장 그럴듯한 해석을 정설로 믿게 된다.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채..... 아니 영원히 묻히게 될 진실이다.

이름과 그림만 남겨져 있으니까.

그림에 대해 몰라도 보는 것은 좋다.

화가의 작품에 대한 책을 읽고 계속 반복적으로 보니까 그림이 익숙해진다.

그렇다고 그림 속 내막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모른다고해도 그림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림을 좀 볼 줄 아는 사람들은 그림에 대해 칼럼도 쓴다.

그 사람들이 쓴 그림 이야기는 꽤 재밌다.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그림 속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으니 궁금하고 호기심이 번진다.

덩달아 이해하기도 쉽다면 몰입도가 올라간다. 

책 <다락방 미술관> 이다.

 

 

그리는 것 말고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나 말고 이 책을 쓴 저자도 그렇네.

미술관 특유의 냄새를 좋아해서 어느 미술관에 누구의 전시회가 있다면

전시마다 관련된 책을 읽는다고 했다. 꼭 전시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책에서 읽은 화가가 인상깊이 남는다면 그 화가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서

화가의 삶, 작품들까지 연달아 읽는다. 관심이란게 그렇다.

문학과 미술, 예술과 역사와 같은 강의를 듣고 공부를 했다는

저자의 열심이 어쩌면 책을 내는데까지 닿지 않았나싶다.

사람을 향하는 그런 이야기, 무조건 반긴다.

 

그림을 좀 봤다고 화가와 작품 이름도 꽤 익숙하다.

그림의 사연을 따라 가보면 자연스레 화가가 추구하는 화풍도 이해된다.

학창시절 땐 작품 따로, 화가 이름 따로, 화풍 따로 전부 따로 외웠으니 연결이 안 되었는데,

눈에 익숙한 그림이 정말 누구의 작품이란 걸 알았을 때, 시대와 시대적 배경도 알게 된다.  

작품 속 사연과 맞아떨어질 즈음에 화가를 다시 보게 된다. 편견이란 옥의 티를 벗는다.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이해하게된다.

   화가는 하나의 인격이다.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루소는 이상한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모르는 그림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꼭 조롱할 필요는 없다.(....)
   규격에서 벗어나는 건 현대인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으면 몽땅
미친 짓, 바보 짓이라고 밀어두면 속 편하기 때문이다.
   루소는 사회의 어리석은 편견의 제물이 되었다. (p158)

상처와 부재, 그리움, 사랑, 미움, 아쉬움..... 많은 감정에 대해 연민을 가진다.

올려다보는 사람이 아닌 같은 눈높이로 보게 되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27명의 화가들의 삶은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 삶을 선택했을 뿐이다.

매순간 선택의 길 위에서 품었던 생각, 살아낸 삶들이 작품이 되었다.

그래서 모든 세상의 작품들은 감히 세상 속 잣대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예술가로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일은 작품 활동을 하거나, 인지도(명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전시회에 작품을 꾸준히 출품하더라도 사람과의 접점이 없으면 작품 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

화가들은 특히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교류했다. 시인, 음악가, 작가, 꽤 잘 나가는 화가들.....

신예들이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인맥이란 것을 알게 된다.

이 인맥의 영향으로 화가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구현하기도 한다.

아니면 완전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되기도 하고.

화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을 들여다보니 이런 연결고리가 더 두드러지게 보였다.

한참 지난 후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화가들의 사연들이 어느 책 속에서 또 접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반갑지 아니한가! 생경한 듯 신선한 듯....

 

에곤 실레가 항상 예술인지 외설인지 논란이 되는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다.

여자 남자 어린이 풍경 초상화 등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그는 회화가 진실,

즉 본질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강박이 수많은 자화상을 탄생시켰다.

여느 자화상과 달리 그의 자화상은 비틀거리고 잘리고 일그러져 있다.

미화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고 해체시킴으로써 '나'라는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다. (p206)

 

늘 불안했던 젊은 천재 화가 에곤 실레가 꿈 꾼 삶이 아주 평범한 것이었음을 알았을 때,

비단 에곤 실레만의 삶이 아니라 많은 화가들의 삶과 비교해봤을 때,

지금 나는 얼마나 평안한가? 자유로운가!

툴루즈 로트렉 말이 들린다.

"산다는 것은 충분히 슬픕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랑스럽고 즐겁게 나타내야 하지요.

그것을 그리기 위해서 푸른색과 붉은색 물감이 있는 것입니다."

 

그림에 관한 책을 읽고 있노라면 아쉬운 부분이 늘 있다.

에피소드는 흥미로운데, 작품을 많이 엿볼 수 없다.

지면상의 문제가 아니라면 책에 싣어줬으면 좋겠다. 작품을 많이 넣으면 책 단가가 올라가려나?

언급된 작품들은 폰으로 검색해 찾아본다. 스토리를 읽으면서 작품을 보면 이해가 쉬우니까.

없는 작품들도 있는데 덜 알려진 아주 희귀한 작품이다.

그런 희귀한 작품들에 대한 스토리도 꽤 흥미로울 듯 한데.......

 

화가 이야기가 끝나면 세계의 미술관이 소개되어있다.

화가의 작품들을 품은 미술관들, 자국의 화가를 기념하기 위해 화가의 이름으로 세워진 미술관들.

여행이 계기가 되어 미술관 나들이로 계획을 세워도 좋을 듯 싶다.

친절하게 약도까지 수록되어 있어서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갈 수 있을까? 싶다. 그림을 실물 영접하려면 미술관이 딱인데, 가고 싶다. 아쉬움을 남긴 채,

책「다락방 미술관」잘 읽었다. 다락방에서 보물찾기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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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0. 11. 5.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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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019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읽었던 책 <골목 인문학>이 생각난다.

건물을 옆에 두고 길로 연결된 골목 사이로 사람이 드나들고 삶의 온기가 퍼져나갔다.

어렸을 적에 놀았던 공터는 골목이라기보다 학교 운동장 말고 유일하게 탁 트인 공간이었다.

어스름해질 때 골목을 걸어 집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어둠이 찾아왔고 집집마다 달빛처럼 어스름한 노란 전등이 켜졌다.

골목과 집은 맞닿아있어서 어느 누군가의 마음에 그리움이 되는 곳이다.

어쩐지 제목을 보는 순간 읽고 싶더니 골목이 아닌 집이다.

「집을 위한 인문학」골목의 온도만큼이나 온기가 느껴진다.

 

관심있는 주제이기도 하고, 살아가면서 집에 대한 애착은 누구나 가지니까.

살고 싶은, 꿈 꾸는 집이 있습니까? 물으면 사람들은 집 안 내부의 구조를 말한다.

막연하게 침실과 아이가 거하는 방은 어떻게 꾸미고, 거실과 주방, 욕실, 자기만의 방까지.

조금 더 넓히자면 전망 좋은 집이나 마당 넓은 집을 생각한다.

이런 집을 꿈 꾸는 것이 잘못이 아니니 좋다. 꿈 꾸는 무언가가 있음은 항상 좋은거다^^

품고 있는 집은 그에 맞는 삶의 적정한 온도까지 생각하고 있을테니까.

 

집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꿈 꾸는 집과 현실은 많이 다른데.

내 호주머니에 가진 돈이 많을수록 내가 꿈 꾸는 집은 날개를 달 것이고,

부족하면 돈에 맞게 집을 지을 수 밖에 없다. 비용을 줄이면서 내가 짓고 싶은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여기서 잠깐, 짓고 싶은 집과 살고 싶은 집은 같을까? 의문이 생겼다.

꿈 꾸는 집은 아니더라도 살고 싶은 집은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럴 땐 많이 지혜로워야 될 듯 싶다.

살아가면서 그 집은 나의 정체성이 될 거니깐.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이해된다.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겉모양이 아닌 그 공간 속에 함께 있되 또 홀로 되는 시간을 살아내는 집을 원한다.

그 집에서 누구와 함께,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결이 달라질 것이니까.

결국 집은 사람이 만들어가는거다.  

 

 

책에서는 집과 사람에 주목한다. 특히,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집이란 보이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자기만의 정신을 집에 오롯이 담는다.

많은 집을 설계하고 건축하기 전에 사람을 먼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집을 짓기 전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다. 이야기를 품고 있는 집, 얼마나 흥미롭고 재밌을까?

건축가의 수고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생활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생각이 스며있는 집, 이 집은 거칠고 순박하지만

마음을 흔들어대는 감동을 준다. 나는 그런 건축, 일상이 만들어내는 그런 집들을 위대한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대로 문화이며 그대로 인문학이기도 하다. (76쪽)

 

얼마나 많은 집을 짓고 보았을까? 느낌 좋았다고 생각되는 집에서 나오는 향기와 온기는

시간의 축적과 함께 살아온 일상이 만들어내는 사람의 흔적이 아닐까.

건축의 아주 소박하고 본연의 의미라 생각된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건축가이자 저자의 시선이 좋았다. <골목 인문학>도 그랬는데.

 

건축의 온도는 무엇이고, 삶의 온도는 무엇일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멀리서부터 우리를 맞이하던 밥 짓는 연기처럼, 어머니가 끓이는 된장국 냄새처럼,

가꾸지 않아도 편안한 마당처럼, 가족들이 아랫목에 발을 맞대고 하릴없이 떠드는 말의 온기처럼,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교감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모여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98쪽)

 

높이 붕 떠있는 아파트가 아닌 땅과 가장 가까이 맞대고 땅을 가꾸고 씨앗을 심고 열매를 맺고 수확할 수 있는

삶의 현장 가까이서 살아가고 싶음은 여전하다. 시간이 흐르면 그런 집에 살 수 있을거라 믿는다.  

그 때 내가 짓고 싶은 집은 볕 잘 드는 집이고, 내 집 문턱을 넘는 사람들마다 평안했으면 좋겠다.

마음이 쉬어가는 그런 집을 꿈 꾼다.

 

'나를 품어주었던 집, 내가 자라났던 집은 그 후 내 속에 있고 나와 더불어 세월의 지평선으로 사라진다'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집에 대한 보편적인 느낌이기도 하다.

집이란 개인이나 집단이 담고 공유한 특정한 기억이나 정서를 뛰어넘는 한 개인의 우주이며 그 자체로 이야기를 하는

소설과도 같은 존재다. 소설을 읽을 때 소설이라는 공간 안에 들어가 스스로 이야기를 완성하듯이, 집 혹은 건축도

사람이 들어감으로써 이야기가 완성된다. 그리고 집과 주인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자라기 시작한다. (230쪽)

 

'나'란 사람을 통해 이야기를 완성해나가는 나의 집, 숨 쉬는 집...... 그 집은 역사(history)가 된다.

모든 사람이 꿈 꾸는 집이 아닐까?^^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집이 아니기를.

낡아도 사람의 온기가 있다면 집으로서의 역할은 온전히 하고 있다.

집에 이야기를 채우는 것은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할 일이다.

그 집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 곳곳에 배여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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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0. 11. 3.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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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잘 알아야지 활용을 하고 실천을 할 수 있다.

활용을 잘 하면 보물이 될 수 있고, 무분별하게 사용하게 되면 쓰레기가 된다.

쓰레기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지속되는 한 쓰레기와의 동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쓰레기와 재활용, 분리배출이란 용어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필요없는 것이면 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면 되고 따로 분류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원하는대로 물건을 살 수 있되, 버리는 것은 철저한 분리가 필요하다.

쓰레기가 아닌 자원이 되는 순간이다. 똑똑하게 잘 버려야 되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2주마다 화요일에 분리배출을  실시한다.

분리배출 하기 전에 방송을 한다. 재활용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늘 알려준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리배출 하는 품목들이 세분화되어지고 까다로워진다.

환경부에서도 재활용품 분리배출 안내에 대한 자료를 각 세대 우편함에 넣어 배부를 했다.

신경써서 분리배출을 해야 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지만 여전히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 품목들이 있다.

우산처럼 천/살/플라스틱으로 구성된 재료가 다른 물건은 헷갈린다.

그래서 알고 싶은거다. 어떻게 잘 버리고, 줄이면서 재사용 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평소 갖고 있었는데, 답을 줄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책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이다.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배달 수요가 급증하고 덩달아 일회용품의 증가는 여러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대기오염과 미세먼지 등 기후변화까지 초래한다. 분리배출이 아니라 쓰레기 자체를 정말 줄여야 될 듯 싶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분리배출 0X 퀴즈를 풀어봤다. 10문항 중 9문항 정답이다.

정답 8개 이상이면 분리배출 고수 등장! 이라고 으샤으샤 해주고, 5개 이하면 책 읽고 다시 도전! 하라고 쓰여있다.

1번 문항이 좀 헷갈렸다. '일회용 종이컵은 재활용이 가능해서 종이류로 배출한다'

책 읽어보니(113쪽) 종이컵은 안쪽 비닐 코팅 때문에 일반 페지와 섞이면 재활용이 안 된다고 나와있다.

별도 수거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차나 커피를 다 마시면 종이컵만 따로 모아둔 긴 막대 플라스틱 통에 꽂았는데

그 종이컵만 따로 모으면 재활용이 되는거다.

우유팩도 안쪽에 비닐코팅 되어있는데 우유와 같이 모아도 되겠네 생각하지만, No~~

우유와 종이컵은 코팅 정도가 달라 재선별 과정을 거쳐야한다. 서로에게 '이물질'이란 말이 우습기도 하고, 이해도 된다.

 

분리배출한다고 모두 재활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대로 잘 배출해야 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래서 쓰레기 버리는 법도 배워야 한다.

분리배출만 잘 해도 쓰레기가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소비자로서 집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하되, 물건을 만든 생산자에 대한 불만도 있다.

포장재를 줄이고 재활용이 잘 되는 물건을 만들면 분리배출 고민하지 않고 쉽게 하겠는데, 왜 자꾸 겉을 치장하는지 모르겠다.

쓰레기 분리배출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이런 책을 읽고, 일상에서도 조금씩 실천하게 된다.

 

 

내용물은 비우고, 음식이 묻어있는 것은 씻어내고, 종이테이프와 송장이 붙어있는 배달된 스티로폼과 종이박스에서 떼어낸다.

음료수 페트병에 인쇄된 비닐도 떼어내 분리한다. 씻기에 애매한 기름병이나 양념통은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

음식물 쓰레기는 늘 일회용 투명 비닐을 사용했는데, 이것도 오염의 주범이 될 수 있기에 음식물 쓰레기통을 샀다.

아파트 의류수거함에는 낡은 물건을 내놓는게 아니라 유행이 지나 잘 입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는 상태가 좋은 신발, 구두, 가방 등

넣어야하고, 간혹 의류수거함에 이불 배개 전기요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종량제 봉투나 페기물로 신고해 버려야한다.

집에 이때까지 사용한 핸드폰과 보조배터리가 있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걱정이 있어서 대리점에 반납하기도 머뭇거려졌는데

한국전자제품자원순환공제조합에서 운영하는 휴대폰 수거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된다.

수거된 휴대폰을 파쇄 처리하기에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없다고 하니 알아봐야겠다.

수익금은 초록우산어린이 제단에 기부된다고 하니 좋은 일이다.

 

 

마트에 가서 계산한 후 영수증을 여전히 주는대로 받는다. 증빙용으로 제출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산 품목이 제대로 계산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지만 환경을 생각한다면 발급하지 않아야겠다.

종이 영수증을 만들기 위해 12만 그루의 나무를 베어야 하고,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불 보듯 뻔하다.

 

"쓰레기를 알아가다 보면 사회 전반의 열악한 문제들이 연결되어 있어요.

사람이든 쓰레이든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생계 목적으로 폐지를 줍는 노인이 20만 명을 넘는다는 사실은 노인복지의 열악한 실태를 보여줍니다.

폐지 가격을 높여 어르신들의 생계를 돕기는 시장 상황 탓에 불가능하니 노인 복지 정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어떤 쓰레기를 배출하느냐에 따라 사회 전반적인 복지를 가늠할 수 있는 여러가지 데이터가 나올 수 있겠구나!

사각지대에 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편적이면서 적절한 복지정책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선한 쪽으로 발상의 전환이 이뤄질 수 있는 부분이 어쩌면 이런 쪽이 아닐까?!!!

 

 

저자는 서울환경운동연합과 동영상 채널, '도와줘요 쓰레기 박사'를 진행하고 있다.

쓰레기를 어떻게 버리는지 알려주는 채널인데, 분리배출과 재활용 문제에 대한 관심은 수많은 댓글로 나타나고

서로 나누다보니 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역시 나와 같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라서 그런지

이 책「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이해하기 쉽게 너무 잘 요약되어져 있다.

 

재활용되니깐 괜찮아..... 이것은 일회용품의 사용에 면죄부를 준다.

처음이 어렵지만, 현명한 소비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에코백을 사용하고, 빈 용기를 가져가고.

소비자 실천이 중요하며, 덩달아 기업과 유통업체에 포장을 줄이도록 압력을 가하는 소비자 행동을 보여줄 때이다.

기업의 이미지는 요즘 더 중요해졌다. 특히, 소비자들에게 착한 기업이란 이미지는 제품에 대한 신뢰감을 안기고

엄청난 수익을 안겨준다. 반면, 갑질하거나 불량한 기업은 소비자들은 불매로 답한다.

소비자 행동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이제는 기업들이 더 잘 안다.

 

'일회용=위생적' 이 진부한 룰도 깨어져야 한다. 일회용이란 편리함을 위생으로 둔갑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티슈만 봐도 요즘 종류가 많다. 걸레용으로도 나온다. 어릴적에 엄마들은 항상 낡은 수건을 빨아쓰면서 걸레로 사용했다.

빨아쓰는 것도 모자라 삶아서 바짝 말려서 냄새를 없앴다. 걸레인데...... 이런 수고로움을 매일 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수고로움을 하지 않는다. 물티슈는 만능이다. 편리함과 위생을 다 만족시킨다.

위생 기준은 지키되 일회용품 사용은 자제해야 된다는 것, 잘 아는데 쉽지 않다.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책을 보면서 하나씩 알아간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안다.

아니깐 일상의 무심코 행했던 일들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인식하게 된다.

 

제대로 된 분리배출, 그리고 재활용이 많이 되어야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쓰레기 양도 줄고 천연자원의 사용량도 줄일 수 있다.

'분리배출은 재활용 여행의 시작입니다.' 이 문장이 마음에 딱 들어온다.

나부터, 우리 집에서부터 분리배출 알아서 잘 해야겠다.

많은 부분이 이해되었고, 유용한 책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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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0. 10. 29.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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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말 걸어올 때, 이제 말동무가 된다.

봄여름가을겨울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을 마음에 담는 순간,

아주 자연스레 말을 건넨다.

괜찮아요? 평안한가요?

그리고 오늘처럼 몸이 고단하고 머릿 속 생각이 많을 때

詩 한 잔으로 마음이 쉬어간다.

달라진 내 삶 속 한 장면이다.

도서관 오며가며 詩集을 빼먹지 않고 빌려오는 이유다.

자, 조금 쉬어갈게요.

사람인지라 마음이 충만함으로 채워질 때 있고, 가끔 기분이 가라앉을 때 있다.

다양한 마음의 모양대로 마음이 풀리게끔 물들임하는 것도 방법이다.

좋을 때는 오히려 잠잠히 마음의 소원을 풀어놓는 말씀 묵상을 하고,

가라앉을 때는 오늘처럼 詩集을 읽고.

언제든 읽어도 좋지만, 특히 봄과 가을에 느낌 있는 나태주 시인의 시집은 언제나 옳다.

「당신 생각하느라 꽃을 피웠을 뿐이에요」속 詩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싼다.

밝고 맑고 곱고 순수하고 아름답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많은 감정들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언어의 꽃밭에 초대된 것 같다.

 

詩라서 가능하다. 자연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넬 수 있음은^^

그리고, 여전히 세월이 흘러도 저런 감성이 나올 수 있음은 시인이라서 가능하지 않을까!!!

'수필보다 시에 재능이 있어 보입니다.' 10년 전에 들었던 말이다.

속으로는 부인했다. 아니요, 저는 시인보다 글쟁이가 되고 싶어요.

수필이나 시나 글인데 뭣이 중요할까마는 그 때 나에겐 중요한 문제였나보다.

지금은 시도 글도 내 마음이 가는대로 쓴다. 그야말로 봄날이다^^

삼월의 봄을 많이 기다렸나보다!

 

시도 좋지만, 담백하게 그려진 그림까지 봄빛이다.

마음은 가을빛을 향해 있지만.

소박한 삶이 시에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움과 보고 싶은 감정, 아쉬움까지 종합셋트처럼.

시인의 꽃밭에서는 삶이 살아있다.

그리고 그 삶을 잘 살아내도록 위로 한다.

어쩌면 그 위로가 듣고 싶어 시인의 언어의 꽃밭에 어슬렁거린다.

 

♥가을, 마티재♥

산 너머, 산 너머란 말 속에는 그리움이 살고 있다

그 그리움을 따라가다 보면

아리따운 사람, 고운 마을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강 건너, 강 건너란 말 속에는 아름다움이 살고 있다

그 아름다움을 따라나서면

어여쁜 꽃, 유순한 웃음의 사람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살기 힘들어 가슴 답답한 날 다리 팍팍한 날은 부디

산 너머, 산 너머란 말을 외우자

강 건너. 강 건너란 말을 외우자

 

그리고서도 안 되거든

눈물이 날 때까지 흰 구름을 오래도록 우러러보자.

 

달과 별을 좋아한다고 그것을 따 올 수 없다.

내가 달과 별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언제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매일 아주 가까이서 볼려고 소유하는 순간,

더이상 달과 별은 아니다.

제 이름을 가지고 자기 자리에서 빛 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하늘 한 자락, 물고기 몇 마리, 흰 구름 한 송이, 새소리 몇 웅큼은 거기에 있는 이유가 있다.

친구는 소유하기보다 서로를 향해 바라보는 것이다.

 

담장에 넝쿨 장미가,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능소화가 내 눈에 예뻐보이는 것은,

오며가며 지나갈 때 보는 즐거움이 크고 그 자리에 늘 피어있어서 좋다.

오늘도 예쁘게 피었구나, 감사하네^^

모든 자연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나태주 시인의 詩에는 스토리(이야기/사연)이 있다.

그래서 나는 좋아한다. 그 사연을 따라가보면

그리움이 되고, 추억이 되고, 현재가 된다. 선물 한 보따리 받은 기분이다.

시인의 詩들을 통해서 수필도 충분히 詩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이야기가 몽글몽글 녹아져 있다.

예쁘고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나팔꽃♥

여름날 아침, 눈부신 햇살 속에 피어나는 나팔꽃 속에는 젊으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얘야, 집안이 가난해서 그런 걸 어쩐다냐. 너도 나팔꽃을 좀 생각해보거라.

주둥이가 넓고 시원스런 나팔꽃도 좁고 답답한 꽃 모가지가 그 밑에서 받쳐주고 있지 않더냐?

나는 나팔꽃 모가지밖에 될 수 없으니, 너는 꽃의 몸통쯤 되고 너의 자식들이나 꽃의 주둥이로 키워보려무나.

안돼요, 아버지. 안 된단 말이에요. 왜 내가 나팔꽃 주둥이가 되어야지, 나팔꽃 몸통이 되느냔 말이에요!

 

여름날 아침, 해맑은 이슬 속에 피어나는 나팔꽃 속에는 아직도 대학에 보내달라 투덜대며 대어드는

어린 아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는 젊으신 아버지의 애끓는 목소리가 숨어 있다.

 

♥금세♥

그러자

그렇게 하자

네가 온다니

네가 정말 온다니

지금부터 나는

꽃 피는 나무

겨울이지만

마음이 봄날이다.

 

평범한 날들 속에서 평안을 만끽하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여유이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감사함이다.

겨울은 길지 않아서 금방, 오래지 않아 봄날이 온다.

시간은 생각 외로 빠르다.

날마다 좋은 공기에 감탄하고, 따뜻한 볕을 맞이할 수 있음은

다르지 않은 일상에서 늘 누리는 것인데....

어느새 당연한 듯 감사를 잊어버렸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듯 아침을 활짝 연다.

오늘 하루도 좋은 날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보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고백하는 詩처럼 잘 살아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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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2020. 10. 27.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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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7년 그 유명한 책 [라틴어 수업] 강의를 듣지 못했다.

학교 도서관에서도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는데 빌렸다가 반납했다.

끌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저자의 '라틴어 수업' 제 2막이라 할 수 있는 공부법에 관심이 있다.

책「한동일의 공부법」이다. 이 책의 첫 느낌은 뭐라할까?

제목이 공부법이라서 어렵고 지루할 줄 알았는데, 예상을 깨고 사랑스런? 책이란 느낌이 들었다.

에이, 어떻게 이런 책이 사랑스러울 수 있어요? 묻는다면.... 읽어보세요^^

내 눈높이에서는 친절하고 다정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얼마나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노동자로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생각해보니 공부한다고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의자에 앉아있어 본 적 없었던 것 같다.

공부는 자기와의 싸움, 즉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이긴다고 했는데 나는 늘 공부에 실패했다.

엉덩이가 가벼웠고 딴 생각을 많이 한다.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었다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공부를 했겠지만....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오늘 아니면 내일 하면 되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지금보다 좀 낫은 삶이 되었을텐데..... 그래서,

조금 늦었지만 지금의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늘 공부하는 노동자로 살아왔던

동아시아 최초, 한국인 최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였던 저자의 공부법이 궁금했는데,

의외로 그가 말하는 공부에 대한 철학과 전술, 전략의 거창한 비법이 아닌 소박하고 담백했던

그의 삶을 마주하고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중고교를 졸업하터 신학교와 대학원까지 10년 그리고 30대에 로마로 유학 가서

바티칸 변호사가 되기까지 30년 넘게 공부하는 노동자였다.

♣De ratione studii 공부법에 관하여♣

공부하는 노동자 그가 말하는 20가지의 비법은 평범한 듯 비범했다.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공감되는 부분인데,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음을 느꼈다.

눈 앞이 깜깜하고,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될지 모르고, 도움받을 곳도 없고....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될 몫이었다. 그럼에도 공부하는 노동자에게는 행운이 따라주었다.

항상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다. 물론 그는 언제나 성실했고 솔직했고 최선을 다했으니까.

노력이 9할이라면 1할의 행운!! 이것도 능력이라 생각된다.

운은 찾아가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오는 선물과 같은 것이란 말이 마음에 계속 머물렀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 라틴어가 친밀하게 느껴졌다.

영어 알파벳의 발음 기호를 알고 있다면 그대로 읽으면 되니까.

단,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쉽지 않다는 것.... 이것은 모든 언어에 해당사항 아닐까.

비단 언어만이 아니라 모든 일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허투루 그 언어와 일을 쉽다고 함부러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고대 로마 제국의 공통어였던 라틴어의 지적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한동일의 공부법」속으로 들어가본다.

 

공부가 단순히 머리로 하는 노동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의 과정처럼

밑바닥을 흔들고 다시 바닥을 다지는게 '공부'입니다.

이 말을 생각해보니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참 얄밉다.

사람은 갈등과 불안과 긴장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야 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것, 그게 삶이라 생각합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아닐까? 내 안의 불안은 어떤 일에 몰두할 때는 사라졌다.

지랄맞은? 성격 탓에 일을 보면 미루지 못한다. 그 이후에 오는 만족감이 꽤 좋았다.

이 일은 끊임없이 해야 될 삶의 공부라고 생각된다.

 

~뻔하고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는 걸 계속하는데서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납니다.

'일상적인 행동을 잘하는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일상생활을 잘 한다는 건 좋은 습관이 몸에 뱄다는 의미입니다.

공부할 때 좋은 습관이 몸에 밴다는 것은 몸을 가두는 연습이 잘 됨을 의미합니다.

좋은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은 늙어서도 항상 칭찬 받습니다.

그냥 하는 것의 위대함.... (성공, 주변의 찬사) 모두 일상적 반복이 빚어낸 위대한 선물이예요.

보잘것없어 보이는 하루하루를 반복해 대단한 하루를 만들어낸 사람이 되고 싶다.

아니면 평범함에서 탁월함을 빚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날 하루치의 열심과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나에게 물들임은 선물과 같다.

원하는게 바로 나오지 않더라도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면 1만 시간의 법칙이 주는 귀한 선물이 궁금해진다.

매일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그 사람의 미래가 됩니다.

나는 매일 읽고 쓰고 보고 느끼고 말하고 감탄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이 연습을 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한번씩 불안해지고 아주 가끔 무너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나를 극복해야 되는 일이기에 끊임없이 위로하고 존중하는 연습도 한다.

마음의 공부도 하는 중이다.

 

  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살펴보면 쉬운 것을 선택한 경우보다 쉽지 않은 선택을 했을 때
  더 크게 이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를 피하고자 합니다. 왜일까요?
  어려우니까요. 쉬운 선택을 할 때는 마음의 갈등이 없지만 쉽지 않은 선택을 하려면 자기 자신이 본능적으로
  밀어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속입니다. 환경이 채워주지 못한 빈 곳을 채우지 않으면 삶이 달라지지 않음을
  깨닫자 쉽게 할 수 있는 행동, 쉬운 선택을 하려는 마음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됐습니다. (p170,171)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보지 않은 길'이란 詩가 생각났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인적 드문 좁은 길... 선택을 한다면 굳이 낯선 길을 가지 않을 것 같다.

나의 본능이 밀어내니깐. 뭐 거창한 것이 있겠냐 변명을 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길이라고 핑게를 대면서.

안 된다고 이미 마음에 단정짓는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Noli foras ite: in interiore homine habitat veritas.

바깥에 나가 방황하지 마라.

진리는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노력없이 뭔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도둑놈 심보라고 하는데..... 이 마음은 아마 오래전부터 부풀어지고 있었다.

 

● 정말 제대로 공부를 하려 한다면 책상에서 일어나서 걷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몸이 움직일 때 우리 뇌는 또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듯 운동하는 것.

일이든 공부든 긴장만큼이나 이완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의 피로사회는 시간 자체를 인질로 삼고 있다. 이 사회는 시간을 일에 묶어두고 시간을 곧
  일의 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일의 시간은 향기가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일의 시간 외에 다른 시간이 없다.
  쉬는 시간도 다른 시간이 아니다. 쉬는 시간은 그저 일의 시간의 한 국면에 지나지 않는다.
  일의 시간은 오늘날 시간 전체를 잠식해버렸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선생의 말씀- (p208)

운동이 뭐지요? 어느 날 멍 때리며 생각해보니, 운동하는 것을 잊어버렸고 잃어버렸습니다.

작심삼일도 여러번 반복하면 매일의 습관이 될텐데...... 이것마저 내 시간표에서 사라졌다.

옆에 걷기 좋은 공간이 있음에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눈길을 거두었다.

 오늘 이 공부법을 통해 다시 숙지해본다.

쉬어야 할 때 충분히 쉬고 반드시 운동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쉬는 것은 너무 잘 하고 있어요. 이제 운동만 남았네요. 노력해볼게요^^

 

  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나에게 있을수도 있지만, 가르치는 사람이나 그 방법이

문제인 경우도 많습니다. 공부에 관해 이야기할 때 공부법과 교수법을 동시에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부법과 교수법은 다른 이야기가 아닌 양면을 가진 동전처럼 하나입니다.

교수법이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가르치는데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쓸 때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이해하고 쓴 글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타인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가 이해하고 글을 쓰거나, 앞에서 말을 할 때 차이가 크다. 횡설수설하지 않고 중언부언을 하지 않는다.

아니깐 더욱 재미있게 설명을 하게 된다. 20여년 전에 교회 초등부 교사로 봉사할 때 반별 모임을 하면서

성경공부를 한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준비하고 아이들과 함께 나눈다. 얼마나 재밌던지.

준비를 하지 않은 날은 아이들 앞에서도 표시가 난다. 말이 자꾸 꼬이게 되는 경험은 아무리 아이들 앞에서라도

핑게대지 못한다.

 

 

● 공부의 목적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더 나아가 거룩하게 만듭니다.

모든 공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을 때 가장 빛나는 얼굴을 갖습니다.

무언가를 공부하지 않을 때 인간은 늙어갑니다.

진정한 공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는겁니다.

공부, 불가피하게 외롭고 고독한 섬에 가둬놓지만 그 섬을 어떻게 꾸미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연세가 찼는데도 여전히 공부에 목말라하고,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공부에 매진해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분들의 이야기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공부는 시간 속에서 낡아지지 않는다. 더 반짝반짝 빛난다.

삶을 배우고 참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공부해서 남 주자'는 말이 엄청 신선하게 들린다.

남에게 보탬이 되는 공부는 그 자체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되니깐^^

 

궁금해졌다. 책 '라틴어 수업'도 이런 수업일까?

라틴어 수업을 듣고 또  다시 공부하고 싶어서 이 수업을 수강한 사람도 많을텐데....

나는 반대로 책 '라틴어 수업'을 읽어봐야겠다.

「한동일의 공부법」귀한 책이라면, '라틴어 수업'은 아름다운 책일꺼야!

삶에서 물들임하는 공부법을 알려주는 책을 만났다.

나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읽고 나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다시 확인하고 물들임하는 공부로 되새김질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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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빗살무늬햇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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